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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퇴계 이황은 건축가였다

360
등록 : 2001-05-2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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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분명한 건축적 식견으로 도산서원 건축 지휘, 탄생 500돌 맞아 재조명

올해는 대학자 퇴계 이황의 탄생 500주년이다. 그동안 퇴계는 조선 성리학의 태두로만 알려져왔지만, 넓은 의미로 볼 때 건축가이기도 했다. 퇴계는 도산서당을 지을 때 자신의 철학과 건축적 식견으로 서원 건축을 지휘했다. 비단 퇴계뿐만 아니라 성주의 회연서당을 지은 한강 정구, 포항의 입암정사를 지은 여헌 장현광 등 우리나라 선비들은 자기 집을 자기의 안목과 취향에 따라 설계한 건축가이기도 했지만 이런 면모는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 있지 않다. 학계에서도 퇴계의 건축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올해 탄생 500주년을 맞아 국내외 건축계가 퇴계 건축에 주목하는 한편 퇴계 건축에 대한 본격적 연구도 몇년 전부터 시작됐다. 퇴계의 건축가적 측면을 연구해온 건축학자 김동욱 교수를 통해 도산서원과 퇴계의 건축세계에 대해 알아본다.

편집자



사진/ 도산서당. 퇴계가 자신의 철학을 건축적으로 표현한 건축물이다.(안장헌)
퇴계 이황이 고향 근처 낙동강 곁에 도산서당을 지은 것은 나이 예순이 돼서였다. 스스로 관직을 버리고 고향에 내려온 지 10년이 지나서 비로소 도산이란 곳에 경관 수려하고 한적한 땅을 얻어 홀로 조용히 책을 보고 손님을 맞을 수 있는 작은 집을 지은 것이다. 젊어서 배운 학문을 현실에서 실천하고자 퇴계는 15년 동안 서울에서 벼슬생활을 한 뒤 쉰살 때 고향 예안에 내려왔고, 그로부터 꼭 10년 뒤의 일이었다. 고향 주변에서 마땅한 안식처를 쉽게 찾지 못해 서너 차례 집을 옮겨 짓다가 비로소 마음에 꼭 드는 자리를 찾아낸 것이다. 퇴계는 그 심경을 “도산 아래 자리잡고 쉴 곳을 얻은 것은 만년의 가장 큰 기쁨”이라고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적었다.


자신이 직접 간단한 도면까지 그려

사진/ 겸재 정선이 그린 그림. 도산서원과 흡사한 부분이 많아 도산서원을 보고 그린 것으로만 추정되고 있다.
퇴계에게 집이 들어설 주변 자연조건은 각별히 중요한 것이었다. 성리학자인 퇴계는 사람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물을 사랑함으로써 사람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유기적 질서를 이룰 수 있다고 보았다. 자연은 단순히 휴식하고 감상하는 대상이 아니고 자신의 심신을 맑게 하고 새로운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집터를 얻고 나서 퇴계는 여기에 지을 집에 대한 구상으로 골몰했다. 스스로 집에 대한 궁리를 하는 한편 평소 알고 지내던 목수 일을 잘 아는 기술자와 상담하는 데 열심이었다. 목수는 집 가까이 있는 용수사라는 절의 승려 법연이었다. 옆동네에 살던 후배(농암 이현보의 아들 문량)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대목이 보인다.

“연은 도토마리 옥제를 좋게 생각하고 있지만, 그 제도는 굽은 곳이 많아서 낙숫물이 생기고 지붕을 덮기도 어렵습니다. 또 방, 실, 청, 당이 궁박하게 마주하여 좋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번 집의 제도는 당을 반드시 정남향으로 해서 예를 행하는 데 편하게 하고 재는 반드시 서쪽에 두고 뒤뜰을 마주하도록 하여 아늑한 정취가 있도록 할 것이며….”

연이란 용수사 승려 법연을 가리킨다. 도토마리란 안동에서 십여년 전까지 쉽게 보던 베틀의 한 부분으로, 그 모양이 영어의 대문자 에이치(H)같이 생긴 것이다. 안동에는 이런 모양의 평면을 가진 집을 오래 전부터 도토마리집이라고 불렀다. 목수 법연은 그런 모양의 평면을 구상했던 것이고 퇴계는 그런 집은 굽은 곳이 많아서 낙숫물이 생기고 방들이 바투 마주보아서 안 좋다고 하고 이번에 짓는 집은 반드시 정남향으로 해서 예를 행하는 데 편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다. 이 논의를 보면, 퇴계는 자신의 집이 어떤 모습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집은 정남향이 되어서 손님이 왔을 때 서로 예를 행하는 데 알맞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확고한 생각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 뒤 퇴계는 그 자신이 직접 간단한 도면까지 그려서 집을 짓도록 했다. 그 대신 기둥을 깎고 창문을 내고 기와를 굽는 등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기술자 법연에게 맡겼다. 공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법연이 갑자기 병으로 죽자 퇴계는 “어찌 하늘이 이다지도 나를 돕지 않는가”고 탄식할 정도로 상심했다. 다행히 법연의 제자로 역시 목수 일을 잘 아는 정일이라는 승려가 와서 일을 맡게 되어 집을 지을 수 있었다.

시 하나하나를 통해 형성된 건축공간

사진/ 온돌방 남쪽의 외짝문. 우리 전통건축의 간결하면서도 자연적인 아름다움이 잘 드러난다.
도산서당은 지금도 퇴계 생존시와 거의 다름없는 모습으로 도산서원 경내에 남아 있다. 집은 3칸의 작은 집이다. 온돌방이 하나, 마루방이 하나 그리고 부엌 하나가 다다. 특별한 치장도 없다. 책과 문방용품을 올려놓을 선반을 내기 위해 온돌방 북쪽 벽을 물리고 또 마루도 한쪽에 지붕을 덧대 비가 들이치는 것을 막는 정도의 꾸밈이 있을 뿐이다. 온돌방 남쪽 벽의 소박한 외짝문은 방에 은은한 빛을 투과시켜주고 마루방 북쪽 판자창은 한여름 시원한 바람을 들이고 겨울철 북풍을 막는 구실을 한다. 여기에는 한 선비가 조용히 방에 앉아 책을 보고 잠을 자며, 손님이 찾아오면 서로 예를 표하고 환담하는 최소한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을 뿐이다. 집은 마치 군살이 하나도 없는 야윈 몸매에 안광만이 빛을 발하는 조선의 선비를 연상시킨다.

퇴계는 이 집에서 주옥같은 많은 시를 지었다. 서당이 완성되자 앞마당에 작은 연못을 파고 동쪽 언덕에 매화를 심은 화단을 꾸미고 울타리를 쳤다. 그리고 주변 여러 자연물에 이름을 지었다. 연못 이름은 연꽃을 가리키는 정우당, 화단은 계절의 벗이라는 뜻으로 절우사, 울타리 사립문은 고요한 심정을 가리키는 유정문, 그 바깥 샘물은 산밑에 나는 샘이라 해서 몽천, 입구 바위는 계곡 입구라는 뜻으로 곡구암, 멀리 동쪽 푸른 언덕은 동취병, 그 뒷산은 부용봉.

단지 이름을 짓는 데 그치지 않고 각각의 자연물을 두고 사계절의 변화에 맞춘 시를 지었다. 시는 ‘도산잡영’ 26절로 전한다. 여기에는 도산서당을 중심으로 주변의 자연경관 스물여섯곳이 도산서당과 함께 노래되고 있다. 시 하나 하나를 통해서 도산서당 뒷산이나 앞내, 동쪽과 서쪽의 푸른 언덕, 멀리 민가의 밥짓는 연기까지 커다란 건축공간을 형성한다. 이제 도산서당은 3칸의 작은집이 아니고 뒷산과 앞내를 모두 아우르는 하나의 거대한 자연공간으로 화하는 것이다. 이런 공간 속에서 퇴계는 자신의 학문을 키우고 영혼을 살찌웠다.

뛰어난 성리학자였던 퇴계는 동시에 훌륭한 건축가였다. 퇴계는 집터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갖고 알맞은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러다가 도산 아래 서당 터를 얻었다. 여기에는 성리학으로 무장된 자연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었다. 집을 구상하고 짓는 단계에서 퇴계는 목수 법연과 집의 제도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퇴계는 자신이 공부하며 거처할 집이 어떤 모양을 갖추고 방향은 어떻게 놓여야 하는지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 점에서는 아무리 오랜 경험을 지닌 목수에게라도 양보하지 않았다. 반면에 사소한 집의 꾸밈이나 기술적인 처리에 대해서는 기술자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신뢰를 보였다.

사람들의 영혼을 살찌우는 집으로

사진/ 서당 마루에서 본 도산서당 앞마당.
현대는 모든 분야가 전문화되고 세분화되고 있다. 집 짓는 일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자신이 살집에 대해 모든 것을 집 짓는 전문가에게 맡겨두고 자신은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그렇게 지어진 집은 단지 잠을 자고 휴식하는 장소를 넘지 못한다. 때로는 집은 단지 재화 가치로만 평가되기도 한다. 이런 여건에서 집은 사람들의 영혼을 살찌우는 장소가 될 수 없다. 집 주변을 바라보며 시를 짓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래서는 집이 한 시대 문화를 대변하는 건축이 될 수 없다.

세분되고 다양해지는 현실은 단순한 원칙으로 통합될 필요가 있다. 적어도 자신이 살 집에 대해서도 기술적인 세부를 뛰어 넘은 곳에서 단순하지만 분명한 신념이 필요하다. 자신의 집에 대한 신념이 담겨 있는 집에서 살 때 건물과 그 주변을 대상으로 시를 짓는 전통이 되살아날 수 있다. 도산서당은 집이 어떻게 지어져야 하고 또 그 집에 사는 사람이 집과 그 주변에서 무엇을 추구해야 할지를 일깨워준다.

김동욱/ 경기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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