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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슬픈 음악, 파두를 아시나요

360
등록 : 2001-05-2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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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특유의 문화적 산물… 그 변천사를 애절한 기타가락에 담은 <파두 콜렉션 1950-1999>

사진/ 남자 파두 가수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노래하는 전형적인 스타일을 연출한다.
1974년 4월25일, 포르투갈 라디오방송에서는 코임브라의 파두 가수 주제 아폰수의 금지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노래를 신호로 한 무리의 병력이 수도 리스본으로 진입했고, 시민들은 혁명군을 반기며 카네이션을 던졌다. 청년장교단에 의한 무혈·명예혁명인 ‘카네이션혁명’이 성공하면서 포르투갈은 40여년의 기나긴 독재에서 벗어났다. 한때는 우민화정책의 일환으로 장려됐던 파두가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것이다.

우리의 ‘한’과 비슷한 ‘사우다드’

사진/ 음반재킷의 그림은 파두와 함께 포르투갈 문화를 상징하는 미술인 ‘아줄레주’다. 아줄레주는 타일에 경쾌한 그림을 그린 포르투갈 고유의 미술양식이다.
외국인들에게 포르투갈 문화를 대표하는 것은 두 가지다. 미술에서는 타일에 그림을 그린 화사한 ‘아줄레주’, 그리고 음악에서는 바로 포르투갈 전통음악 ‘파두’다. 포르투갈인들에게 파두가 갖는 의미는 음악 이상이다. 우리에겐 아직도 생소하지만 파두는 지금 전세계 음악계에서 무척 사랑받고 있는 중요한 음악이자 포르투갈의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다.


파두는 흔히 무척 슬픈 노래로 알려져 있지만 파두가 꼭 슬픈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슬픈 파두이건 경쾌한 파두이건 내용은 모두 슬픔을 노래한다. 그 이유는 바로 파두의 바탕에 우리의 ‘한’과 비슷한 정서인 ‘사우다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사우다드는 우리 말로 옮기면 ‘슬픔’의 정서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그렇다면 포르투갈인들은 왜 슬픔을 지닐 수밖에 없었을까. 그 이유는 바로 포르투갈의 슬픈 역사에서 비롯됐다.

유럽 대륙의 서쪽 끝에 위치한 포르투갈은 일찍부터 식민지 개척에 눈을 돌려 16세기에는 세계 각지에 식민지를 거느린 해양왕국으로 등극했다. 하지만 이런 영화는 영국, 스페인과 네덜란드가 새로운 해양강국으로 떠오르며 금세 사라졌다. 특히 브라질의 독립(1822)은 해외 식민지를 경제적 기반으로 삼던 포르투갈을 혼돈으로 치닫게 했다. 왕실과 일부 귀족들에게 모든 부가 집중됐고, 서민들에게는 기약할 수 없는 항해와 그늘진 삶만이 기다릴 뿐이었다. 정치적인 혼란도 국민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1910년 국왕제가 폐지되고 공화정이 들어섰지만 이후 16년 동안 무려 45회의 정권교체, 15회의 군사 쿠데타가 이어졌다. 그리고 1932년 안토니우 살라자르의 철권독재통치가 시작되면서 포르투갈 현대사는 깊은 수렁에 빠져들었다. 살라자르는 독재정치를 비판하는 지식인들을 탄압하면서 지식인 숫자를 줄이기 위해 교육투자를 외면해 한때 포르투갈의 문맹률은 30%나 됐을 정도였다. 1950년대에 이르러서는 국민들의 궁핍한 생활이 극에 달해 수십만명이 생존을 위해 포르투갈을 떠나야만 했다.

이런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포르투갈인들에게 ‘슬픔’은 숙명처럼 자리잡았고, 이는 파두로 이어졌다. 우민화정책인 이른바 ‘3F정책’도 파두가 유행하는 데 한몫했다. 3F정책은 축구(football), 성모 마리아가 현신했다는 가톨릭 최대의 순례지인 파티마(Fatima), 그리고 파두(fado) 등의 세 가지를 장려해 국민의 관심을 정치에서 떼놓으려 한 것이었다.

마리아 세베라의 가슴저린 사랑

사진/ 포르투갈의 기타인 ‘기타라’. 기타라는 파두의 생명과도 같은 악기로 파두 특유의 애잔한 음색을 표현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파두는 포르투갈인들의 삶 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파두는 포르투갈 특유의 문화에 여러 문화가 혼합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그 이전부터 매우 오랜 역사를 지니며 자라난 산물이기도 하다.

파두는 아랍의 지배를 받았던 포르투갈의 역사 속에서 태어났다. 포르투갈은 711년 무어인(7세기 중반 북아프리카지역을 침략한 아랍계 이슬람교도들)의 침략을 받은 뒤 이후 약 550여년 동안 아랍문명의 지배를 받았다. 그래서 다른 유럽지역과는 달리 아랍적인 지역문화가 생겨났다. 파두에서 나타나는 비장함과 경건함, 꺾이는 창법은 모두 아랍의 영향을 받은 흔적들이다. 여기에 포르투갈로 건너온 브라질 유학생들이 들고온 아프리카 계통의 브라질 음악들이 파두의 형식에 큰 영향을 끼쳤다.

국토의 절반을 대서양과 접하고 있는 포르투갈의 지리적 특성도 파두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 바다는 포르투갈인들에게 정복해야 할 대상이자 동시에 희망을 갖게 하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 먼바다에서 느끼는 조국에 대한 그리움, 인생, 영원한 사랑 등 뱃사람들의 이야기는 모두 파두의 가사가 됐다.

이렇게 다양한 요소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파두는 포르투갈의 두 도시 리스본과 코임브라를 근거지로 하는 두 가지로 나뉘어져 성장했다. 포르투갈의 수도인 리스본은 항구도시로 옛날부터 많은 서민들의 애환이 어우러지는 장소였다. 그래서 리스본 파두는 소박한 서민의 생활이 투영된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이 리스본 파두의 대표적인 가수가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얻었던 아말리아 호드리게스(아말리아 로드리게스???? 스펠링이 rodrigues인듯. 확인!)(1920∼99)다.

반면 코임브라 파두는 유럽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대학 가운데 하나인 코임브라대학에서 시작됐다. 코임브라 파두는 대학생 중심으로 발전했고, 나중에는 민중계몽의 메시지를 담았다. 19세기에 접어들며 ‘슬픔’(사우다드)을 주제로 하는 새로운 형태의 시 ‘사우두시스무’(Saudosismo)가 발생했는데 이 사우두시스무에 코임브라 대학생들이 슬프고 느린 멜로디를 붙여 노래하게 된 것이 코임브라 파두의 시작이다. 카네이션혁명의 상징인 주제 아폰수가 코임브라 파두의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리스본 파두에 비해 좀더 예술적인 경향을 담고 있으며, 반드시 망토를 걸치고 남자만이 부르는 전통이 있다.

파두의 역사 속에서 반드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파두의 여신’으로 불리는 마리아 세베라다. 오랫동안 대중과 무명시인들의 입에서 전해 내려오던 파두가 19세기들어 비로소 대중의 인기를 얻게 된 데는 마리아 세베라(1820∼46)의 출현이 커다란 역할을 했다. 파두 가수이면서 거리의 여자였던 마리아는 귀족인 비미지우 백작과 사랑에 빠졌지만 신분을 뛰어넘지 못한 채 스물여섯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서민의 음악 파두를 귀족사회에 보급했던 그를 애도하며 이후 모든 여자 파두가수들은 그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검은 숄을 걸치고 노래하는 전통이 생겼다. 그리고 이 전통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파두의 여왕’ 아말리아 호드리게스

사진/ 파두의 여왕 아말리아 호드리게스.
마리아 세베라 이후 파두를 더욱 성숙시킨 중요한 인물로는 아말리아 호드리게스가 있다. ‘파두의 여왕’으로 불린 아말리아 호드리게스는 파두를 국제적으로 알리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뮤지션이다. 또한 단순하고 순박했던 파두의 가사를 시적인 내용으로 끌어올린 주역이기도 했다. 호드리게스는 무대 위에서 언제나 검은 옷을 입었는데, 그게 나중에는 ‘아말리아풍’으로 하나의 유행이 되기도 했다. 지난 99년 10월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는 수많은 팬들이 슬퍼하며 운구 행렬을 따랐을 정도로 포르투갈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세계 음악계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파두는 그동안 국내에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1980년대 중반 한 텔레비전 드라마에 아말리아 호드리게스의 노래가 쓰이면서 잠깐 인기를 끌었지만 그 이상은 소개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지난 반세기 파두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파두를 만끽할 수 있을 만한 음반 <파두 콜렉션 1950∼1999>(굿 인터내셔널 발매)이 나왔다.

파두는 슬픈 가락 때문에 우리 정서에도 부담없이 다가오는 음악이다. 파두가 지닌 그 애잔한 슬픔이 우리네 정서와 크게 다를 게 없다. 그럼에도 사실 국내에는 아말리아 호드리게스를 제외하곤 변변한 파두음반이 소개된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런 점에서 이 음반에 대한 반가움은 실로 크다. 두장의 음반에 36곡이나 담겨 있고, 코임브라와 리스본 파두는 물론 최근 파두까지 모두 들어볼 수 있다. 파두가 부활하기 시작했던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변천사가 애절한 포르투갈 기타 가락에 실려 흘러나오는, 참으로 오랜만에 선보인 정통 파두음반이다.

송기철/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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