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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HIV의 천적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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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08-1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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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회의에 보고된 새 치료제 ‘T-20’… 에이즈 정복의 그 날은 다가오는가

유엔 에이즈계획본부(UNAIDS)에 의하면 전세계에는 남한 인구의 70%가 넘는 3400만여명의 사람들이 에이즈에 감염되었거나 환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판 흑사병이라고도 불리는 에이즈는 하루에만도 1만5천명의 사람들이 새로 감염되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이 가운데 70%에 이르는 2500만명 정도의 사람들이 아프리카 지역에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오는 2010년의 아프리카 인구는 현재보다 7100만명이 줄어들 것이란 예상도 있다. 아시아도 에이즈의 공포에서 예외일 수는 없어 560만명 정도가 에이즈 환자이거나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경우 1200명가량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나 실제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새로운 방식으로 에이즈 바이러스 공격

(사진/HIV에 의해 공격받는 T-세포. 붉은 색으로 보이는 것이 T-세포이고,파란색의 작은 입자가 에이즈 바이러스)
지난 7월 남아프리카 더반에서 열린 에이즈 회의에서는 에이즈 치료에 전기를 이룰지도 모를 고무적인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회의에 참가한 한 연구팀은 에이즈 바이러스가 T 임파구로 침입하기 전에 이를 공격할 수 있는 약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이것은 기존의 에이즈 치료법에 효과를 보지 못했던 환자들의 생명을 구하는 데 중요한 공헌을 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이번에 개발된 ‘T-20’이란 약은 융합 억제제(fusion inhibitor)로 새로운 클래스의 에이즈 치료제이다. T-20이 새로운 클래스의 에이즈 치료제로 불리는 이유는 기존의 에이즈 치료제와는 다른 방식으로 에이즈 바이러스를 공격하기 때문이다. 기존에 존재하는 항-에이즈 의약품들은 세포 내로 들어간 HIV 바이러스가 파괴적인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이를 공격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T-20은 T-세포 외부에서 HIV를 공격한다. 이 약은 에이즈 바이러스가 T-세포에 붙어 번식을 위해 자신의 유전물질을 T-세포로 넣으려는 것을 방해한다.

주목할 만한 점은 현재 쓰이는 에이즈 치료제로 효과를 볼 수 없었던 환자들에게 이 약을 투여했을 때 그 효과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 약품은 아직 초기 단계의 테스트를 거치고 있기는 하지만 안정성면에서 그 성능을 인정받고 있으며, 에이즈 치료의 효율성에서도 이미 좋은 징조를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존의 에이즈 치료제가 듣지 않았던 환자들에게 T-20이 효과적인 약품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더욱 희망적인 점은 T-20에서 얻을 수 있는 약효가 기존의 의약품에 비해서 빠르다는 것이다. 10가지 이상의 항-에이즈 의약품을 처방해도 듣지 않았던 환자들이 T-20를 48주간 복용했을 경우, 반 이상의 환자들의 핏속 HIV 바이러스의 양이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현재 T-20의 유일한 결점은 다른 항-에이즈 약품과는 달리 아직 경구용(먹는) 의약품이 개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T-20을 투여하기 위해서는 하루에 두번씩 주사를 맞아야 한다. 하지만 이 점은 곧 개선될 것으로 보이며, 머지않아 T-20이 기존의 치료제로는 효과를 보지 못했던 에이즈 환자에 대한 필수적인 치료제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에이즈 치료 부작용 당뇨병약으로 줄여

(사진/획기적인 치료약이 없는 에이즈의 공포가 날로 확산되고 있다.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에이즈 회의에 깊은 관심을 보인 아프리카인들)
최근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에이즈 치료 때 나타나는 부작용을 당뇨병 치료약을 이용해 줄일 수 있는 결과가 나타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대부분의 에이즈 환자들은 역전사 효소 억제제(reverse transcriptase inhibitor)나 단백질 분해효소 억제제(protease inhibitor) 등이 포함된 에이즈 치료제를 복용해 효과를 보고 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80%가량의 환자들이 얼굴이나 팔, 다리 등에서 지방이 빠져나가 배나 가슴, 허벅지, 엉덩이 등에 비정상적으로 축적이 되는 지방이영양증 증후군을 겪는다.

우리 몸의 인슐린은 혈액 중에서 당, 지질, 아미노산 대사를 조절하고, 근육에서 단백질 합성과 지질합성을 증가시키며, 지방 분해와 포도당 생성을 억제하는 역할을 갖고 있다. 따라서 에이즈 치료제의 복용으로 지방의 재분배가 일어나면 인슐린에 대한 저항성을 높이는 부작용이 나타난다. 인슐린에 대한 저항성이 높아지면 심장관련 질병의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이러한 경우 당뇨병약을 에이즈 치료제와 함께 사용하면 에이즈 환자들이 인슐린 저항성으로 인한 부작용을 없애는 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에이즈 정복에 한 걸음 더 다가간 결과였다.

중부아프리카에는 녹색원숭이라고 불리는 원숭이가 살고 있다. 신기하게도 이 원숭이의 몸 속에는 에이즈 바이러스와 아주 유사한 종류의 바이러스가 있다. 에이즈 바이러스에 대한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지만 일부 학자들은 이 원숭이와 원주민과의 접촉과정에서 이 바이러스가 원주민의 몸 속으로 들어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에이즈 바이러스가 생겨난 것이 아닌가 추측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흡혈 곤충이 매개가 되어 에이즈를 전염시킬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에이즈가 모기에 의해 감염될 수 있는지를 놓고 논란을 벌였다. 특히 여름철이 되면 이것에 대한 불안감을 완전하게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간 진행된 연구결과에 의하면 다행스럽게도 모기에 의한 에이즈 전파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기의 몸에서는 사람에게 에이즈를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성장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모기가 한번에 흡입하는 혈액의 양도 소량이라 이것으로 에이즈를 다른 사람에게 전염시키기에는 충분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감염될 확률 높아

(사진/에이즈 바이러스가 인간 숙주세포를 감염할 때 숙주세포 외부에 있는 수용체 단백질을 이용해 숙주세포로 들어간다. 숙주세포 내에서는 바이러스가 갖고 있는 역전사 효소라는 단백질을 이용해 바이러스 게놈인 RNA를 DNA로 바꾼다. 이 바이러스 DNA가 인간의 DNA로 끼
유엔아동기금(UNICEF)이 최근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세계 에이즈 환자 가운데 15살에서 24살의 젊은층이 약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이 연령대에서 여성이 에이즈에 감염될 확률이 남성에 비해 1.5배나 더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에이즈의 전염률에서 남녀의 차이를 보이는 것은 면역성의 차이보다도 신체적인 구조의 차이에서 나타나는 결과로 추정하고 있다.

에이즈에 걸린 사람과 성관계를 나누면 모두 에이즈에 걸리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이것에 궁금증을 갖고 있을 것이다. 통계에 의하면 에이즈 환자와의 성관계시 에이즈에 걸릴 확률은 1% 정도로 나타났다. 이것은 100명의 성관계자 중 한명만이 에이즈에 감염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예상했었던 것보다는 낮은 수치이다. 하지만 이 결과는 통계적인 수치이기 때문에 개인에 따라서는 단 한번의 성관계로도 에이즈에 감염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얼마 전에 발간된 국제 적십자사의 <세계 재앙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에이즈나 말라리아와 같은 예방이 가능한 전염병에 의해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수는 13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목되는 대목은 지난 1945년 이후 전쟁으로 사망한 사람의 수는 2300만명인 데 비해 전염병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의 수가 1억5천만명이라는 것이다. 에이즈의 경우 전세계에서 매시간 300여명의 환자가 죽어간다. 인류가 에이즈와 같은 전염병에 대해 특별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한 계속해서 이와 같은 질병으로 인해 신음할 것이다.

김정호/ 이학박사·미국 MIT 연구원jungho@MIT.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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