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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황금의 지배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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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5-2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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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에 대한 망상의 역사, 피터 L.번스타인의 <황금의 지배>

인류경제의 역사는 황금의 역사이기도 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은 금을 부귀의 상징으로 삼았고, 황금에 대한 인간의 집착과 욕심은 땅두께처럼 끝이 없었다. 콜럼버스는 아메리카로 가는 첫 항해도중 “아, 찬란한 황금이여!”라고 되뇌었고, 신화 속 이아손이 아르고호를 이끌고 찾아나선 것도 황금양털이었다. 남미대륙의 원주민을 잔혹하게 도살했던 정복자 피사로가 심복들에게 살해당한 장소는 바로 자기가 모은 황금더미 속에서였다. 그렇다면 지금은? 금의 지배는 변치 않고 있다. 금본위제는 폐지됐지만 사람들은 이 누런 금속에 대한 욕망을 결코 버리지 않고 있다. 지금도 남아프리카에서는 매년 약 500t의 금을 추출하기 위해 700만t의 흙을 걷어내서 분쇄하고 있다.

시대를 초월해 인간을 사로잡는 금의 마력

미국의 경제전문 저술가인 피터 L. 번스타인의 <황금의 지배>(김승욱 옮김/ 경영정신 펴냄/ 1만8천원/ 문의: 02-335-2854)는 황금의 역사를 훑어내려가는 흥미로운 책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금이라고 불리는 이 금속에 도취되고 집착하게 됐으며, 어떻게 이 금속조각 때문에 고통받고 대접받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잇다. 600여쪽의 방대한 분량이어서 언뜻 보면 두꺼워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 책이지만, 경제이야기가 아니라 옛날이야기를 읽는 느낌이어서 쉽게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이다.


책에 등장하는 금의 역사는 시대를 초월해 인간을 사로잡는 금의 마력을 구체적으로 들려준다. 금이 펼쳐내는 드라마는 이 두꺼운 책으로 다 담지 못할 많은 드라마가 무궁무진하게 이어진다. 고대부터 금, 그리고 금화는 국제적 통화로 쓰였으며 용병들의 충성을 보장하는 한편 전쟁에 패했을 때는 왕의 목숨을 보장해주는 보물이었다. 1511년 스페인의 페르난도 왕은 “어떤 위협을 무릅쓰고라도 금을 가져오라”고 명령했고, 이 명령의 결과 남미 잉카제국은 침략자들에게 철저히 파괴돼버렸다. 신대륙에서 유럽으로 넘어오는 막대한 금을 빼앗기 위해 영국은 해적질에 나섰다. 비잔틴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는 역대 최고의 부자 솔로몬을 능가하겠다는 욕심으로 무려 13만kg의 황금을 퍼부어가며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 사원을 지었다. 1848년 캘리포니아에서 금이 발견되면서 시작된 골드러시도 빼놓을 수 없다. 1853년까지 10만명의 사람들이 엘도라도를 꿈꾸며 캘리포니아로 몰려들었고, 그 가운데는 중국인들과 바다를 건너 찾아온 오스트레일리아인, 프랑스인들도 숱했다. 금은 그렇게 20세기까지 화폐제도의 기반으로 인간을 지배했다. 1971년 미국 닉슨 대통령에 의해 금본위제는 폐지됐지만 그 위력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금은 인간의 욕망을 부추기는 힘을 돈, 주식, 사이버머니 등에 나눠줬을 뿐이다.

황금과 인간의 역전현상

결국 문제는 인간이 황금을 소유하지만, 결국 황금이 인간을 소유하게 되는 역전현상이다. 그래서 책의 부제는 ‘망상의 역사’다. 그래서 지은이는 황금에 대한 인간의 헛된 욕심을 은근히 비꼰다. 100년 전 존 러스킨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남겼다고 한다. 한 남자가 그의 전 재산인 금화가 가득 찬 커다란 가방을 들고 배에 탔다. 그런데 엄청난 폭풍이 몰려와 배를 버리고 물속으로 뛰어들라는 경고가 터져나왔다. 그 남자는 가방을 허리에 동여매고 곧장 바다로 뛰어들었다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여기서 러스킨은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 그가 금을 소유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금이 그를 소유한 것이었을까?”

지은이는 그 대답을 넌지시 들려준다. “어쩌면 우리 이야기에서 가장 현명한 주인공들은 그들의 생명을 이어줄 소중한 소금을 침묵 속에서 금과 교환했던 젠트와 팀북투의 순박한 원주민들인지도 모른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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