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 사진 한국기원 제공
사태가 험악해졌지만 ‘칼을 뺀’ 쪽은 이세돌이었다. 이세돌은 기사회 투표에 심한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6월8일에는 친형인 이상훈 7단을 통해 6월30일부터 2010년 12월31일까지 1년6개월간 쉬겠다며 휴직계를 제출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기사회의 결정에 거부감을 표시하고, 한국기원에 정면 반발한 것이다. 이세돌은 또 중국에서의 활동은 약속이 돼 있는 만큼 계속할 뜻을 밝혔다. 통상 개인과 조직의 싸움에서 개인은 약자다. 그러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이세돌의 파괴력이 만만치 않다. 한국기원의 한상열 사무총장은 “일인자답게 마음을 추스르고 돌아오기를 바란다. 지금이라도 대화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국 바둑에서 차지하는 이세돌의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세돌이 쉽게 돌아올 것 같지는 않다. 고집이 워낙 세다. 또 많은 경우에 자신의 주장을 관철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승단제도다. 2003년 LG배 세계기전에서 우승한 이세돌은 승단대회에 출전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당시 3단이던 이세돌이 승단하기 위해서는 대국료도 없고 추첨에 의해 결정된 상대와 10번을 싸우는 승단대회를 거쳐야 했다. 이세돌은 기존 승단제도에 저항했다. ‘세계대회 우승자를 대접하라’고 여론이 들끓었고, 결국 한국기원은 메이저 국제대회 우승 때 3단 자동 승단이라는 규정을 도입하는 등 새로운 승단제도를 갖추기에 이른다. 이른바 ‘이세돌 법’이다. 한국리그 참가자들이 경기 뒤 인터뷰에 의무적으로 참여하도록 한 것도 이세돌을 반면교사로 만들어졌다. 이세돌은 시상식이나 추첨식, 인터뷰에 응하지 않는 경우가 여러 번이었다. 물론 법을 어기거나 곤경을 부를 정도로 지나친 일탈을 한 것은 아니다. 기존 시각으로는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미묘한 줄타기로 한국기원과 큰 갈등은 부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휴직계 파동은 여파가 크다. 이세돌이 “심신이 피곤하다”며 쉬겠다고 하면서도, 중국리그 활동은 계속하겠다고 한 것이 역풍의 빌미가 되고 있다. 이세돌보다는 한국기원 쪽에 화살을 겨눴던 한 젊은 기사는 “이세돌 사범이 지나치다”는 의견을 보였다. “일인자라면 일인자다워야 한다”는 도덕적 비난도 나오고 있다. 네티즌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흑백의 돌이 정갈하게 깔린 바둑판은 언뜻 도의 세계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바둑은 세상과 격리된 절해고도의 신선놀음이 아니다. 상대가 있어야 하고, 판이 있어야 하고, 입회인과 관리자들이 있어야 하고, 가장 중요한 팬들이 있어야 한다. 이들이 없다면 일인자도 별 무소용이다. 바둑은 혼자만의 신선놀음이 아니건만 하늘이 내는 천재는 귀한 존재다. 그러나 반상 밖에서는 반상 밖의 룰도 존중할 필요가 있다. 늘 묵중하고 진중한 이창호 사범이 더 많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동갑내기 라이벌인 중국 일인자 구리가 시상식장에서 스폰서를 찾아가 포도주잔을 권하고, 호프집에서도 자유롭게 합류하는 모습은 대조적이다. 최규병 9단은 “이세돌에게 우물 안 개구리처럼 행동하기를 바라는 것은 시대의 흐름과 맞지 않다”며 “그러나 이세돌도 일인자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반대파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창금 기자 한겨레 스포츠부 kimck@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