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될 줄 미리 알았더라면
등록 : 2009-06-11 19:04 수정 : 2009-06-12 14:41
드라마 PD인 윤석호 감독은 ‘스타 제조기’로 유명하다. 시트콤으로 얼굴을 알리는 바람에 코믹 이미지가 강한 송혜교를 청순가련형 시한부 역에 과감히 기용해 대박을 터뜨렸다. 원빈도 그의 <가을동화>를 통해 스타 반열에 올랐고, 손예진도 <여름향기>를 통해 스타로 등극했다. 박성수 감독 역시 <햇빛 속으로>를 통해 김하늘을 발굴하고 <네 멋대로 해라>를 통해 이나영과 양동근을 ‘배우’로 키워냈다. 이렇듯 스타들을 키워내고 발굴하는 PD가 있는가 하면, 제 발로 찾아오는 스타를 알아보지 못하고 ‘뻥’ 차버리는 PD도 있다.
예능 PD K씨는 자신의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싶어한 송혜교를 거절한 걸 아직도 후회하고 있다. 지난 2000년 <순풍 산부인과>로 이름을 알린 송혜교가 당시 가요 프로그램을 연출하고 있던 K씨를 찾아와 MC 오디션을 본 것. K씨는 바로 송혜교를 낙방시켰고 얼마 가지 않아 송혜교는 <가을동화>로 대박이 났다. K씨의 실수는 이걸로 끝나지 않았다. 이후 여러 연예인들이 출연해 신변잡기를 털어놓는 예능 프로를 맡고 있던 K씨. 그의 프로에 <논스톱>으로 얼굴을 알린 현빈이 출연했다. 하지만 K씨는 녹화 시간 2시간 내내 현빈에게 이렇다 할 카메라 한 번 비춰주지 않고 말 한마디 시키지 않는 결례를 범하고 말았다. 그저 그런 신인배우로 본 것이었다. 1년 뒤 <내 이름은 김삼순>으로 스타가 된 현빈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왜 예능 프로에 출연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제가 옛날에 한 번 나간 적이 있는데요. 그때 너무 상처를 많이 받아서요”라고. 이 인터뷰를 본 K씨는 행여 방송사에서 현빈을 만날까 도망다닌다고 말한다.
‘될 성싶은 스타’를 알아보지 못하는 PD는 비단 K씨뿐만은 아닌 듯하다. 영화배우 조인성은 <학교> <논스톱>을 찍으면서 ‘연기를 못한다’는 이유로 PD에게 무지하게 혼난 것으로 알려졌다. 직후 <피아노>를 통해 언제 연기력 논란이 있었느냐는 듯 대스타로 부상했는데 말이다. 할리우드까지 진출한 스타 J는 신인 시절 연기를 못한다는 이유로 자신을 때린 PD J씨에 대해 아직도 분을 못 풀고 있다는 후문이다.
스타들은 대개 이런 사연들을 숨기게 마련이고, 또 스타를 알아보지 못한 PD들도 이런 과거를 숨기게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 시대 최고의 ‘폼생폼사’ 이병헌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KBS 14기 공채로 뽑힌 60명이 연수에 들어갔는데 본부장, PD님들이 ‘넌 가까스로 붙었다. 1호로 잘릴 테니 조심해라’면서 나만 면박을 줬다. …<아스팔트 내 고향>이 첫 작품인데 감독님이 사람들 앞에 나를 세워놓고 ‘넌 이게 데뷔작이자 은퇴작이야. 끝나면 방송사 근처 얼씬거리지 마라. 대체 왜 연기자가 되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다른 건 하나도 안 힘들었는데 욕먹는 것이 고됐다. 그게 너무 싫고 무서워 촬영장 나가는 것이 가위눌릴 정도였다.”
지금도 방송사 어딘가에선 예비 스타들이 PD들에게 구박을 당하고 있진 않을까. 또 어느 술집에선 PD들이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며 가슴을 치고 있진 않을까.
착신아리 블로거·mad4tv.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