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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농업을 바꿔야 인류가 산다

360
등록 : 2001-05-2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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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질병이 생태계 위협 등 재해 속출… 분뇨·하수로 말미암아 생물다양성 파괴

영국을 비롯한 유럽연합(EU) 국가들은 보이지 않는 적과 한 차례 전쟁을 치르고 있다. 상당수의 지역이 바리케이드로 둘러쳐져 가축은 물론 외부로부터 찾아오는 모든 방문객들을 차단하고 있다. 심지어 선거까지 연기될 위기에 처하고 있다. 그 때문에 영국의 관광산업은 수백만명의 고객을 잃게 되어 울상을 짓고 있다. 물론 그 이유는 유럽을 휩쓸고 있는 광우병, 구제역과 같은 가축질병 때문이다.

곳곳에 가축들의 사체가 산더미처럼 쌓이고, 시체를 태우는 시꺼먼 연기가 하늘을 뒤덮어 흉흉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환경단체들은 동물들의 사체 소각으로 발생하는 매연이 새로운 공해가 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소각 이외의 다른 방법을 사용할 것을 주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영국을 비롯한 EU국가들은 대량도살과 소각 이외에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유럽연합이 도살과 소각을 하는 까닭은

사진/ 농업이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광우병으로 인해 소각되는 소들은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 한 축산농가의 모습.(이정용 기자)
벨기에와 네덜란드와 같은 일부 EU국가에서는 조심스럽게 백신 이용을 거론하고 있지만 아직 유럽연합 전체로까지 논의가 확산되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백신 이용의 가장 큰 문제는 백신을 사용했을 경우 가축들 중 일부가 병에 걸렸는지 확실히 알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확실한 증상을 일으키지는 않지만 감염된 동물이 다른 동물들에게 병을 전파시켜 가축 전체에게 질병이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EU는 지난 1991년에 구제역 백신 사용을 전면 중단했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EU의 백신 사용 금지를 과학적 근거보다는 경제적 이유 때문이라고 본다. 백신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백신을 사용하는 러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의 여러 국가들로부터 육류 수입을 금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EU에서 생산되는 육류의 78% 이상이 전세계적으로 수출되고 있다. 만약 백신 금지정책을 포기한다면 EU는 더이상 다른 나라들의 수출을 막을 수 없게 될 것이다. EU의 많은 국가들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감수하면서 도살과 소각 정책을 강행하는 숨은 이유는 그 때문이다.

이전 시대에는 찾기 힘들 만큼 큰 규모로 확산되고 있는 가축질병의 문제는 단지 축산업이 직면한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환경과학자와 생태학자들은 대규모 가축질병의 발생이 미칠 포괄적인 문제에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환경과학자들은 현대적인 농업과 축산이 지구 온난화에 맞먹을 만큼 큰 영향을 지구환경에 주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의 생태학자 데이비드 틸먼을 비롯한 과학자팀은 오늘날의 농업이 지구에 가하는 나쁜 영향으로 경작지와 방목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파괴되는 열대우림, 축산업의 결과로 발생하는 질소에 의한 오염, 그리고 광우병이나 구제역과 같은 가축질병의 확산과 인간을 비롯한 다른 동물의 감염 등을 꼽았다. 그들은 이러한 영향들이 서로 상승효과를 일으키면서 머지않아 기후변화에 못지않은 악영향을 생태계 전체에 미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우선 초국적 외식산업의 확산과 식생활의 서구화로 인한 육류소비와 쇠고기 중심의 육류섭취 패턴 때문에 앞으로 50년 이내에 미국만한 면적의 숲지가 방목지로 바뀌게 될 예상이다. 이 과정은 필연적으로 생물다양성(bio-diversity) 파괴를 불러온다. 방목지와 농지를 위해 개간될 많은 지역 중에 열대우림과 초지 등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열대우림은 현재 지구에서 가장 많은 생물종을 보유하고 있는 생물다양성의 보고(寶庫)이다. 많은 학자들은 이러한 생물다양성의 파괴는 가축들에서 나타나는 신종 질병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틸먼 박사는 “최근의 가축질병 창궐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조밀한 가축 사육방식과 낮은 유전적 다양성으로 인한 예측된 재해”라고 말한다.

더구나 농업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제초제와 비료 등은 지구생태계를 크게 교란시키고 있다. 이미 이러한 농업활동을 비롯한 인간활동으로 인한 질소와 인의 생태계 유입량은 자연적으로 형성되는 양과 같은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 그 대부분은 비료와 가축들의 분뇨에서 나오는 것이다. 대략 1만 마리 정도를 사육하는 대규모 축산농가에서 나오는 가축의 분뇨와 하수는 웬만한 소도시에서 나오는 하수와 맞먹을 정도의 오염효과를 가진다고 한다. 이러한 질소와 인은 하천과 얕은 바다에 이른바 부영양화를 초래하게 되고, 그 결과 적조현상과 같은 여러 가지 이상현상이 일어나 생태계에 나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생태계·인류의 미래 위한 근본 처방을…

사진/ 조류 독감에 걸린 닭들.(SYGMA)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가축의 질병이 인간을 비롯해서 다른 동물로 확산되는 양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얼마 전 큰 사회문제로 부각되었던 변형 크로이츠펠트야곱병, 즉 인간광우병이나 몇해 전 조류에서 사람으로 전이되어 나타났던 조류독감이 그 단적인 예이다. 그렇지만 가축의 질병이 사람을 제외한 다른 생물들, 나아가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는 아직 추정도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인류가 농업을 시작한 것은 지금부터 약 1만년 전으로 추정된다. 그 덕분에 인류는 수렵채취의 고단한 시절을 마감하고 정착생활을 시작하고 도시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농업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규모로 자연을 착취하고 있고 사육방식도 날로 집약화를 더해가고 있다. 그리고 이제 농업은 인류의 미래에 크나큰 도전으로 부상하고 있다. 아직까지 광우병이나 구제역의 발생원인은 확실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일회적인 처방이 아니라 생태계와 인류의 미래를 고려한 장기적인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일이다.

김동광/ 과학평론가·과학세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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