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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서태지 효과'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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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08-1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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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서태지 어떤 음악을 선보일 것인가… 촉각 곤두세우는 대중음악판

신화는 재현될 것인가. 지난 97년 7월 은퇴 선언 뒤 곧바로 미국으로 떠나 그림자도 드러내지 않던 서태지가 돌아온다. 98년 서태지는 미국에서 솔로 컴백 앨범 <서태지 980707>을 제작, 발표했지만 국내에서 그를 볼 수는 없었다. 궁금증은 더해갔고 방송사의 연예 프로그램은 비슷한 사람을 봤다는 제보만으로 해외취재를 하는 용감무쌍함까지 보일 정도였다. 그럴수록 서태지는 머리카락 한올 드러내지 않고 꼭꼭 숨었다. 그러던 서태지가 4년7개월의 칩거를 벗어나 오는 9월, 음반 발매와 함께 본격적인 공연과 방송활동을 시작한다. 커튼이 올라가고 드디어 경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지난 8월11일 오후 3시 서태지기념사업회(서기회)의 홈페이지(seokihei.alpha.co.kr)와 태지존(www.taijizone.com) 등 팬클럽홈페이지에는 컴백을 알리는 서태지 본인의 편지가 올랐다. 이날 서기회의 사이트는 접속 폭주로 한때 다운되기도 했으며 아직까지 유저들이 몰려 원할한 사이트 운영이 마비된 상태다. 태지존 역시 쏟아지는 팬들의 문의 때문에 비상게시판이 열렸다. 통신공간에서는 벌써 H.O.T 팬들과 서태지 팬들의 기싸움이 시작됐다.

중압감에 밀려 일정조정하는 가수들


서태지 컴백의 파장은 통신공간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술렁이게 하고 있다. 이미 한국에 들어와 있다는 루머가 퍼져나가고, 어떤 이들은 마이클 조던이 NBA에 컴백하면서 다우존스 주가 폭등이 일어났던 이른바 조던 효과에 비유하며 그의 귀환을 설렘과 긴장 속에서 지켜보고 있다.

서태지의 컴백에 가장 촉각을 세우고 있는 쪽은 역시 대중음악판이다. 9월은 초대형 가수들이 활동을 시작하는 달이다. H.O.T 등 인기가수들은 9월에서 연말의 각종 시상 때까지 서너달을 본격적으로 뛴다. 올해도 8월 말에 H.O.T, 9월1일 조성모의 새 음반 발표계획이 잡혀 있었는데, H.O.T는 9월 말로 출시를 연기했다. 본인들은 서태지가 주는 중압감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이들 가수들의 스케줄 조정은 이제 불가피해진 셈이다.

긴장하는 대형 기획사들과 달리 유통업계는 장기불황에 여름이라는 계절적 불황까지 겹쳐 최악인 음반시장을 타개해 나갈 구원자로 그의 컴백을 기대하고 있다. 신나라뮤직의 정문교 사장은 “실패로 평가받는 솔로 데뷔 앨범도 가볍게 100만장을 뛰어넘었다. 국내 활동까지 시작하는 이번 앨범의 경우, 설사 음악적으로 만족할 만한 평가를 받지 못하더라도 100만장은 기본적으로 소화될 것” 이라면서 “단순히 양의 문제뿐 아니라 음반시장을 떠난 서태지 세대의 20∼30대 음악팬들을 음반매장에 돌아오게 하는 순기능도 기대해볼 수 있다”고 점쳤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된 지 4년이 지났지만 서태지 팬들의 열광은 전혀 시들지 않고 있다

서태지의 컴백이 얼마나 대중음악 판갈이의 핵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비관론자들은 서태지팬들의 노후화(?)를 지적한다. 한국 대중음악시장에서 밀리언 셀러의 열쇠를 쥐고 있는 10대들은 이제 서태지의 대안을 스스로 개척해 놓은 상태다. 서태지가 부재한 상황에서도 서기회를 비롯한 서태지팬들의 충성도는 여전히 건재하지만 이미 20대를 넘긴 이들의 응집력을 10대의 것과 비교할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공연문화에 불을 지필 수도

“90년대 이후 가수의 음반을 사고 노랠를 줄줄 외우며 옷차림까지 따라하면서 가수를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만드는 것은 10대다. 그런데 10대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철저히 대중적인 전략을 쓸 수밖에 없다. 데뷔 이후 다양한 음악적 실험으로 대중성의 틀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하며 쌓은 서태지 신화는 이제 단순히 인기와 맞바꿀 만한 정도를 넘어섰다. 섣불리 대중을 움직이려는 위험한 시도는 치명적인 실수가 될 수도 있다.” 터보, 포지션, 주영훈 등의 소속가수를 두고 있는 기획사 KSM 권승식 대표의 예측이다.

1996년 절정의 인기를 뒤로 하고 팬들에게 작별을 고하는 서태지. 오랜 공백을 딛고 다시 신화를 창조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케이블 음악채널 m·net 신형관 PD의 의견은 다르다. “91년 데뷔 당시 우리나라 말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랩을 끌어와 포스트 서태지 시대를 온통 랩 천지로 바꾼 사람이 바로 서태지다. 솔로 앨범 실패 이후 절치부심 끝에 나오는 음악이니만큼 음악시장에 2단계 혁명을 몰고올 가능성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또 ‘콘서트도 가급적 많이 할 것’이라는 서태지의 컴백 선언 글귀에서도 서씨는 음악시장의 획기적 변모를 예측하고 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우리 대중음악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서태지 이후 대중음악의 방향은 오히려 심하게 왜곡됐다. 댄스 일변도, 음악보다 외모로 승부하는 그룹들의 기승, 잠적과 활동을 반복하는 행태 등 서태지를 잘못 배운 가수들만 살아남았다. 서태지가 공연에 본격적으로 나서면 씨가 마른 공연문화에 불을 지필 수도 있을 것이다.”

서태지 파장은 어디까지

서태지의 98년 솔로 앨범을 ‘한없이 자유롭고 싶은 욕망과 대중의 영웅으로 남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벌어지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로 평가한 대중음악평론가 이영미씨는 “모든 가능성을 열려 있다. 서태지가 이 두 가지 욕망 가운데 어느 편을 선택했는지는 결국 뚜껑이 열린 뒤에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결국 성공의 관건은 결국 은색 원반 안에 담길 음악일 것이다. 이미 믹싱과 마스터링을 끝낸 새 음반에 대한 정보는 역시 서태지답게 철저한 보안에 붙여졌다. 다만 인디밴드 닥터 코어 911과 크로우의 기타리스트가 얼마 전 서태지의 호출로 미국에 갔다는 사실과 서태지의 음악적 취향으로 막연한 예측을 해볼 수 있을 뿐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음반 역시 새로운 음악을 담을 것이라고 추측하지만 전작들처럼 록음악의 울타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실험이 될 것이라는 데는 대략 의견이 일치된다. 그의 개인적 취향과 최근 음악적 동향과도 맞아떨어지는 하드코어나 랩메탈이 자주 거론되고 있다.

과연 서태지의 컴백은 미국 증시를 들었다 놓은 ‘조던 효과’를 능가할 수 있을까? 97년 ‘서태지와 아이들과 기업경영’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던 삼성경제연구원의 신현암 연구원은 “마이클 조던의 경우 은퇴 뒤에도 나이키와 맥도널도 광고에 등장하며 팬들의 시선을 받다가 컴백 직후 두 대기업의 주가가 폭등해서 조던 효과를 불러온 것”이라며 동등비교는 무리라고 설명하면서도 “떠날 때 잠재 에너지를 충분히 남겨두고 떠났기 때문에 어떻게 불을 지피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어마어마해질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우리 대중음악사를 서태지 이전과 서태지 이후로 가른 당사자가 이제 그 역사에 다시 또 하나의 거대한 획을 그을 수 있을 것인가. 2000년 8월, 대중음악계와 팬들은 작은 거인 서태지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다.


서태지의 '8·11 선언문'

“안녕하세요, 태지입니다”로 시작하는 서태지의 편지는 “2년 동안 새로운 음반작업에 몰두해 왔으며 다행히도 좋은 음악이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국내활동의 결심을 만들어냈”다고 밝히고 있다. 서태지의 팬들은 이 컴백선언문을 남북정상회담에서 발표됐던 6·15선언에 비유해 8·11선언’으로 부르기도 한다. 서태지가 편지에서 ‘9월 초’라고만 밝힌 귀국 날짜는 팬뿐 아니라 언론이 눈을 뗄 수 없는 초미의 관심사다. 이 역시 서태지쪽은 철저히 보안에 부치고 있지만 서태지와 한국 음악팬의 유일한 다리가 됐던 ‘서태지와 아이들 멤버’ 양현석의 행보를 통해 예측되는 날짜는 9월3일이나 4일께다. 서태지는 또 양현석이 대표로 있는 양군기획이 9월5일부터 10일까지 대관해 놓은 서울 올림픽공원 내 펜싱경기장에서 8, 9일께쯤 대형 컴백쇼를 열 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방송3사의 물밑싸움 끝에 문화방송쪽에서 쇼의 생중계를 낙찰받았다. 얼마 전 합류한 닥터 코어 911의 안성훈, 크로우의 최창록을 포함한 한국과 미국, 일본의 세션맨들이 이번 공연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편지에서 “이미 믹싱과 마스터링이 끝난 상태”라고 설명한 새 앨범이 어떤 레이블을 달고 시장에 나올지도 궁금한 대목이다. 계약서에 사인하고, 마스터 테이프를 넘기는 일만 남았으니 음반사만 결정되면 바로 시장에 나오게 된다. 이 레이블 역시 미정 상태이기는 하지만 컴백선언을 포함해 서태지가 홈그라운드에 돌아오는 데 다리를 놓은 양현석이 9월께 설립하는 아티스트 전문레이블 레코드사의 1호 음반이 될 확률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서태지는 편지에서 “음악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드릴 수 없어 죄송하다”는 눙을 치면서도 “이번 음악 역시 많이 색다른 음악이라는 것과 최선을 다한 음악”이라고 호기심을 자극해 팬들을 가시권 안에서 놓치지 않고 있다. 또 “좋은 음악이 만들어졌다”는 표현으로 국내활동에 대한 자신감을 피력했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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