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무적 B급 야구단
등록 : 2009-05-19 15:50 수정 : 2009-05-22 13:29
나는 케이블TV 버라이어티쇼가 참 좋다. 개인 시청률 순위에서 <무한걸스>가 <무한도전>을 앞지른 지 오래고, <기막힌 외출>을 보기 위해 ‘1박2일’이 나오는 채널을 광속으로 지나가기도 한다. 리얼을 추구하는 버라이어티쇼는 파닥거리는 날웃음을 주어야 한다. 그러기에 지금 지상파의 유사 리얼리티쇼는 너무 작위적이다.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스타들이 ‘대한민국 평균 이하’인 척하는 것도 눈 가리고 아웅 같다. 진짜 야생을 찾는다면 케이블을 뒤져야 한다. 내일 당장 잘려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물밑 스타들의 각축장 말이다.
몇 주 전 케이블TV 기사가 와서 기계를 바꿔 달아주었다. 고화질(HD)로 화질도 좋아지고, 채널도 많아지고, 인터넷 속도도 빨라지고… 어쩌고 하더니 전화기도 하나 달아놓고 갔다. 귀찮으니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라고 했는데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케이블 채널이 온통 바뀌어 그동안 눈 감고도 번호를 콕콕 찍어 찾아가던 방송들이 마구 뒤섞여버린 거다. 그래서 헤매다 ‘천하무적 야구단’이라는 걸 보게 되었다.
스스로 B급, C급이라 칭하는 연예인들이 야구를 테마로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임창정·김창렬은 자신을 못 믿는 PD에게 어떤 일이 있어도 끝까지 간다고 각서를 쓴다. 제작진은 심지어 변호사를 통해 각서가 법적인 효과가 있음을 밝힌다. 이들은 이제 발등에 불이 떨어져 출연할 스타들을 섭외하려고 바쁘다. 강산이 두 번 변한 뒤 태어난 것 같은 F4 김준에게 굽실대고, 꽃단장하는 미남 스타들을 찾아가 온갖 거짓말과 허풍으로 꼬여댄다. 빵빵 터지지는 않았지만, 피식피식 웃음이 새기 시작했다. 이거 제대로 밑바닥을 긁는데? 그런데 이하늘이 말한다. 자신들은 ‘지상파에서 케이블을 지향’한다고(<천하무적 토요일>, 한국방송2 토요일 오후 6시30분). 아니 이거 케이블 아니었어?
기존의 지상파 예능을 들썩이던 스타들은 거의 전무, 게다가 별로 반응이 없을 거라고 좀 지나치다시피 강조하는 야구라는 소재. 어쨌든 ‘천하무적 야구단’은 지상파라는 특A급 전파의 황금 시간대를 타면서도 계속해서 B급 정서에 호소한다. 그게 아슬아슬하기는 하지만, 나름의 재미를 준다. 왕년의 놀던 두 형- 이하늘과 김창렬- 이 풀이 죽어 예능 좀 하겠다고 나서는 것도 마음을 흔들고, 야구 초짜 마르코의 막무가내 분투도 기대된다. 생각해보니 이들의 진정한 맞상대는 쟁쟁한 야구팀들이 아닌 것 같다. 매번 주말이 지나면 <무한도전> <스타킹>과의 시청률 비교로 살짝 놀림감이 되는 분위기. 애초에 B급 정서에 매달린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솔직히 첫 회의 발랄함에 비해, 이후의 진행은 지지부진하다. 웃음을 줄 건지 감동을 줄 건지도 불명확하고, 출연진들이 야구팀을 구성할 최소 9명은 될 텐데 그 캐릭터들이 잘 살아날지도 미지수다. 그냥 내 생각이지만, 시청률 잡기에 실패하면 아예 2군 리그인 케이블로 옮기는 게 어떨까? 거기서 인기를 모으면 다시 지상파로 진출하는 거다. 그게 진짜 리얼이고, 진짜 야구의 시스템 아닌가.
이명석 저술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