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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연예인·건축가가 돈 잘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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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5-2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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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문화예술인들은 어떻게 사나… 가장 가난한 분야는 무용·영화순

문화예술장르 가운데 어떤 분야가 가장 돈을 많이 벌고, 어느 분야가 가장 가난할까?

우리나라 문화계에서 가장 수입이 많은 장르는 바로 ‘연예’이고, 가장 가난한 분야는 ‘무용’인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경제적 보상으로 순위를 매기는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200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나라의 문화예술계에서 어느 분야가 가장 부유한지는 일반인들에겐 가장 흥미로운 관심사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예술가 월평균 수입 231만9천원


최근 문화관광부와 한국문화정책개발원은 ‘문화예술인실태조사 2000’을 발표했다. 3년 주기로 발표하는 이 자료는 문학, 미술, 건축, 사진, 음악, 국악, 무용, 연극, 영화, 연예 등 모두 10개 분야별 예술가 100∼200명씩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이다. 표본수가 아주 많지는 않고 분야별로 다소 차이가 있긴 하지만 바로 지금 우리나라 문화예술인들이 어떻게 활동하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읽을 수 있는 자료로 눈길을 끈다.

조사에 따르면 예술가 개인의 월평균수입은 231만9천원으로 97년의 238만4천원에서 약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분야별로 보면 연예계 종사자는 월평균 446만원가량 버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무용은 월평균수입이 156만원으로 그 절반에도 못 미쳤다. 그러면 배우 출연료가 수억원씩 하고 영화 한편으로 수백억원씩을 벌어들인다는 영화계는 어떨까. <한겨레21>이 지난 358호에서 영화스태프들의 열악한 삶을 보도했듯이 모두가 많은 수입을 올리는 것은 아닌 것으로 조사됐다. 영화계는 평균월수입이 158만원으로 두 번째로 가난한 예술 분야로 나타났다.

지난 97년 조사에 비해 이번 조사에서는 예술가들의 수입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97년 월평균수입 593만원으로 가장 ‘부유’한 분야였던 건축이 2000년 조사결과 358만원으로 2위로 내려갔고, 97년 336만원으로 2위였던 연예 분야가 최고수입장르로 올라섰다. 건축가들의 수입이 이처럼 줄어든 것은 구제금융사태 등 경기가 극도로 위축되면서 건축수요가 급격히 줄어든 탓으로 분석된다. 또한 일반적으로 가장 가난할 것으로 예상되는 연극은 의외로 수입이 많아 전체 10개 장르 가운데에서 5위를 차지했다.

97년보다 수입이 줄어든 분야는 건축 외에도 문학(186만3천원→175만9천원), 미술(170만7천원→163만6천원), 사진(254만7천원→245만3천원), 영화(179만5천원→158만3천원) 등 6개 장르였다. 반면 연예와 연극을 비롯해 국악과 음악 등 4개 장르는 수입이 더 올라갔다. 특히 연극 분야는 97년 월평균수입 161만4천원보다 크게 늘어나 208만7천원으로 40여만원이나 상승했다.

예술가들의 지출은 어떨까. 역시 돈을 가장 잘 버는 연예인(월평균지출액 210만원)들과 건축가(233만원)가 지출이 높았고, 문학가(77만원)들이 가장 적게 돈을 쓰는 편으로 나왔다. 3년 전에 비해 지출규모가 많아진 분야는 연예(29만4천원 증가)와 음악(29만2천원 증가)이었고, 다른 장르들은 대부분 지출이 약간씩 줄어든 편이었다.

예술활동 만족도 급격히 떨어져

의미심장한 점은 지난 3년 사이에 예술가들이 예술활동에 대한 느끼는 만족도가 엄청나게 떨어진 점이다. 97년 조사 당시 예술가들은 “자신의 예술활동에 만족하는지” 여부에 대해 90.9%가 만족한다고 대답했고 불만이라는 대답은 6.1%였다. 그러나 2000년 조사에서는 만족이 절반 가까이 줄어든 56.5%로 줄었고 불만은 세배 이상 늘어나 20.6%나 됐다. 예술가들이 이처럼 자신의 문화예술활동에 대해 불만스럽다고 응답한 이유로는 ‘경제적 보상이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대부분(62,4%)이었다. 경제위기가 예술가들의 입지를 위축시키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편 문화관광부와 한국문화정책개발원은 예술가 조사와 더불어 일반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문화향수실태조사’도 함께 발표했다. 이 두 가지 조사에서는 공통된 질문도 있었는데, 예술가와 일반시민들의 시각을 비교해볼 수 있는 대목도 있었다.

문화산업의 관점에서 본 예술의 국제경쟁력에 대한 질문에서 예술가들은 매우 경쟁력이 높은 장르로 국악(37.1%)를 꼽았다. 그 다음으로는 17.3%가 무용을 들었고, 미술(16.2%)이 경쟁력이 매우 높다고 응답해 예술가들의 수입순위와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일반시민들에게 가장 발전된 예술 분야를 물은 결과는 전통예술이 39.4%로 으뜸으로 꼽혔고, 영화가 19.5%로 그 다음, 연예(15%)와 미술(10.8%)였다. 그리고 가장 적은 응답을 받은 장르는 무용(0.9%)이었다.

반면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국제적 경쟁력에 대한 평가 항목에서 “경쟁력이 매우 낮다”는 평가를 가장 많이 받은 분야는 문학(30.2%), 건축(28.8%), 미술(20.3%)의 순이었다. 이에 비해 일반인들이 꼽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낙후된 예술 분야는 가장 발전된 분야에서 1위였던 전통예술이 18.8%로 가장 낙후된 예술 분야에서도 첫머리에 꼽혀 상반된 시각을 보여줬다. 낙후 장르 두 번째는 서양고전음악(18.1%), 3위는 문학(14.9%)의 순서로 예술가들의 시각과는 다소 차이가 나타났다.

그러면서도 일반인들은 가장 관람하고 싶은 예술행사로 연극(23.3%)과 영화(23.2%)에 이어 전통예술행사(16%)를 꼽아 전통예술이 가장 낙후됐지만 그래도 친근하고 가고픈 문화장르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과연 1년에 몇번이나 예술행사장에 찾아갈까. 2000명을 대상으로 물어본 결과 1년에 단 한 차례도 문화행사장을 찾지 않는 사람이 절반에 가까운 45.3%로 집계됐다. 반면 4분의 1인 26.9%의 사람들이 연 4회 이상 예술행사를 관람한다고 밝혔다. 문화를 향수하는 양상이 문화를 멀리하는 사람은 계속 멀리하고, 문화를 즐기는 이들이 집중적으로 문화를 소비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소득에 따라 문화 격차가 벌어지고 있기도 하지만, 여유가 있어도 역시 문화는 한번 맛을 들여야 계속 빠져들게 되는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 1년 동안 에술행사를 관람한 비율 54.7%는 97년의 66.8%에 비해 많이 줄어든 것으로 어려운 경제상황 때문에 국민들이 마음에 여유가 줄어들었다는 것이 수치로 드러났다. 3년 뒤에는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까.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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