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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인생 세 바퀴는 굴려야 맛이 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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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4-23 18:01 수정 : 2009-05-19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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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방송 <세바퀴>. 사진 문화방송 제공
인생이라는 수레는 몇 바퀴나 굴려야 웃음의 참맛을 만들어낼까? 한 바퀴- 어린아이의 천진한 실수는 모두를 무장해제시킨다. 두 바퀴- 청년의 톡 쏘는 개그는 세상을 뒤집어버린다. 세 바퀴- 어른의 푸근한 말솜씨는 장롱 밑에 숨은 웃음도 알아서 기어나오게 한다. 가족 퀴즈 토크쇼를 내건 문화방송 <세바퀴>가 토요일로 자리를 옮겨 시청률 20%에 도전하고 있는 이유다.

퀴즈나 게임 형식을 내건 버라이어티쇼는 참으로 꾸준하다. 전설의 <가족오락관>이 막을 내렸지만, 한국방송 <상상플러스 시즌2> <스타 골든벨>이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사실 이 쇼들이 풀라고 내놓는 문제들은 별스러울 게 없다. <세바퀴> 역시 ‘수험생 시절 부모님이 제일 많이 한 거짓말’이라든지, ‘개그맨 이봉원이 박미선과 결혼할 때 신부에게 해주겠다고 한 약속’처럼 답을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듯한 질문들을 던져준다. 중요한 건 그렇게 사소한 호기심으로 시청자를 꼬인 뒤에, 출연자들의 어떤 말솜씨와 몸솜씨로 그들을 낚아채느냐 하는 데 있다.

<세바퀴>는 20명 가까운 출연진으로 물량 공세를 펼치며, 세대별로 나뉘는 세 겹의 촘촘한 웃음 그물을 치고 있다. 먼저 이특이나 강인처럼 10대들을 꽉 잡고 있는 아이돌 스타들이 전진 배치된다. 이어 김신영이나 화요비 같은,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맹활약하고 있는 20대 취향의 입담꾼들로 그 뒤를 감싼다. 마지막으로 이 프로그램의 진정한 주인공들인 임예진, 이계인 등 중년 스타들이 버티고 앉아 앞의 미끼들을 당겼다 놓았다 한다.

사실 매번 얼굴이 바뀌는 젊은 스타들의 경우, 이 쇼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특 정도가 그나마 살아남는 법을 알아내 강인에게 알려주는데, 그 3원칙은 다음과 같다. “양육강식, 무조건 뱉어야 한다. 할 말이 없으면 MC를 걸고넘어져라.” 그러나 최근 이 쇼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가장 잘 보여준 것은 화요비 같다. 양희경·이경실·선우용녀의 병풍에 포위당해 시달리던 화요비가 내뱉는다. “여기가 무서워요.” 그게 포인트다. 화요비는 <세바퀴>라는 대가족 집안에 들어온 새색시의 역할을 제대로 했다. 그녀를 가운데 두고 숙모와 삼촌들은 어르고 달래고 위해주는 척 놀려댄다. 화요비 스스로 말하는 ‘어른 공포증’이 적당히 배어나올 때, 우리는 매우 한국적인 웃음의 구도를 얻는다.

26년간 <가족오락관>을 이끌어온 허참의 눈물은 아주머니 계모임의 시대가 끝났음을 말한다. <세바퀴>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가족’을 내세우면서도 고전적인 가족의 형태를 벗어나, 콩가루 냄새가 제법 배어나오는 현대적인 대가족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40대인데도 복근을 자랑하며 비 흉내를 내는 삼촌도 있고, 왕년에는 ‘예진 아씨’라고 불렸지만 지금은 드라마 <아내의 유혹>의 악녀 애리를 흉내내는 숙모도 있고, ‘임신 마케팅’으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는 다산의 큰언니도 있다.

이명석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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