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자 눈높이에 맞춘 오디오 마니아의 재미난 세계, <소리의 황홀>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기계 가운데 인간을 가장 매혹시키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자동차와 오디오가 꼽힐 것이다. 특히 남성들에게 이 두 가지는 이성만큼 매력적인 존재다. 경제적 능력 때문에 그림의 떡일 수 있어도 “나도 언젠가는 저 모델을 가져야지” 하고 다짐하게 만드는 존재가 바로 자동차와 오디오다.
반드시 아내가 집을 비운 시간에…
하지만 진짜 마니아들에게 이 두 가지는 매우 다른 차이가 있다. 승용차는 늘 새 모델이 선망의 대상이지만 오디오는 꼭 그렇지 않다. 진정한 오디오광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오디오는 반드시 최신모델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나온 지 여러 해 지난, 심지어는 수십년된 옛 모델들이 더 인기좋은 경우가 많다. 이런 점에서 오디오는 다른 기계와는 다른 별난 기계다. 이처럼 오디오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오디오파일’(audiophile)이라고 부른다. ‘오디오를 사랑하는 사람’, 즉 오디오광이다.
오디오파일들은 한 회사에서 짝으로 나오는 기성 오디오 대신 이들은 앰프는 앰프대로 스피커는 스피커대로 따로따로 조합하는 맞춤 오디오에 도전한다. 원하는 소리를 내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이들의 꿈이다. 심한 경우 수천만원 이상을 투자하기도 한다. 일반인들에게 ‘매킨토시’는 디자인용 컴퓨터가 떠오르지만, 이들에게는 최고의 앰프, 그리고 그 앰프를 만드는 회사가 먼저 떠오른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희귀한 모델과 그 특징을 줄줄 꿰고 있는 것은 기본이다. 30년이 넘은 구형 스피커를 수소문해 찾아다니며, 보통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은 오디오 배선 전기줄을 수만원부터 수백만원까지 사다 끼우면서 소리의 질을 추구하는 이들이다. 이제는 멸종된 LP턴테이블도 이들을 위해 아직도 나오고 있다. 수요가 워낙 적다보니 값이 엄청나게 올라갔지만, 이들은 LP의 정감어린 소리를 위해 아낌없이 값을 지불한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오디오파일들이 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줄잡아 3만명 정도로 추산되며, 아직은 경제력이 안 따라도 언젠가는 오디오를 명품으로 직접 갖추고자 하는 잠재적인 이들까지 합하면 3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실제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오디오 전문잡지가 국내에서 6종이나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소리소문없이 이 취미에 빠져 있는 이들의 수가 만만찮음을 알 수 있다. 재미있는 점은 이들 가운데 절대 다수가 남성이란 점. 오디오파일들은 기본적으로 남성들이 여성에 비해 기계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는 성 차이 때문일 것으로 추론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아직 없다. 그러다보니 이들에겐 철칙이 있다. 기혼자의 경우 반드시 아내가 집을 비운 시간에 오디오를 들여놓는 ‘일을 저지르는 것’은 기본이다. 그리고 기계값도 10분의 1로 속이거나 오디오를 바꾼 경우 아는 사람과 바꿨다고 우기는 등은 오디오파일들의 기본적 요령이다.
이 오디오파일의 세계를 다룬 책이 최근 나왔다. 오디오파일이자 오디오 칼럼니스트인 윤광준(42)씨가 쓴 <소리의 황홀>(효형출판 펴냄/ 1만2천원/ 문의 02-756-0262)다. 책 내용은 오디오파일에 대한 것이지만 대상은 마니아들이 아닌 보통사람들이다.
윤씨는 오디오에 미쳐 오디오를 사러다닌 오디오 편력기와 오디오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들, 그리고 명품 오디오인 ‘하이엔드 오디오’ 이야기 등 세 부분으로 나눠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오디오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동안 오디오에 관한 책들은 대부분 마니아용 명품 가이드들로, 초보자 눈높이에 맞춘 오디오 수필집으로는 첫 번째 책이다.
최고의 소리는 사람마다 다르다
지은이 윤씨는 본업은 사진기자였지만 오디오에 빠지면서 아예 오디오 전문가로 나선 이다. 학생이던 1977년 자기보다 여유있는 친구의 독수리표 전축 소리가 부러웠던 것이 오디오파일이 된 발단이었다. 이후 그의 방을 거쳐간 오디오가 수십종이 넘는다. 윤씨 역시 윤씨가 원하는 최상의 소리, 궁극의 소리를 내는 오디오 조합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 그래서 윤씨는 보통 사람이라면 신경쓰지 않을 사소한 것까지 고민하며 오디오를 조합한다. 클래식 곡을 들으면서 바이올린의 음색이 어떤지, 활이 문질러질 때 발려진 송진의 느낌이 나는지에 신경을 쓸 정도다. 책에서 밝힌 윤씨의 경험담을 보면 마니아란 어떤 것인지를 실감케 한다.
“재즈 피아노의 거장 데이브 브루벡의 라이브 연주 음반을 들으면서 무대에 가득 찬 뽀얀 담배 연기의 느낌과 청중들의 콜록거리는 기침소리가 실감나지 않아 한동안 고민한 적도 있었다. 빅토리아 뮬로바가 연주하는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음 뒤에 숨어 있는 공기의 울림을 문제삼고, 소리가 아니라 연주 공간의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아 씨름하기도 했다. 그래서 스피커 스탠드에 볶은 모래를 넣어보기도 했고, 문짝 두께가 얇아 공명으로 음이 탁해질지 모른다며 아파트 문짝을 봉해버린 적도 있었다.”
책은 윤씨의 체험기가 바탕이 돼 있어 책은 재미난 이야기 나누듯 쉽게 읽힌다. 보통 사람들에겐 다소 황당할 정도로 오디오에 미친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유명 오디오에 얽힌 이야기들이 부담없이 이어진다. 진정한 명품은 첨단기술보다도 철저한 장인정신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들은 꼭 오디오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흥미로운 대목들이다.
그래도 의문은 생긴다. 오디오파일들은 왜 오디오에 그토록 미치는 것일까. 물론 음악을 사랑하기 때문이란 것은 불문가지의 필수조건이다. 하지만 이 음악을 즐기는 청각처럼 애매하고 둔한 감각이 없기 때문이다. 청각은 또한 사람마다 다 달라서 똑같은 음도 듣는 사람의 취향따라 좋게도, 나쁘게도 들린다. 그래서 최고의 소리는 사람마다 다르고, 오디오파일들은 각자 자기가 원하는 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귀를 100%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란 애당초 없는 것이고, 그래서 최상의 만족을 위한 노력과 집착은 커져만 간다.… 이만한 도취의 심연을 대신할 놀이가 이 세상에 또 있을지, 나는 아직 이 이상의 놀이를 알지 못한다.”
‘괜찮은 기기 조합방법’부록으로
음악이라는 것이 주는 지고의 체험, 극한의 체험은 정말 사람을 전율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여기에 엄청난 돈까지는 아니어도 자기 경제능력에 부담을 주면서까지 오디오를 사는 이유는 쉽사리 납득이 가기 어렵지만, 경험을 해보지 사람들은 그 체험이 얼마나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지 모른다고 윤씨는 설명한다.
“진정한 의미의 마니아 가운데 돈 넘쳐나는 사람들 본 적이 없어요. 돈많고 할 일 없어 오디오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엄홍길씨나 허영호씨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사람들이 돈 많아서 그런 비용을 써가며 거기 올라가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산이 좋아서 가는 거죠. 하지만 그 이전에 가진 경제적 능력으로 들여놔도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사람들이 미치고 희열을 느끼는 겁니다.”
물론 아무리 좋은 오디오를 갖고 싶은 사람이라도 거액을 투자하기는 쉽지 않은 법이다. 또한 꼭 비싼 것이라고 모든 이가 만족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윤씨는 전문가로서 권하는 괜찮은 기기 조합 방법을 책에 부록으로 달았다. 300만원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조합이어서 많은 이들에게는 그저 ‘꿈’같은 오디오가 되겠지만, 이런 것들을 떠나 그냥 책으로 훌훌 읽는 것만으로도 재미는 쏠쏠하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 아날로그 오디오 애호가들이 좋아하는 턴테이블과 카트리지들.
오디오파일들은 한 회사에서 짝으로 나오는 기성 오디오 대신 이들은 앰프는 앰프대로 스피커는 스피커대로 따로따로 조합하는 맞춤 오디오에 도전한다. 원하는 소리를 내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이들의 꿈이다. 심한 경우 수천만원 이상을 투자하기도 한다. 일반인들에게 ‘매킨토시’는 디자인용 컴퓨터가 떠오르지만, 이들에게는 최고의 앰프, 그리고 그 앰프를 만드는 회사가 먼저 떠오른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희귀한 모델과 그 특징을 줄줄 꿰고 있는 것은 기본이다. 30년이 넘은 구형 스피커를 수소문해 찾아다니며, 보통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은 오디오 배선 전기줄을 수만원부터 수백만원까지 사다 끼우면서 소리의 질을 추구하는 이들이다. 이제는 멸종된 LP턴테이블도 이들을 위해 아직도 나오고 있다. 수요가 워낙 적다보니 값이 엄청나게 올라갔지만, 이들은 LP의 정감어린 소리를 위해 아낌없이 값을 지불한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오디오파일들이 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줄잡아 3만명 정도로 추산되며, 아직은 경제력이 안 따라도 언젠가는 오디오를 명품으로 직접 갖추고자 하는 잠재적인 이들까지 합하면 3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실제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오디오 전문잡지가 국내에서 6종이나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소리소문없이 이 취미에 빠져 있는 이들의 수가 만만찮음을 알 수 있다. 재미있는 점은 이들 가운데 절대 다수가 남성이란 점. 오디오파일들은 기본적으로 남성들이 여성에 비해 기계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는 성 차이 때문일 것으로 추론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아직 없다. 그러다보니 이들에겐 철칙이 있다. 기혼자의 경우 반드시 아내가 집을 비운 시간에 오디오를 들여놓는 ‘일을 저지르는 것’은 기본이다. 그리고 기계값도 10분의 1로 속이거나 오디오를 바꾼 경우 아는 사람과 바꿨다고 우기는 등은 오디오파일들의 기본적 요령이다.


사진/ 오디오 파일들을 열광시킨 명품들인 골드문트 아폴로그 스피커(위)와 노틸러스 스피커(아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