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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문제 있으세요? TV에 전화하세요


문화방송 <4주후애> 등 여러 형식으로 가정 문제에 접근…
가명·재연에서 실명으로 직접 출연하는 경우 많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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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4-15 21:14 수정 : 2009-04-16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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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있으세요? TV에 전화하세요.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우리나라의 이혼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루 평균 946쌍이 결혼하고, 341쌍이 이혼한다(2007년 통계). 지난해 6월부터 협의이혼 때 숙려 기간을 갖도록 하면서 이혼율은 눈에 띄게 줄었으나 이혼에 앞서 부부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장치들은 부족한 상태다. 현실이 이러하자 TV가 가정 문제 해결사로 나섰다. 지상파와 케이블 방송에서 가정 문제 해결을 돕는 솔루션 프로그램들이 ‘진정성’ 논란 속에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문화방송 <생방송 오늘 아침-위기의 가족 화해의 기술> <4주후애>, EBS <60분 부모>, SBS <긴급출동 SOS 24>, 코미디TV <더 시크릿> 등이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토크쇼, 다큐멘터리, 재연 드라마 등 형식은 달라도 부부간의 갈등과 가정 내 문제에 귀기울이고 해결책을 제안해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가정법원에 손 잡고 온 부부

“(이혼하러 오는) 가정법원에 손잡고 들어오는 부부는 처음일걸요?”

문화방송 변명환 PD가 6mm 카메라를 들고 말을 건넨다. 카메라가 향한 곳엔 협의이혼을 신청하고 4주의 숙려 기간을 보내고 있는 최태규·김순영 부부가 나란히 앉아 있다. 서로를 바라보며 말을 주고받던 부부가 수줍게 웃었다. 며칠 전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다투던 결혼 10년차의 부부는 언제 이혼 도장을 찍었냐는 듯 다정해 보였다. 지난 4월8일 서울 서초동 가정법원에서 <4주후애> 촬영이 있었다. <4주후애>는 갈등을 겪는 부부들의 상담 치료를 돕는 솔루션 프로그램이다. 싸울 줄만 알았지 화해하는 방법을 모르는 제보자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맞춤 해결책을 제공해 대화의 물꼬를 터준다. 최태규·김순영 부부도 프로그램을 보고 출연 신청을 했다. 깔끔하고 꼼꼼한 성격의 최씨와 털털한 성격의 김씨는 말다툼이 잦았다. 이혼하자는 말을 먼저 꺼낸 건 남편이었다. 아내를 겁줄 생각에 ‘홧김’에 말했는데 진짜 이혼 도장을 찍게 됐다. 다급해진 최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방송사에 도움을 요청했다. <4주후애> 제작진은 이들을 4주 동안 면밀히 관찰했다. 심리검사와 상담을 통해 두 사람의 문제가 발견됐다. 남편은 분노가 많고, 여성성이 높았다. 아내는 억압된 환경에서 우울해했다. 전문가들의 상담과 치료가 이뤄졌다. 최면치료, 스킨십 강의, 대화법 코칭 등을 거쳐 부부는 자신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변호사와 치료를 도운 상담가들과 함께 조정실에 온 최태규씨는 “좋아지려고 노력 중”이라고 했다. 김순영씨는 “앞으로도 남편의 모습이 지금 같았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두 사람은 이혼 대신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문화방송 김영호 PD는 “부부 갈등의 문제는 자식들까지 연결돼 이후 세대까지 계속적으로 대물림하며 대인관계에 문제를 만든다”면서 “프로그램은 살아온 방식도, 표현하는 방식도 서로 다른 남녀가 자기 자신을 대면하고 다르다는 걸 이해시키는 과정을 통해 부부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솔루션 프로그램들이 문제를 발견하고 치료하는 과정은 비슷하다. 인터넷과 전화 제보를 통해 선별한 출연자가 확정되면 제작진은 제보자들의 일상생활을 관찰 카메라로 살핀다. 가족 내 문제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개별 심리 상담을 거쳐 문제의 원인을 파악한다. 이때 사회복지사, 정신과 의사 등 전문가들이 개입해 치료 방법을 결정한다. 단순히 대화법·스킨십 코칭·아이 훈육법 같은 교육만 필요할 때도 있지만 최면치료·드라마치료·약물치료 등 정신과적 치료가 병행되는 경우가 많다. 몇몇 솔루션 프로그램에서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서울가정문제상담소 김미영 소장은 “제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상처가 심각해진 가족들이 프로그램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 같다”며 “프로그램은 이들의 문제를 간접적으로 노출해 갖가지 문제를 요약해서 보여준 뒤 시청자에게도 문제의식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부부 갈등, 부모·자식 간의 갈등 사례를 보면 개인이 해결할 수 없어 사회의 도움이 절실한 경우가 많다. 변호사, 상담가와 함께 가정법원 조정실에 온 한 부부를 문화방송 카메라가 담고 있다. 사진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선정성·지속성 등 ‘진정성’ 논란

경기 불황으로 갈등을 겪는 부부들이 늘어나면서 솔루션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가족 문제도 다양해지고 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낸 ‘2008년 상담 통계’를 보면, 이혼상담의 비중은 1999년(60.8%)부터 꾸준히 감소하다 2008년(48.2%)에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경제적인 문제 및 배우자의 가출’ ‘종교갈등’ ‘알코올중독’ 등의 상담 비중은 이전보다 많아졌다. 솔루션 프로그램에 도움을 요청하는 이들도 이같은 문제들을 토로한다. 배우자의 극심한 알코올중독과 폭력성 등은 <생방송 오늘 아침-위기의 가족 화해의 기술> <긴급출동 SOS 24>에서 주로 다루는 내용이다. 4월9일 방송된 <생방송 오늘 아침>에서는 지난 1월에 소개했던 알코올중독에 빠진 젊은 신부를 다시 찾았다. 방송에 출연한 뒤 재활치료를 받으며 신부는 많이 호전된 상태. 하지만 남편과 다툼이 생기자 다시 술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여 시청자를 안타깝게 했다. 부부 사이의 갈등이 만들어낸 자녀 문제는 예전보다 더 심각해졌다. 김미영 소장은 “가정 내 불화가 어린 자녀의 성격장애를 가져오는 경우는 물론 최근에는 취업과 진학에 실패한 성인 자녀들이 부모를 향해 폭력성을 드러내는 사례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얼마 전 방영된 EBS <다큐프라임-8주간의 기적>에서는 부모의 갈등으로 과잉행동장애 증상을 보이게 된 딸이 다시 가정 내 불화의 원인이 되고 있는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부부 갈등, 부모·자식 간의 갈등 사례를 보면 개인이 해결할 수 없어 사회의 도움이 절실한 경우가 많다. 솔루션 프로그램의 순기능은 여기서 발휘된다. 가정 내 문제를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지 않고 사회적인 관심을 끌어와 공감대를 형성하며 적절한 치유 방법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출연자는 직접적인 상담을 통해, 제작진은 제작 과정을 통해, 시청자는 방송을 통해 다 함께 ‘전인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다.

그러나 솔루션 프로그램의 소재 접근과 표현 방식, 제보자들의 사후관리 과정에 대해서는 아직 ‘진정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부부간의 성폭력, 패륜 문제 등을 보여주는 표현 방식이 자극적이라는 지적이나, 지속적인 상담과 치료가 필요한 출연자를 방송 뒤에는 돌보지 않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따라붙는다. <긴급출동 SOS 24> 경우 가해자에 대한 분노와 피해자에 대한 동정을 극대화해 보여주면서 시청자의 비난을 자주 샀다.

솔루션 프로그램은 출연자 동의에 의해 촬영을 시작하지만 사생활 노출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때 모자이크와 가명 표기가 상담을 요청한 내담자들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쓰인다. 그러나 최근엔 실명과 얼굴을 그대로 드러내고 가정 문제를 상담받는 솔루션 프로그램도 생기고 있다. 갈등이나 문제가 없는 가정이 없고, 누구나 공감하고 필요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만큼 솔직하게 드러내겠다는 것이다. 토크쇼 <60분 부모>와 <4주후애> 등이 그 예다. 체면이 중시되는 사회에서 얼굴과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에도 이들 프로그램은 출연 신청이 끊이지 않는다. 이유가 뭘까? 문화방송 김영호 PD는 “그만큼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 아니겠냐”며 “도움을 요청할 만한 곳을 몰라 프로그램을 보고 신청하는 이들도 있지만, 어려운 경제 사정으로 시간당 10만원이 넘는 높은 상담비를 감당할 수 없어 방송사의 도움을 얻기도 한다”고 말했다. 솔루션 프로그램을 만드는 제작진들의 공통된 답변은 제보자들의 치료가 전화를 거는 순간부터 이뤄진다는 것. 자신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깊은 위로를 받는다고 한다.

감기가 오래되면 폐렴으로 번지듯 제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상처가 심해진 가족들이 솔루션 프로그램에 도움을 요청한다.

“제작진들이 모여 함께 고민해봤으면”

실험과 학습을 거치면서 진화 중인 TV 솔루션 프로그램들이 긍정적인 효과를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결혼과가족관계연구소의 이덕일 소장은 “한정된 방송 시간 안에서는 관계 회복이나 치료가 완전해질 수 없는 만큼 출연자들에 대한 제작진과 시청자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60분 부모>를 연출하는 강영숙 PD도 “방송은 교육적 기능도 담당하는 만큼 다른 사람의 삶에 개입할 때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며 “솔루션 프로그램 제작진들이 모여 바람직한 프로그램 제작을 위한 방법을 함께 고민해보는 자리가 만들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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