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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왜 500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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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4-08 17:01 수정 : 2009-04-10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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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500원입니까 / 사진 연합 김연정
내가 아는 50대 강아무개 여사는 요즘 지상파에서 방송하는 거의 모든 드라마를 섭렵한다. 방송 다음날 바로 업데이트되는 인터넷TV(IPTV)의 주문형 비디오(VOD) 서비스 덕분이다. 예전에는 같은 시간대 방영되는 드라마 중 입맛에 맞는 하나를 골라 봐야 했지만, IPTV를 설치한 뒤에는 방송 3사 일일 드라마는 물론 평일 미니시리즈와 주말 드라마를 줄줄 꿰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이렇게 TV를 보려면 돈이 많이 든다. 본방송 뒤 일주일 동안은 드라마 한 회당 500원의 요금을 내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일주일만 지나면 공짜로 볼 수 있지만, 다음회가 궁금한 강 여사로서는 일주일이 한 달만큼 길게 느껴진다. 기본요금 외에 한 달에 1만원이 훌쩍 넘는 비용을 추가로 내면서도 “보고 싶은 드라마 보는 데 그 정도는 아깝지 않다”는 위풍당당 강 여사다.

한 IPTV 업체의 최근 유료 콘텐츠 이용 건수 순위를 보면, 상위 20위 안에서 무려 12개가 지상파 드라마다. <아내의 유혹> <꽃보다 남자>는 물론, 시청률에서 별 재미를 못 보는 <카인과 아벨> <돌아온 일지매>도 순위에 들어 있다. 여기에 ‘1박2일’, ‘패밀리가 떴다’, <무한도전> 등 인기 예능 프로그램이 6개고, 영화는 고작 2개다. ‘IPTV의 유료 콘텐츠’ 하면 ‘영화’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지만, 실제로는 드라마와 쇼, 오락 프로그램이 ‘효자 콘텐츠’인 것이다. IPTV 업체의 한 관계자는 “정확한 수치를 밝힐 수는 없지만 드라마가 기대 이상의 엄청난 수익을 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인기 미국 드라마 <가십걸>에는 “요즘 누가 방송을 TV로 보냐?”는 대사가 나온다. 실제로 미국 드라마 제작사들은 방송사에서 받는 제작비보다 드라마 재판매로 얻는 수익에 더 비중을 둔다. 미국만의 상황이 아니다. 우리 또한 인터넷 다시보기 서비스, IPTV, 웹하드 다운로드,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등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채널이 무수히 많아졌다.

이런 드라마 소비 방식은 모두 ‘비용 지불’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강 여사처럼 세대를 불문하고 보고 싶은 콘텐츠에 기꺼이 지갑을 여는 시청자도 많아졌다. 이처럼 드라마 재판매 시장의 규모가 날로 커지고 있는데, 그 수익을 누가 얼마만큼 가져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시보기 서비스 매출은 방송 3사의 기밀사항이고, IPTV와 웹하드 다운로드 서비스 업체도 지상파 프로그램으로 벌어들이는 매출을 공개하지 않는다. <꽃보다 남자>의 웹하드 다운로드 매출이 수억원에 이른다는 소문만 무성할 뿐이다.

아무리 시청률이 잘 나와도 적자에 허덕인다는 제작사들을 생각하면 이제 이 새로운 수익 모델의 달콤한 열매를 어떻게 생산적으로 나눌 것인지 논의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더 궁금한 건 강 여사의 생활비 지출 내역에서 점점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유료 콘텐츠 이용료 ‘회당 500원’이다. 대체 어떤 기준으로 책정된 것일까? 더구나 회당 70분짜리 미니시리즈도 한 회에 500원, 회당 30분짜리 일일 드라마도 500원이라니, 이미 방송된 드라마를 다시 팔면서 근거 없이 너무 많이들 받으시는 거 아닌가?

피소현 블로거 mad4tv.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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