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민족주의는 이슬람교도들과의 반목을 불가피하게 만든다. 지난해 9·11 이후 최대 테러사건이 인도 뭄바이에서 일어난 일이 결코 우연일 수 없겠다. 지난해 11월29일 테러가 일어난 뒤 타지마할 호텔에서 검은 여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AP PHOTO/ GAUTAM SINGH
<거꾸로 가는 나라들>
RSS는 카스트와 종파를 막론하고 모든 힌두교인이 단결해 힌두국가(힌두스탄)를 설립하겠다는 목표로 세워진 단체다. 물론 이 경우 이슬람과 기독교는 힌두문화를 수용해야만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배제의 대상이 된다. 사실 1948년 간디를 암살한 청년도 RSS의 행동대원이었다. 놀라운 것은 이 조직이 인도에서 여전히 막강한 정치세력이라는 점이다. 저자는 이런 양상을 ‘근대화된 힌두주의’라고 부른다. RSS는 인도 정부의 최고위 관리들을 배출했을뿐더러 회원들이 거대정당, 교육시설, 노동조합, 문학협회 및 종교단체까지도 장악하고 있다. 이들은 RSS가 전파하려는 메시지가 인류의 평등과 근대화이며 하층 카스트와 부족민의 문화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힌두인을 제외한 ‘외래 인종’에 대한 태도는 1930년대 유럽 파시스트와 닮은꼴이다. “고유의 생활태도를 버리고 힌두 인종에 통합되거나, 그게 아니라면 힌두국가에 완전히 종속되어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고 어떤 특권도 누리지 않으며 특별대우, 심지어 시민권조차 없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 RSS의 주장이다. 물론 이러한 태도는 인도의 1억3천만 이슬람교도들과의 반목을 불가피하게 만들며, 힌두 민족주의자들이 2001년 9·11 사태 이후 이슬람 근본주의와의 전쟁에 나선 서구의 동맹자를 자처하면서 사정은 더 악화되었다. 지난해 말 9·11 이후의 최대 테러사건이 인도 뭄바이에서 일어난 일이 결코 우연일 수 없겠다. 서구식 근대화의 결과와 흔적을 더듬어가는 여정에서 저자가 인도와 파키스탄, 카슈미르, 아프가니스탄, 네팔을 거쳐 이르는 곳은 티베트다. 1950년 중국의 침탈에 의해 강제적인 근대화에 직면한 티베트는 근대화가 양산해내는 모든 문제의 축소판이다. 저자의 요약에 따르면, “중국이라는 번쩍이는 신세계를 받아들인다는 건 탈공산주의 중국인들처럼 철저하게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사람이 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여전히 소중한 것들, 즉 종교와 문화의 정체성을 상실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자신이 사는 세계의 재발견 어떤 선택이 가능할까? 저자가 만난 티베트 망명정부의 지도자 삼동 린포체는 증오와 폭력으로 불의에 대응하는 건 쉽지만 적에게 스스로의 잘못을 납득시키기란 훨씬 더 어려운 일이며 비폭력은 나약한 자의 선택이 아니라 부단한 노력과 절제를 요하는 어려운 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정치적 자유를 얻었는데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문화를 잃어버린다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라고 덧붙였다. 이 마지막 여정지에서의 교훈은 저자의 잠정적 결론으로도 읽힌다. 사족 한마디. 자신이 사는 세계를 재발견하기 위한 긴 여행으로 저자 판카즈 미시라를 이끈 것은 도서관에서 읽은 플로베르의 소설 <감정교육>과 그에 대한 에드먼드 윌슨의 평론이었다. 윌슨은 <감정교육>에 대해 “인생에서 뭔가를 볼 시간이 있었던 사람만이 이 책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했다. 저자는 더 나이가 들어서야 플로베르의 소설이 보여주는, 좌절된 희망과 이상이 빚어내는 사소한 비극들의 세계가 우리 주변에도 넘쳐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내가 사는 세계의 이야기야. 나는 그런 사람들을 잘 알아.” <거꾸로 가는 나라들>은 그 앎이 동기가 된 실천의 기록이다. 로쟈 인터넷 서평꾼·blog.aladdin.co.kr/mramo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