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판의 장정일’ 래퍼 디지의 거친 야유… ‘조∼옷 같은 신문’ 씹기도 감행
“제 꿈이 대통령이에요. 국회의원 출마도 할 거고요.”
래퍼 디지(19·본명 김원종)가 말했을 때 기자의 반응을 통신용어로 표현하자면 ‘허걱’이었고, 만화로 표현하자면 얼굴에 주먹만한 땀방울이 그려졌다. 헐렁한 청바지로 땅바닥을 청소하면서 온 힙합보이의 입에서 기대한 예상답안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말이었다.
“국민 상대로 사기치고, 자기들끼리 멱살잡이나 하고, 개판이잖아요. 이왕 개판치는 거, 제가 한번 제대로 쳐보려고요”라는 말에 철없는 소리다 생각했더니 “대통령이 되면 우선 국방비 3%를 교육비로 돌려서 학교 좀 제대로 만들고요, 국방비 1%만 줄여도 학교를 100개도 넘게 더 지을 수 있다잖아요” 하는 데에선 헷갈리기도 한다.
불량스런 랩과 고급재즈 앙상블의 조화
디지는 최근 발표한 데뷔앨범 의 수록곡 에서 기성 정치인들을 거칠게 야유한다. “대통령 아들 이름 가수이름/ ∼한아름 한다발 아니 큰 사과상자/ ∼돈 챙겨 먹고 누굴 불러(아빠!)/ ∼쪽팔려서 환장하는 현철아빠”, “청소년보호법 졸라 만들지/ 결국 단란주점 가서 영계 꼬시지/ ∼그런 놈들이 우리나라 이끌지”. 라는 짧은 곡에서는 요즘 유행하는 현직 대통령 성대모사로 외설적인 농담을 하기도 한다.
디지의 노래말은 웬만한 욕설과 비어에 익숙해진 힙합팬들도 다소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만큼 원색적이고 과격하다. 그가 활동해온 홍익대 앞 클럽에서 ‘힙합계의 마광수, 힙합계의 장정일’이라고 소개받을 정도다. 그의 음악만 들었던 사람들이 열아홉 나이보다 앳된 얼굴과 순한 눈빛의 디지를 직접 만나면 다들 놀란다고 한다. “사람들은 마광수나 장정일의 소설을 보면서 전체적인 내용은 안 보고 단어 하나에 저질이니 하면서 욕하잖아요. 힙합도 라임이나 이런 건 다 무시하면서 욕설 하나만 붙잡고 늘어지고 힙합음악은 저질입네 비난하고요. 그런 거 정말 못마땅해요. 저는 마광수니, 장정일이니 불리는 게 자랑스러워요.” 앨범에서 과격하지만 장난기 넘치는 랩을 구사하는 디지는 앨범의 포장지에 ‘이 음반은 언어장애 등 각종 정신질환의 원인이 되며, 특히 임산부와 청소년의 정신건강에 해롭습니다’라는 우스꽝스런 경고장을 붙여놓기도 했다.
그의 음악은 매우 특이하다. 노래말에서는 끝간 데 없는 불량기와 과장된 천박함이 느껴지는 반면 랩이 깔리는 음악은 베이스와 피아노, 색소폰 등 고급스런 재즈 앙상블로 연주된다. 흑인음악에 뿌리를 둔 음악이기는 하지만, 별 다섯개짜리 호텔의 지하 보일러실과 우아한 스카이라운지처럼 멀게 느껴지는 두 장르가 그의 앨범에서 그럴듯하게 어울린다. 모든 곡의 작사, 작곡, 편곡은 모두 디지가 직접 했다. 녹음할 때 기타, 드럼 등을 직접 연주하기도 했으니 디지란 정확하게 말하면 김원종의 예명이 아니라 그가 만든 원맨밴드의 이름이다. “중학교 때부터 집에서 굴러다니는 전자건반으로 음악을 만들었어요. 힙합과 재즈를 그때부터 좋아했고요. 듀크 엘링턴이 제가 제일 좋아하는 뮤지션이에요.” 대통령부터 듀크 엘링턴까지 예상 밖의 대답만 줄줄이 나온다.
음악을 하기 위해서 예고에 들어갔던 디지는 고1 때 학교를 때려치웠다. “예술을 가르친다는 선생님들이 그 학교 출신 연예인들을 이야기하면서 “너네도 텔레비전에 나와야 성공하는 거야”라고 늘 말하는 게 불만이었어요” 중퇴 뒤 캐나다와 말레이시아의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학교친구들과 팀을 만들어 계속 음악활동을 했다. 97년에 벌써 ‘Riota’라는 다국적(?) 프로젝트팀을 만들었으니 나이에 비해 음악경력이 만만하지 않다. 한국에 돌아온 99년부터는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빅 패밀리인 클럽 마스터 플랜에서 MP패밀리로 활동했다. 드렁큰 타이거 등 동료음악인들을 위해 곡을 만들기도 해온 디지는 어쩌다 자신의 직업을 적어야 할 때 망설이지 않고 ‘작곡가’라고 기입한다.
기탁금만 모이면 국회의원 출마?
디지는 이번 앨범에서 ‘뇌물받아 단란주점 가는 금배지 단 나으리’, ‘원조교제하면서 성교육하는 변태아저씨들’뿐 아니라 ‘조∼옷 같은 신문’ 씹기도 감행했다. (Jotsun NewsPaper)에서는 언론에 대한 비판도 거침없다. “조∼옷선일보, 조광(미쳐 날뛰는)일보/ 탄로나는 정체, 언론조작의 실체/ ∼천황폐하 만세, 하∼, 좆까고들 있네.” 이 곡은 이미 지난 2월부터 안티조선 사이트인 ‘우리모두’(www.urimodu.com)의 게시판에 MP3로 올라가면서 인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디지는 우리모두의 회원으로 올 봄 종로에서 열렸던 안티조선콘서트에 참가하기도 했다. “신문 앞머리에 일장기를 싣고 천황폐하만세 부르짖던 신문이 독도문제 나오면 거품물고 난리치는 게 너무 웃기지 않나요? 선거 때는 특정후보 스폰서나 하고 있고.” “그래도 막강한 힘을 가진 신문에 밉보이면 뜨기 힘들 텐데….” “방송사, 신문사 쫓아다니면서 거래하고, 텔레비전에 나와서는 ‘여러분 사랑해요’ 어쩌고 하는 쇼를 할 것도 아닌데요, 뭐.” 그는 앨범 홍보투어의 첫 야외 공연장소를 조선일보사로 잡아놨다. 조선일보 반대 1인시위가 끝나는 오는 5월17일, 조선일보사 맞은편 프레스센터 앞에 1t 트럭을 세워놓고 그 위에서 공연할 생각이다.
디지는 때로 안티조선에도 안티를 건다. “많은 사람들이 조선일보를 비판한다고 하지만 정작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내밀고 욕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특히 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마치 자기가 아는 게 많기 때문에 언론개혁을 지지하는 것처럼 이야기해도 정작 나서서 싸움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잖아요.” 요즘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과 언론에도 불만이 많다. “한-일축구전 보는 것 같아요. 평소에 종군위안부 문제 같은 데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가 다들 무슨 난리난 것처럼 흥분하잖아요. 만날 일제만 찾다가 한-일전 하면 “쪽바리새끼들 다 밟아놔야 돼” 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디지는 앞으로 역사 교과서 왜곡 시위현장이든 대우자동차 파업현장이든 자신을 불러주고, 방송사처럼 이거 하지 마라, 저거 하지 마라 요구하는 데만 아니면 어디든지 쫓아다니면서 노래할 생각이다. 그리고 선관위 기탁금 2천만원만 모이면 당장 국회의원에 출마할 생각이란다. “추천인 명부는 공연장에서 받으면 되고요. 다른 후보들 홍보노래도 제가 다 만들어줄 거예요. 포스터 사진도 근엄하게 말고 이렇게 찍고요” 두손으로 쌍권총을 만들며 얼굴을 찡긋한다. “유세연설은 당연히 프리스타일 랩으로 할 거고요. 당선된 다음에 국회에서 국회의원들 멱살잡이하면 단상 위로 올라가서 이렇게 꼭 말해야지. ‘얘들아, 코미디 좀 그만 해라. 하나도 안 웃겨’.” 그의 천진함과 황당한 상상력에 웃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모르겠다. 그의 말이 어이없다는 생각이 드는 건 이제 기자도 ‘꼰대’가 되어간다는 증거일지도. 들쑥날쑥 가끔 앞뒤가 맞지 않고, 순진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솔직한 래퍼가 금배지를 달고 “물을 제대로 흐려놓는 미꾸라지가 되는” 날이 오지말란 법도 없으니까.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음악에서 전 대통령들을 야멸차게 ‘씹어대는’디지의 꿈은 바로 대통령.(박승화 기자)


사진/ 신인 힙합뮤지션 디지는 보수 언론과 정치인에 대해서 거침없는 욕설을 퍼붓는다.(박승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