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성 폐기물 처리해 재생자원으로 바꿔… 질병 치료에 활용하기 위한 연구도 활발
인분뇨(人奮尿)가 처리되는 과정을 좇아가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래도 고역스런 냄새에 대한 생각만 떠올리지 않는다면 견딜 만할 것이다. 만일 서울시 종로구나 은평구 등에 사는 사람들의 분뇨라면, 집안 어딘가의 정화조에 머물러 있다가 운반차에 실려 난지하수처리사업소로 옮겨간다. 그곳에서 분뇨는 아주 특별한 재생을 위한 몇 단계의 공정을 거친다. 먼저 투입조에 들어가 분뇨와 함께 실려온 침사물을 걸러내 순수한 분뇨만 남게 된다. 다시 탈수기에서 수분이 빠진 분뇨찌꺼기는 덩어리 형태로 만들어진다. 바로 ‘오니(汚泥)케이크’라 불리기도 하는 분뇨덩어리로 변하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니케이크는 거의 모두 쓰레기 매립지로 보내졌다. 하지만 요즘 난지도의 오니케이크는 지렁이의 왕성한 식욕을 채워주는 구실을 한다. 50m 길이의 35개 사육장에 있는 35t이나 되는 지렁이의 먹을거리로 쓰이는 것이다. 지렁이 소화관에서 오니케이크는 다량의 탄산칼슘을 흡수해 특별한 영양분을 간직한 ‘분변토’로 거듭난다. 분변토는 분뇨 특유의 냄새도 확실하게 정화해 손으로 만지면 마치 흙처럼 느껴진다. 분변토는 간척지나 개간지 등지에서 토지를 개량하는 데 쓰이며 채소와 원예작물 비료로서의 가치도 지니고 있다. 인분뇨가 지렁이의 뱃속을 채운 뒤 산성화된 식물과 토양을 중화하는 데 쓰이는 ‘신비의 배설물’로 재탄생하는 셈이다.
오니 섭취해 신비의 배설물도 만들어
우리나라에서 지렁이는 징그럽다는 말의 대명사로 통한다. 두 단어는 발음도 서로 비슷하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징그럽다는 형용사의 어원이 지렁이라는 흥미로운 주장을 펴기도 한다. 지렁이는 한자로 지룡(地龍) 혹은 토룡(土龍)으로 불린다. 영어 명칭인 Earthworm이라는 말은 땅 속을 기어다니는 벌레라는 뜻이며, 라틴어의 Lumbricus는 ‘대지의 장(腸)’이라는 다소 철학적인 의미까지 담고 있다. 인간이 나타나기 훨씬 이전부터 지렁이는 흙에서 경운작업을 했다. 생명체들이 땅 속에서 원활한 호흡을 하도록 지표면 아래의 땅을 뒤엎었던 것이다. 땅 위에서 쟁기질을 하는 것을 떠올릴 수 있다. 지금도 지렁이는 땅 속 어딘가에서 쉼없이 꿈틀대며 흙을 비옥하게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런 지렁이들이 지하에 있는 천연의 요새를 벗어나고 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지렁이는 붕어낚시의 미끼로 쓰였다. 우리나라에서 낚시용 미끼로 공급되는 지렁이는 무려 168만t으로 추산된다. 4cm 지렁이 한 마리의 무게를 0.5g으로 계산하면 4억여 마리나 된다. 가격으로는 50억여원에 이른다. 지렁이가 유기성 물질을 섭취해 안정된 물질로 전환하도록 하는 시도는 1970년 캐나다의 홀랜드 랜딩에서 이루어졌다. 하수처리장이나 식품공장 등지에서 환경에 부담을 주는 슬러지와 분뇨를 처리하는 데 지렁이를 사용한 것이다. 그뒤 세계 각국에서 지렁이를 이용해 폐기물을 안정화하고 분변토를 원예작물의 비료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0부터 지렁이를 이용해 유기성 폐기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소규모로 이루어져 체계적인 연구가 뒷받침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국립환경연구원에서 지렁이에 관한 생화학적 연구를 벌이면서 산업적으로 관심을 끌었다. 요즘에는 연간 10만t 이상의 폐기물을 처리하고 있다. 지렁이에 의한 폐기물 처리는 매립이나 소각 등에 따른 비용이나 환경문제를 일거에 해결한다. 예컨대 10만t의 지렁이로 유기성 폐기물을 처리할 경우 30억원에 가까운 매립비용을 지출하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지렁이 판매로 인해 80억원가량의 수익과 지렁이 배설물로 만든 분변토를 토질개량제로 판다면 10억원의 추가 수익을 얻을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폐·하수 처리량은 2천만t가량이다. 이 가운데 지렁이 처리를 할 수 있는 유기성 폐기물은 700만t으로 추정된다. 충분한 지렁이 사육장만 확보한다면 해마다 7천억원 이상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셈이다.
지렁이를 이용한 유기성 폐기물 처리는 경제적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의 환경적 이점을 지니고 있다. 기계적 장치를 이용해 복잡한 공정을 거치지 않고 자연 순환적인 방법으로 폐기물을 처리하기 때문이다. 땅 속에 서식하고 있는 주변의 유기성 폐기물을 섭취해 배설하면 그만이다. 처리과정에서 2차 환경오염을 일으킬 염려가 전혀 없는 것이다. 이에 비해 매립 처리 방식은 부지를 확보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을 해소해도 매립가스와 침출수가 발생해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 특히 매립가스 가운데 60%를 차지하는 메탄가스는 지구 온난화를 일으키는 원인물질로 지목돼 있다. 폐기물을 소각한다면 발생된 소각 열을 에너지로 활용할 수는 있지만 소각로 설치에 따른 초기 투자 운전 등에 따른 비용이 만만치 않다. 다이옥신 등의 대기오염물질을 처리하는 데도 상당한 비용이 소모된다. 이에 비해 지렁이에 의한 처리는 폐기물을 재생 가능한 자원으로 만드는 환경친화적 방법이다.
질병 치료에 이용… 생물자원 연구 미흡
최근에는 지렁이가 지상의 신천지에서 생화학적 변신을 모색하고 있다. 지렁이는 눈 코 귀 폐가 없이도 5쌍의 심장으로 먹을 것이 없는 극한 상황에서 250여일을 생존한다. 체내의 수분이 70%나 없어져도 생명을 위협받지 않는다. 그런 지렁이의 생명력을 공급받으려는 것이다. 지렁이의 단백질은 쇠고기의 20%보다 훨씬 높은 60%이며, 지방은 1.5%이다. 게다가 각종 무기질이 다량 함유되어 있고 노화를 지연시키는 황산화작용과 강장작용에 영향을 끼치는 성분도 풍부하다. 그래서 이미 오래 전부터 지렁이는 혈액순환계 질환을 비롯해 고열, 천식, 두통, 강장, 강정, 이뇨, 치질 등을 위해 이용되기도 했다. 이른바 붉은 지렁이의 경우 체내에 있는 각종 효소류가 규명되기도 했다. 생명공학연구소에서는 혈전분해 기능이 뛰어난 단백질 효소를 유전공학 기법으로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기도 했다.
지구의 청소부 노릇을 하는 지렁이는 낚시꾼에게나 쓰이는 것으로 알기 십상이다. 인류한테 양질의 토양을 제공하는 데 이바지했음에도 징그러움의 대명사로 여겨졌다. 그런 지렁이들이 땅 속을 헤엄치는 데 머물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인간에게 온갖 혜택을 베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지렁이에 대한 관심은 지극히 미미하다. 세계적으로 극지와 사막 등지를 제외한 지역에서 4천여 종류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한국산 지렁이가 몇종이나 되는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하수처리장 등지에서 유기성 폐기물을 처리하는 지렁이마저 붉은 지렁이로 불릴 뿐 정식으로 학계에 보고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실정이다. 이름도 없이 토양에서 충실한 살림꾼 구실을 하고 있는 셈이다. 지렁이가 혐오식품이라는 굴레를 벗어나 더욱 유용한 생물자원으로 대접받기 위해서는 학술적 뒷받침이 절실하다. 아는 만큼 보이듯 아는 만큼 이용할 수 있다.
도움말 주신 분 전북대학교 생물다양성연구소 홍룡 박사
국립환경연구원 폐기물자원과 최훈근 환경연구관
난지하수처리사업소 오니처리과 이철범 위생처리팀장
글/ 김수병 기자 soob@hani.co.kr
사진/ 강재훈 기자 khan@hani.co.kr

사진/ 난지하수처리사업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지렁이 사육상에 오니케이크를 뿌리고 있다.

사진/ 지렁이 배설물인 분변토는 토질개량용으로 판매되고 있다.
도움말 주신 분 전북대학교 생물다양성연구소 홍룡 박사
국립환경연구원 폐기물자원과 최훈근 환경연구관
난지하수처리사업소 오니처리과 이철범 위생처리팀장
글/ 김수병 기자 soob@hani.co.kr
사진/ 강재훈 기자 khan@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