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 ‘프리티 우먼’ 납시오
서민 여성과 재벌 남성의 사랑 이야기, 류웨이창 감독의 신작 <라스트 프로포즈>
등록 : 2009-03-04 14:08 수정 : 2009-03-09 10:24
재벌 사장님은 하늘 위에 ‘계신다’. 그의 전용기가 지나가는 땅 위에는 서민 여성이 걸어간다. 밤에는 댄서이고 낮에는 카지노 딜러인 여성은 이어폰을 꽂고 씩씩하게 걷는다. 그렇게 류웨이창(유위강) 감독의 <라스트 프로포즈>는 이들의 러브 스토리를 첫 장면부터 간단하게 요약한다. 그리고 계급을 넘어선 전형적인 사랑 이야기가 마카오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억만장자의 청혼과 혼전계약서
서민 여성과 재벌 남성의 사랑이 진정성을 가지기 위한 첫 번째 조건. 우선 여성이 처음엔 남성의 신분을 몰라야 한다. ‘돈’을 노리고 접근한 것이 아니기 위해서다. 카지노에서 일하는 밀란(수치)과 카지노 사장인 샘(류더화)은 우연히 만난다. 딜러로 일하는 밀란의 모습에 끌린 샘은 그의 테이블에 앉아서 돈을 건다. 자꾸만 돈을 잃는 샘에게 밀란은 그만하라고 충고하고, 샘은 밀란의 이런 진솔한 모습에 더욱 끌린다. 우리의 사장님, 여기서 포기할 분이 아니다. 홍콩 출장까지 미루면서 밀란에게 다가간다. 탁월한 정보력을 활용해 밀란이 댄서로 일하는 클럽에 찾아간다. 댄서들의 분장실로 들어온 샘을 밀란은 “도박꾼에 변태 아저씨”로 부르지만 은근히 끌린다. 샘은 밀란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휴대전화 ‘문자질’을 배우고, 둘은 서서히 가까워진다. 여기까지, 재벌 남성이 서민 여성의 세계로 ‘내려오는’ 이야기는 순탄하게 풀린다.
문제는 샘이 백만장자도 아니고 억만장자라는 사실. 이제 서민인 밀란이 그 ‘엄청난’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 남았다. 자신이 일하는 카지노와 클럽은 물론이고 어린 시절 뛰어놀던 놀이터 땅까지 소유한 사람이 연인이란 사실을 말이다. 샘의 고백에 밀란은 충격을 받지만, 한번 숨을 고른 다음에 샘의 세계로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이미 영화에서 진실한 사랑을 뜻하는 샘의 ‘심장 소리’를 들어버렸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밀란은 <프리티 우먼>의 그녀처럼 평생 처음 드레스를 입어보고, 우아한 상류층 파티에 어울린다. 그러나 역시 몸에 맞지 않는 옷. 서민 여성이 재벌 남성의 세계로 들어가는 통과의례는 으레 그렇듯 삐걱거린다.
삐걱이는 관계에 결정타가 날아든다. 이들이 이혼할 경우를 대비한 혼전계약서. 샘은 회사의 대표인 자신이 이혼할 경우 발생할 ‘손실’을 우려한 주주들의 요구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밀란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 샘 어머니의 강권이다. 샘은 내키지 않아도 주변의 권유를 뿌리치기 힘들다. 그는 이미 세 번 이혼하면서 적잖은 재산을 ‘아내들’에게 나눠주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혼전계약서는 이들의 ‘비현실적’ 사랑을 믿지 못하는 세상의 시선이 응축된 문서다. 혼전계약서를 받은 밀란은 “몸을 파는 여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이렇게 이들의 사랑은 현실의 시험에 들고, 견고한 벽 앞에서 밀란은 눈물을 흘린다.
<라스트 프로포즈>엔 두 개의 러브라인이 더해진다. 재벌 남성과 서민 여성이 영화의 중심이 된다면, 곁가지 얘기는 성별을 뒤집어 잘나가는 커리어우먼과 순박하지만 잘나가지 ‘못하는’ 노동계급 남성의 러브 스토리다. 샘의 절친한 친구이자 샘 회사의 이사인 조(데니스 호)는 호텔에서 수리공으로 일하는 린주(장한위)의 우직한 매력에 서서히 끌린다. 여기에 샘의 운전사인 팀(도미닉 램)과 싱글맘 새논(장징이)의 로맨스도 더해진다. 저마다 다른 이유로 위기를 넘어야 하는 세 쌍의 사랑은 텔레비전 리얼리티 프로그램 ‘라스트 프로포즈’를 통해 마지막 시험에 든다. 과연 밀란은 샘의 공개 프로포즈를 받아들일 것인가. 영화는 그렇게 막바지로 치닫는다.
실제 부부의 러브스토리라니
어쩌면 뻔한 얘기를 달콤한 로맨스로 만드는 힘은 배우들의 매력에서 나온다. 올해 마흔여덟의 류더화(유덕화)는 여전히 매력이 넘친다. 소탈한 그의 매력은 명품 정장을 입었을 때보다 오히려 티셔츠 한 장을 걸친 캐주얼 차림에서 더욱 빛난다. 그의 젊음은 15살 연하의 수치(서기)와 로맨틱한 장면을 연기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여전하다. 수치도 씩씩한 이웃집 아가씨 같은 평범한 매력으로 밀란 역에 녹아든다. <무간도> 출연 등을 통해 류웨이창 감독과 오랜 친분을 맺어온 류더화가 영화에 먼저 캐스팅된 다음에 상대역으로 수치를 지명했다고 알려졌다. <집결호>에 출연했던 장한위 등 조연들의 자연스런 연기도 닭살 돋는 이야기의 기름기를 뺀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아시아의 유럽이라 불리는 마카오다. <라스트 프로포즈>의 주요 배경은 100만달러가 넘는 샹들리에가 로비 천장에 달려 있고, 정상급 유리공예가 데일 치훌리의 화려한 작품으로 가득한 MGM 그랜드 호텔이다. 얼마 전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서 보여줬던 ‘마카오 관광’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도시의 풍경을 잡아내는 카메라는 달콤하다. 제작비 100억원을 투입한 <라스트 프로포즈>는 달콤한 이야기와 화려한 볼거리로 중국 개봉 당시 2주 연속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리스트 프로포즈>는 치밀한 스토리와 결정적 반전으로 홍콩 영화의 부활을 알렸던 <무간도> 시리즈를 만든 류웨이창 감독의 영화라고 생각하기엔 너무나 다른 영화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사실은 영화의 흥행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샘의 모델인 스탠리 호는 마카오 카지노 30여 개 중 19개를 소유한 재벌이다. 재산이 65억달러에 이르고 그가 내는 세금이 마카오 재정의 3분의 1을 차지한다고 한다. <라스트 프로포즈>는 그와 서민 출신 연인 안젤라 렁의 실화에 바탕을 두었다. 1986년 연인이 된 이들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부부로 남아 있다. 홍콩판, 아니 마카오 버전 <프리티 우먼>이 더욱 달콤한 이유다. 3월5일에 개봉한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