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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인권영화 명작 다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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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5-1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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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결산의 의미가 담긴 5.5회 인권영화제… 팔레스타인 분쟁관련 작품 11편 첫선

사진/ 5.5회 인권영화제 개막작 <세개의 보석이야기>.
5.5. 올해로 여섯 번째를 맞는 인권영화제는 5회와 6회를 걸치는 의미의 숫자를 앞에 걸고 있다. 이번 영화제는 5회까지의 행사를 정리하고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일종의 과도기적 성격을 띠고 있다. 일단 바뀐 점 하나. 늦가을이던 개최시기를 따뜻한 봄으로 옮겼다. 좀더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즐기기 편하고, 영화제 이후 지역이나 대학 행사들과 연계시키기 위해서다. 둘. 장소가 대학에서 극장으로 옮겨졌다. 이 역시 일반 관객에게 문턱을 낮추기 위해 주최쪽이 고심한 결과다. 이렇게 해서 5.5회 인권영화제는 5월18일부터 23일까지 서울 광화문 아트큐브에서 개최하게 됐다.

대학가 아닌 극장, 사전심의는 여전히 NO!

바뀌지 않은 점 하나. 인권영화제는 여전히 국내에서 유일하게 사전심의를 받지 않는 영화제다. 비록 77석밖에 안 되지만 아트큐브에서 진행하게 된 이유는 이 극장이 유일하게 사전심의를 받지 않는 일반상영관이기 때문이다. 둘. 극장상영을 하지만 여전히 관람료는 없다. 기업이나 단체의 후원없이 개인후원으로만 운영한다는 원칙도 바뀌지 않았다. 인권운동사랑방은 5.5회를 변화의 모색을 위한 시간으로 잡았지만 이 두 가지는 물러날 수 없는 원칙으로 다시 못박았다.


프로그램에서는 중간 결산의 의미가 강하다. 전체 상영편수 42편 가운데 메인 메뉴인 ‘다시 보는 명작선’에서는 그동안 관객의 설문조사를 통해 선정된 인기작과 인권운동사랑방이 추천하는 명작, 그리고 인권영화상을 수상한 작품 19편을 재상영한다. 545분에 걸친 나치수용소 생존자들의 충격적 인터뷰로 화제가 됐던 <쇼아>, 1973년 칠레의 아옌데 민중연합정권이 전복되기 전 9개월 동안 진행된 좌파와 우파 사이의 치열한 공방전으로 다루면서 인권다큐멘터리의 교과서가 된 <칠레전투>, 체 게바라의 일기를 따라서 그의 빨치산 투쟁의 궤적으로 따라가는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볼리비아 일기> 등이 리스트에 들어 있다. 66년부터 82년까지 활동했던 좌익 정당 흑표범당의 흥망성쇠를 다룬 <모든 권력을 민중에게>와 매카시즘이 기승을 부리던 50년대 블랙리스트에 오른 할리우드 영화인들이 뉴멕시코 탄광파업을 소재로 만든 ‘민중영화’의 고전 <대지의 소금>도 놓치기 아까운 작품들이다. 한국영화로는 98년 현대중기산업 노동자들의 450여일에 걸친 고용승계 투쟁을 기록한 <인간의 시간>, 다음해 여름 울산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정리해고에 맞선 싸움을 따라간 <열대야> 등 인권영화상 수상작 2개를 재상영한다.

전년도 참가를 통해서 메인 메뉴를 이미 접한 관객이라도 미리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이슈포커스-팔레스타인, 이스라엘간의 분쟁에 대한 성찰’은 한국에서 처음 개봉되는 팔레스타인 분쟁 관련 작품 11편이 기다리고 있다. 우선 개막작으로 소개되는 <세개의 보석이야기>는 팔레스타인에서 만들어진 극영화로는 처음 국내에 소개되는 작품이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프랑스 감독인 미셸 클레이피의 서술방식은 직접적이지 않다. 대낮에 군것질거리를 사먹다가도 콩볶는 총소리에 처마 밑으로 기어가야 하는 일상을 사는 한 소년이 팔레스타인인보다 한 계급 더 하층민인 집시소녀와 만나 사랑에 눈을 뜨고, 사방을 막아놓은 경계(border)를 벗어나기 위해서 유럽으로 수출되는 오렌지 상자 속에 숨기도 한다. 감독은 분쟁의 아수라장에서 꽃피고 시드는 아이들의 희망과 절망을 우화적으로 그린다. 95년 온건주의자였던 이츠하크 라빈의 암살 직후부터 암살을 주도한 극우주의자들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는 <119발의 총성+3>도 인상적인 작품. 이스라엘 감독인 에우드 레바논와 아미트 고렌의 카메라가 포착하는 긴장감과 예리함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팔레스타인의 역사에 대해 개괄하고 싶은 관객이라면 <팔레스타인, 땅의 역사2>를 선택할 만하다. 2차대전 직후부터 91년까지 팔레스타인인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땅에서 쫓겨나고 핍박받으며, 또 국제사회에서 자신들의 힘을 구축하게 됐는지 흥미있게 구성한 프랑스 작품이다.

한번도 안 본 관객에겐 도리어 좋은 기회

3번째 메뉴인 ‘애니휴먼’에서는 전년도에 공개됐던 국내외 단편 애니메이션 8편을 하나로 묶어 상영하고, 장기수 문제를 다룬 <기억>, 장애인 자매의 생활을 따라간 다큐 <팬지와 담쟁이>, 한국전쟁중 경남지역에서 벌어진 양민학살사건을 파헤친 다큐 <옛날이야기> 등 ‘한국영화’ 코너에도 3편이 마련돼 있다. 상영작의 반 이상이 재상영작이라 다소 위축된 모양새이기는 하지만 이번 5.5회 때는 “변화의 시점이 왔고, 영화제의 모든 부분을 바닥에서부터 다시 생각해야할 것 같다”는 주최쪽의 고심을 이해해야 할 듯하다. 대학문을 들어서기 쭈뼛했던 일반관객에게는 인권영화의 정수들을 만날 수 있는, 도리어 좋은 기회다(문의: 02-741-2407, www.sarangbang.or.kr).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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