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의 시대에 활황 기운이다. 2008년 연말 만화들이 쏟아져나왔다. 어김없는 진실. 끝과 끝은 닿는 법. 2008년 말에 나온 이 대안만화 혹은 독립만화, 생활만화들이 2009년을 열어젖혔다.
사이트 연재작 그리고 뉴스레터 배달작
‘인디만화가’ 김수박씨는 처음으로 메이저 출판사에서 ‘기획만화’를 펴냈다. 바다출판사에서 나온 <오늘까지만 사랑해>는 가요 노랫말 40편에서 힌트를 얻어 그린 사랑과 이별 이야기다. 김수박씨는 “가사의 줄거리를 따라가지 않고 정서와 영감을 살려서 이야기를 구성했다”고 한다. 만화는 2005~2006년 음악 사이트 튜브뮤직에 연재한 것들이 주류를 이룬다. 김씨는 2008년 초 출판을 의뢰받고 그간에 그렸던 이야기들의 틈새를 메웠다. “처음엔 독립적인 에피소드였는데 나중에 보니 이야기가 연결”됐기 때문이다. “짜서 했다기보다는 스스로 엮였다.”
“순필씨는 꿈이 뭐야?” “난 웃으면서 죽고 싶어.” ‘소박한’ 꿈 때문에 헤어지게 되는 남녀는 버스정류장에서 엇갈리면서 다른 사랑과 연결되고, 한 남자를 몰래 짝사랑하는 여자의 사연은 먼 옛날 지하철로 돌아가 연결되는 식으로 에피소드가 진행되면서 속사정들이 드러나게 된다.
처음부터 이야기를 짜지 않은 단점이 드러나기는 한다. 별다르게 구분되지 않는 성격의 인물이 비슷비슷한 스토리를 이어간다. 엮이던 스토리는 마지막에서 일종의 반전을 이룬다. 마지막 편에서 저자가 직접 등장해서 이 모든 에피소드들이 자신의 경험과 연결됐음을 보여준다. “사람들이 사랑하는 데 다면적인 부분이 있다. 나도 그렇다. 우울한 면도 있고 유쾌한 면도 있다. 배치와 분리를 통해 그 둘을 다 그려내려고 했다.”
어쨌든 불황이 김수박씨를 비켜가지만은 않았다. 2008년 초 계약한 <오늘까지만 사랑해>는 2008년 말 책으로 ‘물성화’됐으나, 2008년을 건너오는 중에 시작된 프로젝트 몇 개는 끝까지 가지 못했다. 메이저 출판사의 어린이 교양만화, 생태만화 등 두 편의 만화 작업이 중단됐다. 인터넷과 인연이 깊은 또 다른 만화도 출간되었다. 창비뉴스레터와 함께 배달되던 오영진씨의 <수상한 연립주택>(창비 펴냄). 서울 은평구 황금동 연립주택에는 반지하에서 옥탑방까지 여섯 가족 13명(+개 한 마리+황금비둘기 여러 마리)이 산다. 연립주택은 대한민국의 축소판이다. 계급의 최하층에서 최상층까지의 사람들은 사랑과 불륜, 모략과 음모로 엇갈린다. 호황도 불황이던 작가들의 호황 성형외과를 운영하는 김팔봉은 주식에 손을 대고 내려앉은 뒤 연립주택을 사서 이사왔다. 창문이 좁아 들어가지 않는 화려한 소파는 집 앞에 놓여 사람들의 쉼터가 된다. 최상위층 옥탑의 고시생 한국판은 법으로 주택 주민들의 ‘선지자’ 행세를 한다. 선지자는 금세 김팔봉의 감언이설에 넘어간다. 살던 집이 재개발 지역에 포함되면서 김팔봉은 ‘10년 만의 재기’를 노리지만 희귀종 ‘황금비둘기’ 때문에 꿈이 좌절될 위기에 놓인다. 새만화책에서는 의미 있는 첫 결실을 냈다. 김은성씨의 <내 어머니 이야기 1부>는 무크지로 발간되는 <새만화책>에 연재된 작품으로는 처음 책으로 엮였다. 2006년 1월 첫 호가 나온 뒤 3년을 온전히 채워 이뤄낸 성과물이다. <내 어머니 이야기>는 어머니의 구술로 얻은 일생사를 풀어낸 것으로 전체 4부(4권)로 예정돼 있다. 함경도 북청에서 나고 자란 어머니 이복동녀씨는 예리한 기억력으로 소상하게 지나간 ‘역사’를 딸에게 들려준다. 김은성씨는 작가의 말에서 “엄마는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한 사람을 일가친척 중에 두지 않았고, 일본인이 세운 학교를 즐겁게 다녔으며, 결혼한 지 닷새 만에 해방이 되어 남편이 군대에 끌려나가지 않게 됐다는 이유로, 해방된 게 너무도 싫었다는 얘기도 ‘역사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만화를 그리는 이유를 밝힌다. 만화책은 스페인에서는 신산티도(Sinsandtido) 출판사에서 이미 출판됐으며 프랑스에서도 출판이 거의 확정적이라고 한다. 새만화책의 김대중 대표는 “연말에 판매량이 줄어들긴 했지만, 워낙 작은 출판사라 불황을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2008년에는 가장 많은 종수의 책을 냈고 2009년에는 더 많이 내려고 한다.” 오랫동안 끊겼던 무크지 <새만화책>도 판형을 키우고 페이지 수를 늘려서 2008년 11월 나오기도 했다. 김 대표는 그간 신인 작가를 발굴하며 실험한 것이 이제 안정 단계에 들어섰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판매부수도 안정되고, 해마다 늘어간다.” 불황의 묘수는 〈sal〉에서도 찾을 수 있다. 코스피(KOSPI)와 부동산 가격이 치솟고 월급으로 흥청망청 펀드를 사던 때도 불황이었다. 이 인디작가들에게는. 이 작가들이 자신의 만화가 실릴 지면을 찾아다니다 2006년 창간한 뒤 매년 내고 있는 〈sal〉도 2008년 11월 한 ‘살’ 먹었다. 나이 먹고 제 앞가림도 잘한다. 3호를 내면서 인터넷 서점에까지 진출했다. 지면 하단에 대사를 번역해 넣어 ‘세계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게’ 해놨다. 여전히 만화가 한 명의 방이 재고창고지만 3호는 1천 권을 찍었다. 2호보다 배로 늘린 양이다. 송아람씨는 ‘보연’s Best 1집’에서 어른처럼 꾸미고 술집에 드나드는 두 여고생의 일화를 일상에 파고드는 섬세함으로 그려냈다. 앙꼬는 ‘눈 오는 밤’에서 시집가서 애 키우는 친구가 다짜고짜 “넌 오늘 나랑 죽어도 술 마셔야 돼”라며 찾아온 밤을 그렸다. 이경석씨는 오랜만에 호기롭게 선을 날려가며 ‘로커’가 되었다(‘심플라이프 그 두 번째, 나는 피노키오다’). 권용득씨는 호시탐탐 여자 주변을 맴도는 두 남자의 ‘은밀한 욕망’을 그렸다(‘막차’). 김성희씨의 만화에는 결혼을 고민하는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고민하는 ‘나’가 나온다(‘이대로 팔려갈 수 없다’). 첫 등장한 최영씨는 안정된 필력으로 정신병원에 갇힌 사람들의 일상을 섬세하게 포착한다(‘문’). 역시 첫 등장인 공사원씨도 스카프를 날리는 어린왕자의 타락을 컷마다 웃음을 날리겠다는 각오로 그렸다(‘겸손한 비스킷’). “인디만화 부문 수위를 다툰다” 재고를 위해 집 한 칸을 내준 김성희 작가는 “인터넷 서점 인디만화 부문의 수위를 다툰다”며 웃는다. 참여작가들이 개인 홈페이지로 신청받고 발송하는 방식이라 정확한 집계는 잘 안 되지만 현재 절반 정도 나갔다. 연초는 일단 안심이다. 만화가들이 무사히 불황의 사막을 지나가기를….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한꺼번에 찾아온 행복. 연말에 한꺼번에 일상만화들이 쏟아져나왔다. 2009년 초반을 열어젖힌 기세로 올해를 이어가기를.
어쨌든 불황이 김수박씨를 비켜가지만은 않았다. 2008년 초 계약한 <오늘까지만 사랑해>는 2008년 말 책으로 ‘물성화’됐으나, 2008년을 건너오는 중에 시작된 프로젝트 몇 개는 끝까지 가지 못했다. 메이저 출판사의 어린이 교양만화, 생태만화 등 두 편의 만화 작업이 중단됐다. 인터넷과 인연이 깊은 또 다른 만화도 출간되었다. 창비뉴스레터와 함께 배달되던 오영진씨의 <수상한 연립주택>(창비 펴냄). 서울 은평구 황금동 연립주택에는 반지하에서 옥탑방까지 여섯 가족 13명(+개 한 마리+황금비둘기 여러 마리)이 산다. 연립주택은 대한민국의 축소판이다. 계급의 최하층에서 최상층까지의 사람들은 사랑과 불륜, 모략과 음모로 엇갈린다. 호황도 불황이던 작가들의 호황 성형외과를 운영하는 김팔봉은 주식에 손을 대고 내려앉은 뒤 연립주택을 사서 이사왔다. 창문이 좁아 들어가지 않는 화려한 소파는 집 앞에 놓여 사람들의 쉼터가 된다. 최상위층 옥탑의 고시생 한국판은 법으로 주택 주민들의 ‘선지자’ 행세를 한다. 선지자는 금세 김팔봉의 감언이설에 넘어간다. 살던 집이 재개발 지역에 포함되면서 김팔봉은 ‘10년 만의 재기’를 노리지만 희귀종 ‘황금비둘기’ 때문에 꿈이 좌절될 위기에 놓인다. 새만화책에서는 의미 있는 첫 결실을 냈다. 김은성씨의 <내 어머니 이야기 1부>는 무크지로 발간되는 <새만화책>에 연재된 작품으로는 처음 책으로 엮였다. 2006년 1월 첫 호가 나온 뒤 3년을 온전히 채워 이뤄낸 성과물이다. <내 어머니 이야기>는 어머니의 구술로 얻은 일생사를 풀어낸 것으로 전체 4부(4권)로 예정돼 있다. 함경도 북청에서 나고 자란 어머니 이복동녀씨는 예리한 기억력으로 소상하게 지나간 ‘역사’를 딸에게 들려준다. 김은성씨는 작가의 말에서 “엄마는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한 사람을 일가친척 중에 두지 않았고, 일본인이 세운 학교를 즐겁게 다녔으며, 결혼한 지 닷새 만에 해방이 되어 남편이 군대에 끌려나가지 않게 됐다는 이유로, 해방된 게 너무도 싫었다는 얘기도 ‘역사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만화를 그리는 이유를 밝힌다. 만화책은 스페인에서는 신산티도(Sinsandtido) 출판사에서 이미 출판됐으며 프랑스에서도 출판이 거의 확정적이라고 한다. 새만화책의 김대중 대표는 “연말에 판매량이 줄어들긴 했지만, 워낙 작은 출판사라 불황을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2008년에는 가장 많은 종수의 책을 냈고 2009년에는 더 많이 내려고 한다.” 오랫동안 끊겼던 무크지 <새만화책>도 판형을 키우고 페이지 수를 늘려서 2008년 11월 나오기도 했다. 김 대표는 그간 신인 작가를 발굴하며 실험한 것이 이제 안정 단계에 들어섰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판매부수도 안정되고, 해마다 늘어간다.” 불황의 묘수는 〈sal〉에서도 찾을 수 있다. 코스피(KOSPI)와 부동산 가격이 치솟고 월급으로 흥청망청 펀드를 사던 때도 불황이었다. 이 인디작가들에게는. 이 작가들이 자신의 만화가 실릴 지면을 찾아다니다 2006년 창간한 뒤 매년 내고 있는 〈sal〉도 2008년 11월 한 ‘살’ 먹었다. 나이 먹고 제 앞가림도 잘한다. 3호를 내면서 인터넷 서점에까지 진출했다. 지면 하단에 대사를 번역해 넣어 ‘세계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게’ 해놨다. 여전히 만화가 한 명의 방이 재고창고지만 3호는 1천 권을 찍었다. 2호보다 배로 늘린 양이다. 송아람씨는 ‘보연’s Best 1집’에서 어른처럼 꾸미고 술집에 드나드는 두 여고생의 일화를 일상에 파고드는 섬세함으로 그려냈다. 앙꼬는 ‘눈 오는 밤’에서 시집가서 애 키우는 친구가 다짜고짜 “넌 오늘 나랑 죽어도 술 마셔야 돼”라며 찾아온 밤을 그렸다. 이경석씨는 오랜만에 호기롭게 선을 날려가며 ‘로커’가 되었다(‘심플라이프 그 두 번째, 나는 피노키오다’). 권용득씨는 호시탐탐 여자 주변을 맴도는 두 남자의 ‘은밀한 욕망’을 그렸다(‘막차’). 김성희씨의 만화에는 결혼을 고민하는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고민하는 ‘나’가 나온다(‘이대로 팔려갈 수 없다’). 첫 등장한 최영씨는 안정된 필력으로 정신병원에 갇힌 사람들의 일상을 섬세하게 포착한다(‘문’). 역시 첫 등장인 공사원씨도 스카프를 날리는 어린왕자의 타락을 컷마다 웃음을 날리겠다는 각오로 그렸다(‘겸손한 비스킷’). “인디만화 부문 수위를 다툰다” 재고를 위해 집 한 칸을 내준 김성희 작가는 “인터넷 서점 인디만화 부문의 수위를 다툰다”며 웃는다. 참여작가들이 개인 홈페이지로 신청받고 발송하는 방식이라 정확한 집계는 잘 안 되지만 현재 절반 정도 나갔다. 연초는 일단 안심이다. 만화가들이 무사히 불황의 사막을 지나가기를….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