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최근 발간한 <2008 문예연감>의 출판 분야 통계지표를 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연감’은 2007년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문학 부문 신간 발행 종수와 부수가 전년인 2006년에 비해 크게 준 것이다. 문학 부문 신간 발행 종수는 전년의 9667종에서 19.8%가 줄어든 7752종, 부수는 전년의 2113만3130부에서 18%가 준 1732만3993부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아동도서는 전년의 6700종에서 9.1%가 는 7307종, 그리고 2110만3181부에서 무려 168.9%가 증가한 5674만7059부로 문학 부문과 큰 대비를 보였다. 청소년을 포함한 아동 부문의 약진 속에 소설을 중심으로 한 문학 부문이 부진을 면치 못한 결과를 드러낸 것이다. 이런 흐름은 올해도 크게 바뀌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다행인 것은 요 몇 년 새 독서 시장을 강타했던 일본 소설 붐이 주춤해진데다 자기계발서와 경제·경영 및 실용서의 ‘약발’도 예전 같지 않은 덕분에, 특히 국제 경제위기가 노골화한 4/4분기 이후로는 국내 소설을 포함한 문학 부문 책들이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성급하게 ‘문학의 부활’을 선언하기도 하지만, 섣부른 판단은 아직 이르다고 본다. 모처럼 문학으로 돌아온 독자를 계속 붙잡아두기 위한 문단과 출판계의 혜안이 필요하다.
‘서사의 퇴행’ ‘과거 회귀’ 비판도
올해 문학 분야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그동안 변방으로만 여겨져온 청소년소설이 대거 약진한 사실을 들 수 있다. 김려령의 <완득이>를 필두로 한 청소년문학상 수상작들이 속속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청소년소설에 대한 일종의 ‘발견’이 이뤄졌다. 청소년소설과 성장소설이 경계를 넘나들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는 가운데,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과 김형경의 <꽃피는 고래>, 김사과의 <미나>, 이명랑의 <날라리 on the pink> 같은 기성 작가들의 성장소설이 뚜렷한 흐름을 형성했다. 성장소설의 유행은 그동안 (성인)소설과 동화 사이에서 자신들‘만’의 이야기에 목말라했던 청소년 독자들을 문학 쪽으로 적극 끌어들인다는 평가와 함께, 일종의 ‘서사의 퇴행’ 논란을 낳기도 했다.
한국 소설의 또 다른 흐름은 ‘역사’였다. 한승원의 <다산>과 김탁환의 <혜초>, 권지예의 <붉은 비단보>, 김별아의 <백범>, 김선우의 <나는 춤이다>, 김다은의 <훈민정음의 비밀>, 심윤경의 <서라벌 사람들>에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까지 역사는 역시 작가들의 마르지 않는 상상력의 샘임을 다시 입증했다. 그러나 성장소설의 경우와 흡사하게, 역사소설 또한 현실을 대상으로 한 싸움과 미래를 향한 진취적 전망을 안이한 과거 회귀와 맞바꾸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상반기에는 지난해에 출간된 공지영의 <즐거운 나의 집>이, 하반기에는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에 이어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소설 시장을 선도했다. 정도상의 소설집 <찔레꽃>과 이대환의 장편 <큰돈과 콘돔>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탈북자들의 남한 자본주의 적응기를 형상화해 주목받았으며, 백영옥의 <스타일>과 박주영의 <냉장고에서 연애를 꺼내다>는 한국형 ‘칙릿’(Chick Literature의 약자·젊은 여성의 삶과 사랑을 다룬 트렌디 소설)의 흐름을 이어갔다. 박상륭의 <잡설품>과 박범신의 <촐라체>, 그리고 올해 타계한 이청준의 <신화의 시대> 등 중진들의 진중한 장편이 한국 소설의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가운데 구효서의 <나가사키 파파>와 조하형의 <조립식 보리수나무>, 그리고 신인 윤고은의 <무중력증후군>처럼 새로운 상상력으로 무장한 장편들 역시 눈길을 끌었다.
소설집도 풍성해서 형제 작가 김원일·김원우의 <오마니별>과 <모서리에서의 인생독법>, 이승우의 <오래된 일기>, 성석제의 <지금 행복해>, 정지아의 <봄빛>, 조경란의 <풍선을 샀어>, 김경욱의 <위험한 독서>, 천운영의 <그녀의 눈물 사용법>, 김중혁의 <악기들의 도서관>, 황정은의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등이 한국 중·단편 소설의 맥을 이어갔다.
원로와 신예의 조화
시 분야에서는 이른바 ‘미래파’ 논쟁의 여진이 남아 있는 가운데, 평년작에 해당하는 소출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올해로 등단 50년을 맞은 고은은 신작 시집 <허공>으로써 ‘건재’를 확인했고, 문인수의 <배꼽>은 환갑을 넘긴 나이에 갈수록 싱싱해지는 상상력과 그윽한 연륜의 결합을 보여주었다. 안도현의 <간절하게 참 철없이>와 문태준의 <그늘의 발달>이 정통 서정의 한 경지를 입증했다면, 김혜순의 <당신의 첫>과 김근의 <구름극장에서 만나요>, 강정의 <키스>, 그리고 김경주의 <기담> 등의 시집은 서정의 틀을 벗어나려는 독자적인 발성법을 과시하는 모습이었다. 이들과 함께 오규원의 <두두>와 박찬의 <외로운 식량>, 두 유고시집 역시 기록해둘 만하다.
소설과 시에 비해 소홀히 취급되는 감이 없지 않지만, 산문과 평론에서도 알찬 성과가 이어졌다. 베스트셀러 작가 김훈의 <바다의 기별>과 김연수의 <여행할 권리>, 김인숙의 <제국의 뒷길을 걷다> 등이 산문 미학의 정수를 보여주었다면, 김윤식의 <백철 연구>와 신형철의 <몰락의 에티카>는 원로 국문학자의 ‘자전적’ 연구서와 신예 평론가의 야심찬 첫 평론집으로서 각각 주목받았다.
공지영은 딸에게 주는 편지 형식의 산문집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와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와 나눈 이야기를 정리한 인터뷰집 <괜찮다, 다 괜찮다>를 잇따라 베스트셀러에 올렸으며, 이외수 역시 산문집 <하악하악>으로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면서 식지 않는 인기를 다시 확인했다. 이 밖에 교사 시인 김용택의 교직 퇴임을 기념하는 헌정 문집 <어른아이 김용택>, 그리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 지음) 발간 30주년 기념 문집 <침묵과 사랑>과 같은 ‘오마주’ 성격의 책들도 눈길을 끌었다.
일본 소설 붐이 주춤한 가운데, 에쿠니 가오리만은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집 <장미 비파 레몬>으로 한국 독자의 사랑을 재확인했다. 역시 한국에서 통하는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도 11월에 번역 출간된 <신> 제1부로 또다시 바람을 일으켰으며, 포르투갈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조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는 영화화 덕분에 국내판 출간 6년 만에 새삼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리버 보이>로 국내에 많은 팬을 확보한 팀 보울러의 <스타시커>와 <스쿼시>, 그리고 미국 작가 바버라 오코너의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같은 외국 성장소설들 역시 국내의 성장소설 붐에 올라타 많은 독자들과 만났다.
20여 년의 대장정 끝내는 <만인보>
2009년에는 현재 인터넷에 연재 중인 공지영·정이현·박민규·백영옥·이기호 등의 장편이 책으로 나올 예정이며, 박범신과 김훈·공선옥·정지아·이승우·하성란 등의 장편 역시 선을 보이게 된다. 고은의 <만인보>는 20여 년간의 대장정 끝에 내년에 모두 30권으로 완간될 예정이며, 고은과 마찬가지로 올해 등단 50주년을 맞았던 황동규, 그리고 김용택·정일근·김기택·송찬호·나희덕 등의 신작 시집도 출간 대기 중이다. <한겨레>에 연재했던 공지영·김용택·안도현의 산문도 연초에 책으로 만나볼 수 있으며, 안도현은 판매 부수 100만에 육박하는 베스트셀러 <연어>의 속편 역시 준비하고 있다.
최재봉 기자 한겨레 문화부문 bong@hani.co.kr
본격문학 작가들의 인터넷 진출도 활발했다. 인터넷 포털 다음에 공지영 작가는 <도가니>를, 이기호 작가는 <사과는 잘해요>를 11월 말부터 연재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한국형 칙릿’으로 분류될 수 있는 작품이 많이 나오면서 뚜렷한 흐름을 이루었다.
그동안 변방으로만 여겨져온 청소년소설이 대거 약진했다. 그 대표적인 소설 <완득이>의 완득이. 창비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