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의 지평을 넓히는 엽기과학… 풍자 속에도 심오한 원리 숨어 있어
일반대중이 현대과학의 본질적인 내용을 두루 이해하긴 힘들다. 그럼에도 과학기술에 대한 현대인들의 의존은 갈수록 깊어가고 있다. 사실 우리는 현대 과학기술의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해도 별 두려움 없이 잘살고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커다란 덩치의 비행기가 수백명의 사람과 화물을 싣고 하늘로 날아다닌다는 것이 정말로 감탄스럽고 신기하기까지 하다. 과학이라면 제대로 읽기도 힘든 알파벳 수식으로 가득 찬 논문을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일상생활에서도 얼마든지 현대과학과 관련된 사항을 찾아볼 수 있다. 과학은 그 자체로 유용한 것이지만 또한 예술이나 인문학과 같이 그 아름다움과 신묘함을 즐길 수 있는 정신적 유희를 가지고 있는 지식체계이기도 하다.
텔레비전 프로인 <호기심 천국>은 사이언스 쇼라는 접근으로 시작했다. 때론 좀 못마땅한 점도 있지만 그 자체로 상당한 의미가 있으며 전체적인 의도와 내용은 칭찬받을 만하다. 최근에는 사이언스 쇼와 같은 프로그램이 여러 채널에서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참으로 바람직하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단순히 과학기술자만의 몫이 아니다. 연구에 대한 열정을 끊임없이 자극해줄 수 있는 사회문화적 뒷받침이 있어야 과학기술은 제대로 꽃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공익적 차원에서라도 사이언스 쇼와 같은 프로그램을 많이 장려해야 할 것이다.
재미와 호기심으로 대중에게 다가서
외국에는 과학을 ‘유쾌한 게임’으로 여기는 매체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과학적 내용을 패러디하거나 사소한 과학적 사실과 실험에서 심각한 과학적 내용을 유머로 쉽게 설명하는 것이다. 만일 현대과학을 그대로 소개한다면 어느 누가 흥미를 느끼겠는가.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 재미와 호기심을 자극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한 패러디전문 인터넷 신문에서 ‘엽기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더러 소개되고 있지만 양과 그 깊이는 다소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인터넷에는 엽기과학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이트도 있다. 대표적인 사이트는 ‘Annals of Improbable Research’(AIR: http://www.improb.com)라는 곳이다. 여기에서는 과학기술에 대한 풍자와 조롱, 신기한 실험, 아주 심각하게 다른 시시콜콜한 사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살펴볼 수 있다. 이 사이트에서는 해마다 노벨상에 대비되는 이그노벨(IgNobel)상을 발표기도 한다. ‘Ignoble’을 음차해 만든 상의 이름을 구태여 번역하자면 ‘엽기노벨상’ 정도일 것이다. 2000년에 수상한 분야는 심리학·문학·생물학·컴퓨터과학을 포함해 모두 10개이다. 이중에는 한국인 수상자도 있다. ‘초대규모 결혼식 사업의 지속적인 성장과 그 효율성’의 공로로 통일교의 문선명 목사가 경제학 분야에서 수여자로 결정된 것이다.
물리학상은 <유럽물리학회지> 1998년판 19호에 실린 ‘공중부양하는 개구리와 레비트론에 관하여’라는 논문의 저자가 받았다. 그 내용은 강력 자기장만을 이용해서 일체의 지지대 없이 개구리 한 마리를 공중에 띄울 수 있는 방법과 이론에 대한 것이다. 의학상은 1999년 <영국의학저널> 319권에 실린 논문인 ‘성교시 남성 성기모양과 여성의 성적반응에 대한 자기공명 단층이미지’의 저자인 그로닝겐 대학병원의 슐츠 교수팀에게 돌아갔다. 이 논문의 내용은 1495년 다빈치와 1933년 디킨슨 박사가 손으로 그린 성교시 남녀 성기의 위치묘사에 대한 실제적인 조사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화학상은 ‘왜 낭만적 사랑은 거의 미친 상태와 구별할 수 없는가’라는 논문을 발표한 이탈리아 피사대학의 마라치티 교수팀이 받았다. 이들은 사랑의 열병에 걸린 사람과 강박적 정신분열성 환자에게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세로토닌 전달체를 분석함으로써 이들이 의학적으로 거의 ‘동일한’ 상태임을 증명했다.
컴퓨터 과학분야의 수상작은 일종의 컴퓨터 프로그램인 ‘포센스’(PawSense)였다. 동물의 발을 뜻하는 포(Paw)와 그것을 감지한다는 뜻의 센스(Sense)를 결합한 이름이다. 이 프로그램은 집안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컴퓨터 키보드를 밟는 것을 방지해준다. 잠시 컴퓨터에서 자리를 비운 사이에 고양이가 자판을 밟아서 귀중한 데이터를 날리는 불행한 사태를 막는다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설치해두면 고양이가 자판을 밟아도 내용이 입력되지 않도록 했기 때문이다. 자판을 치는 것이 고양이인지 사람인지를 판단할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대개 고양이의 발의 크기는 키자판의 글쇠 하나보다는 항상 크다. 따라서 고양이가 자판 위에 있으면 인접한 글쇠의 문자가 거의 동시에 입력되게 마련이다. 그런 패턴을 발견하면 곧바로 입력을 멈추고 큰 소리를 내면서 고양이를 쫓아내는 것이다. 워드프로세서에서 한글/영문을 자동적으로 전환해주는 원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즉 인접한 키로 구성된, 연합된 입력이 무작위로 들어오면 이는 고양이 발자국이 만들어낸 입력이라고 판단하면 되는 셈이다.
이 프로그램 판매사이트의 문답게시판을 보면 더 걸작이다. △우리 집 고양이는 여간한 소리에 놀라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되는가? 프로그램 세팅을 통하면 얼마든지 엄청나게 큰소리를 발생시킬 수 있다. 단 고양이 입력에 대해서만 그러하니 인심해도 좋다. △우리 집 고양이는 귀가 먹었다. 문제가 없는가? 물론 그렇다. 일단 입력을 차단시키므로 프로그램이나 시스템은 안전하다. △특허를 받았는가? 현재 출원중이다. △어린아이들이 기어올라와서 철퍼덕대며 자판을 마구치는 것을 방지하는 ‘BabySense’를 개발하는 것은 어떤가? 좋은 질문이다. 현재 개발중이다. 완전치는 않지만 아이들 손은 고양이 발보다 조금 더 큰 편이므로 지금의 프로그램으로 어느 정도는 막아진다. △포센스는 램상주용 프로그램으로 아는데 그 크기가 크지 않은가? 아니다. 겨우 80K에 불과하다. △윈도 NT와 2000에도 돌아가는가? 물론이다. 최근에 나온 버전 1.4를 구입하면 된다. △가격은 얼마인가? 탁송료 포함해서 19.99달러, 미국 외에서 주문하면 59달러이다.
아기의 키보드 입력 막는 장치 개발
한번이라도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사용해보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이다. 장난 같은 이 프로그램의 본질은 사실 상당히 심오하다. 그 핵심은 자판을 통해서 들어오는 일련의 입력신호(Signal)와 잡음과의 구분기술이다. 잡음과 신호의 구분기술은 핵잠수함의 탐지기부터 인공위성, 나아가서는 외계의 행성에서 오는 전자파 신호를 분석해 외계생명체의 존재를 파악하는 SETI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무궁무진하게 활용된다. 그리고 이 원리는 어떤 입력수열의 복잡도를 계산하는 콜모고로프(Kolmogorov) 복잡도와 샤탱의 정보이론과도 깊은 연관이 있으며 흔히 우리가 쓰는 압축 프로그램에도 응용된다. 고양이 입력과 같이 의미가 없는 수열은 압축이 잘되지 않는다. 반대로 압축이 잘된다는 것은 그만큼 그 안에 어떤 규칙을 내포한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BabySense’가 나온다면 59달러가 아깝지 않을 것 같다.
조환규/ 부산대 교수·컴퓨터과학

사진/ 컴퓨터가 고양이의 발자국을 알아차린다. 고양이의 발은 키보드 자판을 여러개 움직인다.

사진/ 피실험자인 남녀 두 사람이 커다란 자기공명 단층촬영기에 들어가서 실제 섹스를 하는 동안의 단층 이미지.

사진/ 서울잠실운동장에서 열린 통일교의 결혼식 모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