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친구>
좁디좁은 골목을 헤맨 끝에 동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꼭대기에서야 슬라브식 옥상이 보이는 다세대 주택을 찾을 수 있었다. 불과 6년의 세월이었지만, 가느다란 골목들이 잎맥처럼 갈라지고 다시 만나는 달동네 속에서 영화를 찍었던 바로 그 골목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낮밤을 안 가리고 골목을 누볐던 임순례 감독도 길을 헤맸을 정도였다. 그렇게 골목을 오가다가 마침내 영화 <세 친구>의 하이라이트인 세 친구가 만나는 골목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골목 왼쪽에, 두 친구가 군대에 간 친구의 이야기를 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그 친구를 발견하는 바로 그 옥상집이 6년 전 촬영할 때 모습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주머니, 저희가 이 집 옥상에서 몇년 전에 영화를 찍었는데 다시 좀 올라가봐도 될까요?”
마침 화분에 물을 주고 있던 주인 아주머니에게 임 감독이 허락을 구했다. 임 감독과 기자를 둘러본 아주머니의 대답은 시원스러웠다. “몇년 됐지, 아마 <세 친구>인가 그랬는 데 우리집에서 찍었어. 뭐 여자가 감독이었지 아마?” “제가 그때 감독이에요.” “아이고, 그때 젊은 여자가 영화감독이랬는데 이 양반이구만. 우리집 옥상이래도 옆집으로 들어가야 되요. 한번 같이 가보자고.”
거대한 아파트 단지를 마주보고 있는 동네 달동네의 집들은 벽으로 담으로 맞닿아 사는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생물처럼 자라고 변한다. <세 친구>의 옥상집도 그랬다. 2층 옥상으로 가는 녹슨 철계단은 이상하게도 옆집에서만 넘어갈 수 있었다. 집은 딴 집이었지만 담벼락 하나를 두고 튀어나오고 넘어가는 구조물들이 마치 한집처럼 이어져 있었다. 임 감독도 그때 옆집으로 들어갔던 기억을 끄집어냈다. “이 좁은 계단으로 촬영 장비를 들고 올라가느라고 스태프들이 고생을 많이 했어요. 주인공 두명이 함께 고기구워 먹으면서 석양을 바라보는 장면이 있는데, 해지는 바로 그 순간을 놓치면 하루를 더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정신 바짝 차리고 준비해야 했어요.” 옥상에서 내려다보이는 서울 성북구 삼선동 2가의 풍경은 시야 가득 들어오는 작은 집들의 덩어리들뿐이었다. 왼쪽으로는 영화의 주인공들이 지는 해를 바라보던 서쪽 능선이 펼쳐지고, 맞은편에는 북악산 줄기와 북한산 줄기가 맞닿아 이어지는 성북동 계곡이 보였다. 그리고 달동네를 내려다보듯 산자락을 막고 서서 하늘을 가리는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보였다. 삼선교 큰길에서 불과 5분 거리에 달동네는 그렇게 조용히 숨어 있었다. 버스로 달리는 큰길에서는 보이지 않는 이 좁은 골목의 동네가 영화 <세 친구>의 무대 가운데 한곳이었다. 96년 초 겨울 개봉했던 <세 친구>는 일반 관객보다는 평단과 언론이 더욱 주목했던 영화였다. 전반기에 나왔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과 더불어 <세 친구>는 그해 후반기 가장 개성적인 영화였다. 불과 4억3천만원이라는 적은 영화제작비로 만들어낸 돋보이는 소품이란 평을 들었다. 그리고 워낙 드문 여성감독이라는 점 때문에 임순례 감독 역시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그가 그려낸 <세 친구>란 영화 속 세계는 고교를 갓 졸업한 스무살 청년들의 우울한 청춘이었다. 영화의 줄거리는 제목 그대로 세 친구의 고교 졸업 첫해 이야기다.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이들 달동네 친구 세명에게 세상은 그야말로 지옥같다. 자식을 방치하는 부모, 순진한 아이들에겐 너무나 정글 같은 사회, 상처받은 영혼을 만져줄 아무런 의지대상 하나 없는 이들 세 친구의 결말은 그래서 슬프고 절망적이다.
만화가를 꿈꾸는 ‘무소속’, 여리고 왜소한 미용사 지망생 ‘섬세’, 꿈이 없이 그저 먹고 비디오 보면서 세상을 잊고 싶은 ‘삼겹’. 이 세명은 모두 사회적 잣대로 보면 낙오한 젊은이들로 그려지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들에게 나아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아니, 그들에게 놓인 짐과 장벽은 더욱 거대해지기만 한다. 영화의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는 군대문제다. 모든 것이 불안한 상황에서 그들에겐 군대라는 통과의례가 기다리고 있다. 삼겹과 무소속은 군대를 가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고, 소극적인 성격을 고치고 싶어하는 섬세는 군대를 유일한 탈출구로 삼아 꼭 가고 싶어한다. 결국 섬세와 삼겹은 신체조건 때문에 면제판정을 받고, 무소속은 현역으로 입대했다가 고참에게 구타를 당해 청력을 잃고 의병제대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세 친구>는 임 감독 스스로 표현하듯 “우리가 살아가면서 모르거나 모른 척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건넨다. 화려한 도시의 이면, 그리고 대학위주 교육의 그늘을 영화는 집요하게 파고들어 무작정 보여준다. 대안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사실 이 뒤틀리고 꼬인 사회의 대안을 영화가 제시할 수 있을까. 사회는 그런 치부를 보여주는 것조차 시도하지 않는데.
영화가 달동네 세명의 생활인 만큼 영화는 거의 대부분의 장면을 달동네에서 찍었다. 영화에서는 마치 한 동네에서 줄곧 찍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곳 삼선동을 비롯해 상도동, 봉천동, 길음동 그리고 보문동 뒷골목 등 대여섯 곳에서 나눠 찍은 화면을 짜집기했다. 삼선동 골목은 그때 그대로 남아 있지만 영화의 다른 무대였던 봉천동과 상도동, 난곡 등은 재개발로 이미 동네 모습이 크게 변해버렸다.
골목길의 그들은 말을 건네려고 하지만…
임 감독도 영화를 찍은 뒤 처음으로 삼선동을 찾았던 터였다. 6년 만에 찾아온 그곳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임 감독은 무척 반가워했다. 이 골목 저 골목을 다니며 임 감독은 영화찍을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골목어귀의 허름한 중국집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세 친구가 모여서 자장면을 먹던 곳이었고, 옥상집 바로 앞 비교적 너른 공터에서 카메라를 고정할 수 있었고, 의병제대한 무소속을 본 섬세와 삼겹이 옥상에서 내려와 무소속을 반기는 그 골목이 이곳이었다는 임 감독의 설명이 이어졌다.
영화 속에서는 그렇게 어둡고 칙칙한 모습으로 다가오던 달동네지만 여름비에 촉촉하게 젖은 모습은 청신해 보이기도 했다. “비온 뒤 객사의 버드나무가 더욱 푸르다”는 왕유의 시처럼 세상의 모든 것들은 빗줄기에 때를 벗었을 때가 가장 아름다워 보이게 마련일 것이다. 그렇지만 달동네가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꼭 비온 뒤 더욱 강렬해지는 색감 때문만은 아니다. 달동네는 이방인에게는 제 스스로의 아름다움이 충만해 보이는 곳이다. 초라한 집구석을 치장하고픈 소시민의 욕망이 대문과 벽 주변에 촘촘하게 심은 온갖 식물들로 드러나기 때문에 다른 동네와는 다른 아름다움을 지닌다.
달동네의 집들은 한치의 틈도 한뼘의 공간도 남겨두는 법이 없다. 눈대중으로 시멘트를 발라 계단을 내기도 하고 쪽문과 창문이 새롭게 뚫리기도 한다. 집 옆의 전봇대도 전선줄을 매달면 빨래건조대가 돼버린다. 그런 난삽해 보이는 건물들 사이에 놓여 있는 화분들이 칙칙한 동네를 밝게 꾸며준다. 플라스틱 빵 상자며 스티로폼 상자 그리고 재생 플라스틱 쓰레기통까지 온갖 것들이 화분 대용으로 봉숭아 사루비아 등의 갖가지 꽃을 담아 집 앞에 놓여 있다. 대문과 지붕 위로 호박넝쿨이 우거진 집들도 흔하다. 최고급 건축자재로 치장한 부자동네에선 제 집, 제 마당 안에만 고급 관상수를 심고 담으로 숨겨가며 혼자 즐기지만, 달동네에선 모든 것을 골목 주민 모두의 풍경으로 나눠 즐긴다.
물론 그 아름다움은 어쩌다 한번 찾아간 ‘딴동네 사람’만의 사치스런 감정일 수도 있다. 달동네에 살고 있는 당사자들에게는 그저 하루빨리 벗어나고픈 풍경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 외부 사람들에게는 살을 부비고 사는 모습이 사람사는 풍경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고달프고 귀찮은 모습일 것이다. 그래서 달동네에는 더욱 인간적인 모습과 더욱 각박한 모습이 묘하게 공존한다. 그리고 반대의 꼭지점처럼 멀어보이는 이 두 가지 요소는 결국 하나의 표피를 뚫고 나온 두개의 줄기로 한몸을 이룬다. 가스통 세워놓을 공간조차 부족해 집 밖 골목에 가스통을 훔쳐가지 못하게 쇠 상자를 만들어 가스통을 집어넣고 자물쇠를 채우는 모습이 달동네 주민들에겐 진짜 현실인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그늘인 달동네에서 영화를 찍는 것은 그래서 우리 사회의 사라진 것을 간직하고 있는 달동네의 아름다움과 함께 각박한 세상의 어두운 측면을 만나는 경험이었다고 한다. “영화를 찍은 어느 달동네나 촬영을 하면 꼭 불청객들이 있어요. 술취한 아저씨들이 찾아와서 시비를 거는 거죠. 시비 내용도 똑 같아요. ‘왜 남의 동네 와서 멋대로 이런 거 찍냐’는 거죠. 해결방법도 똑 같아요. 스태프 누구 한명이 술을 사면서 술 상대를 해주는 거예요.” 재미난 추억처럼 읊으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는, 그런 아저씨들이 있을 수밖에 없는 달동네의 모습을 말하는 임 감독의 얼굴에는 안타까움이 짙어보였다.
옥상에서 동네를 둘러본 뒤 나오는 길에 주인 아주머니인 김정중(55)씨에게 물었다. 영화는 보셨냐고.
우리가 돌봐야 할 이웃들이 살고 있다
“영화는 못 봤지. 애들한테 물어보니 그거 비디오 많이 빌려다 본다고 하대. 그래도 우리집에서 찍은 영화가 잘됐다니 얼마나 좋아요. 테레비에서 보니까 누구도 영화찍었는데 망했다구 그러든데. 영화가 오래되면 테레비에서 하던데 그 영화는 안 하고 이름이 비슷한 드라마만 하데.”
사다리까지 가져와 옆집에서 옥상으로 가는 길을 만들어준 아주머니는 영화를 찍었던 그때 그 감독이 다시 찾아온 것을 몹시도 반가워했다. 그리고 우연한 인연이었지만 자기 집을 찾았던 그 영화가 잘된 것을 무척이나 다행이라며 덕담을 건넸다. 김씨네 집 앞에도 작은 화분들이 늘어서 화원을 이루고 있었다. 처음 모습이 어땠는지 감을 잡을 수 없도록 고쳐지고 바뀐 허름한 집이었지만, 사람을 반기는 인정만은 맞은편 성북동 갑부촌이 부럽지 않아 보였다.
인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임 감독은 조용히 감상을 꺼냈다.
“영화찍으면서 느끼는 아이러니가 그런 거예요. 제가 애정을 가지고 있는 대상들이 바로 이런 우리의 이웃들인데, 정작 이 분들은 제 영화를 보시지 못하는 거. 그게 참 아쉬워요. 정말.”
구본준 기자bonbon@hani.co.kr
상처받은 젊은 영혼이 떠도는 골목길… 각박한 세상이 껴안지 못하는 것들

거대한 아파트 단지를 마주보고 있는 동네 달동네의 집들은 벽으로 담으로 맞닿아 사는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생물처럼 자라고 변한다. <세 친구>의 옥상집도 그랬다. 2층 옥상으로 가는 녹슨 철계단은 이상하게도 옆집에서만 넘어갈 수 있었다. 집은 딴 집이었지만 담벼락 하나를 두고 튀어나오고 넘어가는 구조물들이 마치 한집처럼 이어져 있었다. 임 감독도 그때 옆집으로 들어갔던 기억을 끄집어냈다. “이 좁은 계단으로 촬영 장비를 들고 올라가느라고 스태프들이 고생을 많이 했어요. 주인공 두명이 함께 고기구워 먹으면서 석양을 바라보는 장면이 있는데, 해지는 바로 그 순간을 놓치면 하루를 더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정신 바짝 차리고 준비해야 했어요.” 옥상에서 내려다보이는 서울 성북구 삼선동 2가의 풍경은 시야 가득 들어오는 작은 집들의 덩어리들뿐이었다. 왼쪽으로는 영화의 주인공들이 지는 해를 바라보던 서쪽 능선이 펼쳐지고, 맞은편에는 북악산 줄기와 북한산 줄기가 맞닿아 이어지는 성북동 계곡이 보였다. 그리고 달동네를 내려다보듯 산자락을 막고 서서 하늘을 가리는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보였다. 삼선교 큰길에서 불과 5분 거리에 달동네는 그렇게 조용히 숨어 있었다. 버스로 달리는 큰길에서는 보이지 않는 이 좁은 골목의 동네가 영화 <세 친구>의 무대 가운데 한곳이었다. 96년 초 겨울 개봉했던 <세 친구>는 일반 관객보다는 평단과 언론이 더욱 주목했던 영화였다. 전반기에 나왔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과 더불어 <세 친구>는 그해 후반기 가장 개성적인 영화였다. 불과 4억3천만원이라는 적은 영화제작비로 만들어낸 돋보이는 소품이란 평을 들었다. 그리고 워낙 드문 여성감독이라는 점 때문에 임순례 감독 역시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사진/<세친구>)

(사진/회색의 좁은 골목 속 소시민의 모습이 <세친구>의 무대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