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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부자 로빈훗*그냥 재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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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5-0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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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소스 소프트웨어운동의 선구자 리누스 토발즈 자서전 <리눅스*그냥 재미로>

사진/ “인간은 생존, 사회질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재미를 위해 산다”는 리누스 토발즈. 그는 컴퓨터 역사상 지워지지 않을 자신의 업적 역시 ‘그냥 재미로’시작했다고 밝힌다.
피라미드, 만리장성, 달표면에 인간착륙. 어마어마한 인력이 들어간 세기의 프로젝트를 꼽을 때 둘째가라면 서러운 성과들이다. 그러나 단 한 작업에 75만명이 참가하고 있고, 또 이 75만명이 세계 곳곳에 있는 얼굴도 모르는 자발적 참여자들인데다가,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도 않는 그런 프로젝트는 인류 역사상 흔치 않다. 그중 하나가 바로 리눅스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리눅스는 도스나 윈도 같은 컴퓨터 운영체제 프로그램이다.

인생을 뒤흔든 <운영체제: 디자인 및 실행>


리눅스가 다른 운영체제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이 프로그램의 소스코드가 공개되어 있어, 누구든지 자기가 쓰고 있는 프로그램이 어떤 얼개를 가지고 있는지 뜯어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뿐 아니라 쓰는 사람이 자기에게 맞게끔 운영체제를 더 낫게 바꿀 수도 있고, 프로그램의 문제점을 없앨 수도 있다. 지식이 곧 돈인 세상에서 컴퓨터를 돌리는 데 가장 중요한 운영 프로그램을 사용자에게 공짜로 주는데다, 그 프로그램이 사용자가 뜯어고칠 수 있을 만큼 융통성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을 만들어낸 인물이 바로 리누스 토발즈다. 게다가 그는 최근 국내에서 펴낸 자서전 <리눅스*그냥 재미로>(리누스 토발즈, 데이비드 다이아몬드 지음·안진환 옮김/ 한겨레신문사 펴냄)에서, 이 모든 일은 ‘그냥 재미로’ 한 것이라고 태연하게 말한다.

1980년 핀란드에서 태어난 토발즈는 오로지 컴퓨터밖에는 관심없는 말라깽이 소년이었다. 부모님은 스웨덴계 핀란드인으로 공산주의자였다. 해리 포터를 닮은 얼굴에 사교성 없고, 예술에 소질도 없고, 운동도 싫어했다. 사춘기 때에도 여자애들에게 관심없고 오로지 컴퓨터를 갖고 뭘 할 수 있을까에만 몰두했다. 그의 어머니는 “쟤는 캄캄한 방에 컴퓨터만 들여놓고 가끔 마른 파스타만 던져주면 만족해한다”며, 돈이 적게 드는 놈이라고 자랑했다. 헬싱키대학 1학년을 다닐 무렵, 그는 책 한권을 만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뒤흔들어놓는 책 한권을 간직하고 있게 마련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성경>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자본론>이다. 이 천재의 경우에는 그것이 <운영체제: 디자인 및 실행>이었다.

이후로 그는 밤낮으로 커튼을 쳐놓고 비스켓만 먹으면서 프로그램만 만드는 생활에 빠져들었다. 비스켓먹기-프로그램짜기-잠자기식의 생활을 보낸 것이다. 당시 토발즈가 쓰던 운영체제는 암스테르담의 교수 앤드루 타넨바움이 개발한 미닉스(Minix)였다.

미닉스에 실망한 토발즈는 미닉스에 기반한 프로그램을 만들다가 “이건 이미 충분히 많은 기능을 갖추고 있어서 운영체제가 되겠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1991년 9월17일, 리눅스의 0.01 버전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그리고 토발즈는 발명사상 위대한 실수 중 하나로 기록될 실수를 저지른다. 실수로 미닉스 프로그램의 일부를 망가뜨린 것이다. 당시는 지금과 같이 인터넷이 발달되지 않은 시기였다. 한번 프로그램을 설치하려면 매뉴얼을 주문하고, 프로그램을 사고 주문품이 올 때까지 오래 기다려야 했다. 토발즈는 여기서 ‘이를 악물고’ 미닉스가 필요없을 정도로 좋은 운영체제를 스스로 만들기로 결심한다. 리눅스(linux)라는 이름은 이전에 만들어진 프로그램 미눅스(minux)와 리누스(Linus)의 이름을 합성한 것이다.

이로부터 시작하여, 한 대학생이 전세계의 해커들과 만든 소프트웨어는 훗날 마이크로소프트와 빌 게이츠의 영향력을 위협하는 강력한 연대로 성장한다. 전세계적으로는 1천만명 이상, 우리나라에서는 30만명 정도가 리눅스를 사용하고 있다(한국 리눅스협의회 http://www.linuxkr.or.kr). 리눅스는 현재 인터넷 서버구축에 많이 쓰이고 있다.

재미, 그리고 ‘제멋대로’의 리더십

리눅스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운동이 자리하고 있었다.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는 세계각지에 흩어져 있는 프로그래머들이 인터넷을 통해 소프트웨어를 같이 만드는 운동이다. 이 운동은 리처드 스톨만의 GNU운동과 연관을 맺고 있다.

토발즈 역시 리처드 스톨만의 연설을 듣고 부지불식간에 영향을 받았다고 이 자서전에서 고백하고 있다. 스톨만을 비롯한 프로그래머들의 노력으로 GPL(General PublicLicence) 규정이 만들어졌다. GPL을 적용한 프로그램은 누구든지 사용할 수 있고 고쳐쓸 수 있다. 단, 그 소스는 공개해야 하고 다른 프로그래머가 만든 프로그램을자기가 만든 것인 양 판매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그가 가난한 수도승인 것은 아니다. 지금 그는 이른바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말하는 ‘부유한 로빈 후드’가 되었다. 그는 사용자들을 돕는 로빈 후드이면서 동시에 부자이다. 공짜 소프트웨어를 배포해도 돈을 버는 방법은 많다. 그중 하나가 필수적인 기능을 모아서 배포판(Distribution)으로 파는 것이다. 모든 사용자가 리눅스를 가지고 자기만의 운영체제를 만들 수는 없기 때문에, 이 일을 대행해주는 것이다. 이런 일을 하는 회사 중 하나가 레드헷(Red hat)이다. 레드헷은 토발즈에게 스톡업션을 제공했는데 그 자산가치는 몇천만달러에 이른다. 그러나 리눅스의 시장성을 생각해보면 그는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런데 왜 그는 스스로 돈벼락을 물리쳤을까?

그 대답은 이 책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요즘은 예전만 못하지만이라는 전제를 붙이고, 탐욕을 부리는 사람들을 곱게 보지 않는 핀란드의 풍토에서도 원인을 찾는다. 게다가 그의 아버지는 철저한 공산주의자였고 할아버지는 철저한 학구파였다. 이러한 가정환경에서도 그는 리눅스의 대가로 돈을 바라지 않은 이유를 찾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는 삶이 세 가지 목표를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첫째는 생존, 둘째는 사회질서, 셋째는 재미다. 그는 모든 인간의 행동이 이 세 가지 목표를 위해 움직인다고 믿는다. 그리고 인간은 생존이 보장되면 사회질서를 추구하고, 사회질서가 안정되면 재미를 추구하는 식으로 진화한다고 생각한다.

전쟁이나 식욕 등 인간의 모든 행위가 그러하다. 예를 들어 성행위를 보아도, 처음에는 종의 생존을 위한 도구였다가 점차 사회질서를 안정시키기 위해 ‘가족’이라는 제도 안에서 성행위가 용인되었고, 나중에는 성행위 자체가 즐거움을 위한 방법이 된다는 게 그의 말이다. 따라서 ‘재미’가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이지, 권력이나 돈이나 명예가 인간의 목표가 아니라는 것을 그는 은연중에 말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리더십 역시 매우 독특하다.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최정점에 서서 부하직원들을 지휘하는 동안, 리누스 토발즈는 “사람을 리드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라는 낙천적인 말을 한다. 토발즈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시키는 것보다 자기가 하고 싶어하는 것을 하도록 내버려두는 게 훨씬 더 좋은 결과를 초래한다”라고 말하며, 리더의 역할은 실수를 바로잡고 사람들이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라고 자신만의 리더십을 밝힌다. 이 제멋대로의 리더십은 재미있는 결과를 초래한다. 자기도 모르는 새에 세계 최고의 프로그래머들과 함께 일하며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회사가 고용한 몇몇 프로그래머들과 돈만을 염두에 두고 일하는 것보다는 이게 더 재미있지 않은가, 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컴퓨터 석기시대’의 전설

이 책의 또다른 재미는 IBM-PC가 창궐하기 전에, 그러니까 소수의 사람들이 컴퓨터의 가능성을 탐색하던 시절의 전설들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메모리 용량 128킬로바이트가 경이적이던 시대의 이야기가 다소 난해한 용어와 함께 펼쳐진다. 겨우 메모리 640킬로바이트를 얻기 위해서 카탈로그를 찾기 위해 상점을 돌아다니고, 지불보증수표를 끊어 해외로 발송하고, 다시 끈기있게 몇주를 기다려 물건을 받아야만 했던 이야기 말이다. 현재 우리가 가정용 컴퓨터에서 쓰는 메모리의 용량이 몇십메가바이트라는 것을 고려하면 석기시대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그것은 불과 15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앞으로 15년 뒤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인지, 리누스 토발즈는 “그게 뭐든 간에 궁극적인 목적은 즐기는 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리눅스가 그저 재미로 시작했듯이.

이민아 기자 mi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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