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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불현듯 주위를 둘러보라

노동하는 시인 백무산의 새 시집 <거대한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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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0-22 11:26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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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도저라는 별명을 자랑스런 작위처럼 여기지만/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으로 여기는 자들의 작위다/ 위험이 빤한 곳, 죽음이 빤한 곳에/ 비용 대신, 시간 대신 사람들을 밀어넣은 자에게 주는 작위였다.”(‘치욕’ 중에서)

시인이 ‘치욕’에 몸을 떤다. 푸르디푸르던 젊은 시절 몽땅 앗아간 “무쇠 철골 뒤덮인 그들의 공장”을 떠올린 게다. 그곳에선 “죽음과 피와 불구는 늘 곁에 있었다”고, “비용과 실적을 위해 사람목숨도 소모자재에 불과”했던 시절이었다고 몸서리친다. 그렇게 ‘노동하는 시인’ 백무산(53)은 신작 <거대한 일상>(창비 펴냄)에서 그리 오래전도 아닌 우리의 과거를 새삼 끄집어낸다.

〈만국의 노동자여〉로 24년 전 데뷔했던 백무산 시인이 4년여 만에 새 시집을 내놓았다. 후려치는 죽비소리도 시집이 가득하다. 창비 제공

“다시 큰 시련의 시간이 밀려오고 있다!”

“비용과 실적은 그들의 종교였다/ 죽어 개값도 못 받은 사람의 숫자가 얼마나 될지 그들만이 안다/ 그보다 몇십배는 될 불구된 사람들과/ 과부들과 아비 없는 자식들과/ 노부모의 한과 눈물이 있었다./ …그들의 성공은 우리의 씻을 수 없는 치욕이었다.”(‘치욕’ 중에서)

무크지 <민중시>에 시를 처음 내놓은 게 1984년이다. 24년 세월이 흘렀다. <만국의 노동자여>(1988), <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딛고>(1990), <인간의 시간>(1996), <길은 광야의 것이다>(1999), <초심>(2003), <길 밖의 길>(2004)까지. 그새 내놓은 시집만도 여섯 권이다. 4년여 만에 시편 62꼭지를 골라 일곱 번째 시선집으로 묶어내면서 백무산 시인은 이렇게 독백한다.

“부정의 언어를 버리겠다고 한다. 그 말이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버리고 남는 것이 늙어가고 순응하고 안거를 즐기는 순명의 자연이면, 그것은 오히려 자신이 버리려던 것에 더 가까이 가는 길이기도 하다. 운명적 자연은 억압권력의 토양을 형성해간다. …긍정은 부정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정을 껴안고 넘어서는 데 있을 것이다. …다시 큰 시련의 시간이 밀려오고 있다!”(시인의 말에서)


시인의 ‘경고’가 아니어도, 도처에서 ‘반역’과 ‘퇴행’의 살풍경과 만나고 있다. 잃어버렸다던 10년 세월을 되돌리고도 부족한 겐가? 20년, 30년 전의 유행이 복고돼 거리를 떠돌고 있다. 더욱 기가 찬 것은, ‘그들’의 허기가 채워질 줄 모른다는 점이다. 먹잇감을 노리는 ‘백수의 왕’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가죽만 백수의 왕이다/ 저 거들먹거리는 자태 용수철처럼 유연한 허리/ 오직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저 대담함/ …몸을 낮추고 시간을 정지시키는 저 집중력/ 웅크린 천개의 근육이 한꺼번에 탄성을 터뜨리며/ 바람을 가르는 쾌속의 질주/ 영양의 무리들 한가운데를 쫘악 찢으며/ 화살처럼 날아가 정확히 목표물을 물고 나온다/ 숨통을 단숨에 끊고 승자의 도도한 걸음으로/ 더러운 새끼들!”(‘백수의 왕’ 중에서)

〈거대한 일상〉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겐가? 시인은 “꿈꾸지 않는 자의 절망은 절망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래, 우리 혹 스스로 꿈꾸기를 포기한 채 절망 아닌 절망을 했던 건 아닐까? 잘못된 꿈, 과열된 꿈에 이끌려 절망을 희망이라 우격다짐한 것은 아닐까? 불현듯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방글라데시에서 왔다고 했다/ 검은 얼굴의 두 사내가 쇼핑을 나왔다/ 할인매장 계산대에서/ 기름때가 다 가시지 않은 손으로/ 라면과 야채를 넣었다 뺐다 들었다 놓았다/ 돈을 맞추느라 줄였다 늘렸다 했다/ 계산서를 구기던 여직원이 무전기를 든 덩치를 불렀고/ 덩치는 주먹을 흔들고 욕을 퍼붓고 침 튀겼다/ 깜둥이 새끼들 돈 없으면 처먹지 말지/ 여기까지 와서 지랄은 지랄이야!/ …저 자리에서 절절매며 살던 덩치가/ 우리도 인간이라고 외치던 때가 엊그제였다.”(‘기대와 기댈 곳’ 중에서)

“11월, 한무리의 학생들이/ 항의 데모하러 몰려간 곳은/ 저 높은 곳이 아니라 저 낮은 곳/ 겨울비 들이치는 비닐천막/ 나가라 학교에서 나가달라/ 학업에 방해되니 나가달라 핏대 올리며/ …좀 사는 집 아이들 한 달 용돈도 안될 돈 받자고/ 청소일 식당일 열 시간씩 하던 여자들/ 그 일도 더 할 수 없다 쫓겨난 여자들/ 그 등짝에 대고 물러가라 집에 가라 씨펄 아줌마 학교냐….”(‘저 높은 곳에’ 중에서)

허~, 이쯤 되면 해탈인가?

시인의 ‘죽비’가 어깨를 친다. 애써 외면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눈 내리깔고 가던 길 갔을 뿐이다. 일상은 갈수록 거대해졌고, 삶은 나날이 복잡해졌다. 앞뒤 왼쪽 오른쪽 살필 겨를 없었다. 한동안 그리 살아왔다, 바쁜 걸음 옮기며. 그랬을 뿐인데…. 아뿔싸, 그것이 문제였던 게다.

“아, 그렇게 만든 것은 우리들이다/ 더이상 노동은 신성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노동이 자주 그렇게 만들었다/ 만들어가고 있다, 또다른 치욕도/ 저 치욕과의 대면이 이제 일상이 되리/ 그것이 우리의 즐거움도 되리/ 역사도 정치도 세계도 저항도 허공도 그 무엇도/ 일상 아닌 것 없는, 거대한 일상이.”(‘치욕’ 중에서)

깨달음은 때로 아픔을 동반한다. ‘치욕’도 깨달음이다.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송곳 꽂을 땅 한 뙈기 없으면서도 그 땅에 꽂을 송곳은 내내 들고 살아왔다. “오직 사리사욕을 위해 전력을 다해 살고/ 사리사욕을 위해 싸우다 죽어라!” 어려서 읽은 ‘위인전’을 고스란히 쫓아왔다. 시인은 말한다. “순결한 분노는 사회적 명상이다.” 그러니 잠시, 시인의 추천을 따라 ‘고요’에라도 들어볼 일이다. 허~, 이쯤 되면 해탈인가?

“햇살은 부처/ 길은 법당/ 바람은 경전/ …내 목소리 크니 너의 목소리 들리지 않고/ 우리 목소리 크니 저들 목소리 죽고/ …내 자리 비워 너를 앉히는 일, 평화는/ 내 목소리 비워 뭇 생명의 소리 담는 일/ 평화는 너와 나를 방생하는 일….”(‘돌아오지 않는 길’ 중에서)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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