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조작 작물에서 생분해성 성분 추출… 분비물·단량체 활용해 경제성 확보 시도
현재 거의 모든 플라스틱은 석유를 이용해 만들고 있다. 화석 연료의 9%가 화학산업에 사용되고 있는데 이중 절반 이상이 플라스틱을 생산하는 데 쓰인다. 플라스틱의 한 종류인 PVC는 전세계적으로 해마다 1800만t이 생산된다. 이때 800만t의 화석연료가 필요하다.
이렇게 화석연료로 만든 플라스틱은 20세기의 최고 히트상품이었다. 하지만 화석연료에 기반한 플라스틱은 한정된 화석원료를 고갈시키고, 제조하는 과정에서 위험한 화학물질을 내뿜는다. 토양에서 분해도 되지 않기에 폐기할 때 환경에 상당한 부담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기존 플라스틱과 같은 물성을 가지면서 환경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재생 가능한 원료로 식물체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언젠가 식물에서 플라스틱을 열매로 따게 되길 꿈꾸면서.
박테리아 유전자 삽입한 식물의 한계
대개의 식물은 화학물질을 생산하는 ‘소형 공장’을 가지고 있다. 해충이나 질병, 자외선을 막기 위해 자체적으로 화합물질을 만드는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식물은 플라스틱의 단량체로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화합물을 생산한다. 그래서 식물체에서 합성되는 거대 분자를 이용하면 기존 플라스틱을 대체하는 ‘바이오폴리머’(biopolymer)를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식물체의 유전자를 다스리는 건 이론적으로 간단하다. 화합물질에 필요한 유전자는 게놈학을 이용해 식별하고, 바이오기술로 유전자를 식물체에 삽입하면 그만이다. 물론 관련 유전자를 찾아내는 게 까다롭고 전체 공정을 처리하기엔 아직 식물체의 미스터리 영역이 많은 게 사실이다. 그래서 지금껏 식물 플라스틱 연구는 박테리아의 생분해성 플라스틱 생산 유전자를 분리 조작해 식물체에 삽입하는 방식이었다.
현재 미생물을 이용하지 않는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만들기 위해서는 유전자 재조합 식물을 활용해야 한다. 원래 플라스틱의 원료인 PHB(polyhydroxy butyrate)를 생산하는 과정은 본래의 식물체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PHB 생산 및 대사과정은 진화를 거치면서 일부 박테리아에서 생겨났을 뿐이다. 박테리아를 이용해 PHB를 생산하는 데도 어려움이 따른다. 박테리아가 PHB를 생성하도록 탄소원인 포도당을 인위적으로 대량 공급해야 하는 탓이다. 이런 까닭에 광합성을 통해 포도당을 스스로 만드는 식물에 박테리아 유전자를 주입해 식물이 PHB를 생산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렇게 식물에 주입된 박테리아의 유전자가 활동을 개시하면 이 유전자들은 식물세포 내에서 PHB 생산에 필요한 효소를 만들게 된다. 식물은 일종의 대리모 구실을 하는 셈이다. 그것도 박테리아 유전자의 활성을 돕는 원료물질(기질: substrate)이 풍부하게 존재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박테리아를 이용한 생분해성 플라스틱은 이미 10여년 전에 첫선을 보였다. 영국의 제네카사가 1992년에 박테리아를 이용한 시험제조에 성공한 것이다. 당시 kg당 가격이 15달러에 이르러 양산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후속 연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화석연료로 생산하는 일반 플라스틱에 비해 15배나 비쌌던 탓이다. 그 뒤 유전공학을 이용한 생분해성 플라스틱에 관한 여러 연구 성과가 국내외에서 잇따라 나왔다. 1999년 미국의 몬산토사는 유자와 애기장대에 박테리아 유전자를 삽입해 중합체를 만들었고, 국내 임업원구원에서도 1995년부터 400여 그루의 유전자 조작 포플러를 개발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비용도 처음보다 크게 낮춘 kg당 3∼5달러로 끌어내렸다. 당연히 식물체를 이용한 바이오폴리머 생산의 시금석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아직도 일반 플라스틱 공장을 대신하는 유전자 조작 식물은 실험실에서 자라고 있다.
이렇듯 식물체를 이용한 생분해성 플라스틱 생산은 10여년의 연구에도 경제성이라는 난관을 뛰어넘지 못했다. 여전히 생산성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게 주요 원인이다. 식물의 세포 내 대사작용이 워낙 복잡해 한두 단계의 유전자를 조절하는 것으로는 PHB를 충분히 얻을 수 없는 탓이다. 외부에서 유입된 유전자는 식물체의 자기방어 기작에 꼼짝 못하기 일쑤이다. PHB가 과다생산된다면 식물체의 생명력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기에 사태를 방치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대리모라 해도 자신이 죽어가면서 태아를 낳지 않으려는 것과 마찬가지다. 미생물의 경우 자기방어 기작이 간단해 방해요소를 인위적으로 제거하는 게 쉽지만 식물체는 사정이 다르다. 효소 생산 유전자를 첨가하는 것으로 엽록체 미토콘드리아 세포질 등을 넘나드는 세포의 조절 프로그램을 통제하기 힘든 까닭이다. 결국 식물체의 세포조절 프로그램을 완벽하게 밝혀내 맘대로 식물체를 다스릴 수 있어야만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으리란 전망이다.
그렇다면 식물체의 통제 프로그램을 완벽하게 모른다면 방법은 없는 것일까. 가장 손쉬운 방법은 플라스틱 물질을 분비물 형태로 잎이나 뿌리에서 추출하는 것이다. 날마다 식물 잎에 맺히는 이슬방울을 털어내 고농축 원료를 얻는다는 발상이다. 유전자 조작 단계를 거친 담배가 이질단백질을 만들도록 해서 담뱃잎의 분비물에서 원하는 단백질을 추출하는 것처럼하는 것이다. 일액현상이 활발한 식물로는 토마토나 잔디 등이 손꼽히고 있다. 하지만 식물 조직 내부의 압력을 높여 분비물을 얻는 ‘일액현상’(guttation)을 통해 플라스틱 원료 물질을 대량으로 얻기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 플라스틱 유도 단백질을 찾아내는 게 만만치 않은 일이다. 게다가 일액현상으로 분비되는 액체의 양을 맘대로 늘릴 수 없다는 기술적인 장벽이 있다. 만일 지나친 일액현상을 유도한다면 식물체가 제대로 자랄 수 없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식물체를 한 단계만을 조작해 플라스틱 물질을 생산하려고 한다. 식물 대사회로와 관계없이 생산할 수 있는 유전자 조작 식물체를 만드는 방식을 도입하는 것이다. 이는 플라스틱 물질을 생성하는 결정적인 유전자를 발견해야 가능한 일이다. 예컨대 식물의 대사회로를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곤충에 치명적인 살충성분을 만들어내는 bt 유전자를 이용한 목화나 제초제 저항성 유전자가 삽입된 콩처럼 식물체가 플라스틱을 만들도록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미국 퍼듀대학 생체화학 교수 클린트 채플 교수팀이 식물체의 단량체 생산을 이끄는 특정 유전자를 발견해 새로운 유형의 플라스틱을 생산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채플 교수팀이 발견한 유전자는 식물이 세포에서 플라스틱 생성에 관련된 단량체를 포장하고 한곳에 빼곡하게 저장하게 한다. 이 단량체는 리그닌(lignin)의 합성 단계를 조절하는 유전자로 알려졌다. 리그닌은 식물의 줄기를 단단하게 하고 병충해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구실을 한다. 이런 리그닌 합성 단계를 조절해 딱딱한 플라스틱 성질이 있는 물질을 생산해 액포(vacuoles)에서 저장되도록 유전자 발현을 일으키는 것이다. 액포는 대사흐름이 원활해 식물체가 생산한 화학물질의 분자결합을 촉진하고 안정적으로 저장하는 일종의 저장창고이다. 만일 고농도의 플라스틱 물질을 저장할 수 있다면 바이오폴리머 생산의 획기적인 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액포에 축적할 수 있는 양이 실용적일지는 아직까지 미지수이다. 게다가 유전자 조작 과정에서 리그닌의 기능이 손상된다면 식물은 자칫 서 있을 수도 없고 병충해의 위협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채플 교수는 식물체 대사의 한 단계만을 조절해 식물체에 치명적인 손상을 주지 않고 플라스틱 단량체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고농도 원료물질 얻을 수 있는 방법
어쨌든 식물체는 머지않아 재생가능한 화학공장으로 거듭날 태세이다. 하지만 식물체를 이용한 플라스틱 제조는 유전자 조작이라는 딜레마를 비켜가기 힘들다. 유전자 조작 농산물의 논란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플라스틱 물질을 생산하는 유전공학적 식물체가 대단위로 재배되는 걸 수수방관할 리 없는 것이다. 게다가 식물체를 플라스틱으로 전환하는 공정이 환경친화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식물을 키우고 수확해 적당한 시설로 옮겨 세포를 분말형태로 건조하여 플라스틱 성분을 추출, 정제하는 공정에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탓이다. 식물체 재배에 들어가는 비료, 살충제, 제초제 등의 생산 과정까지 고려한다면 일반 플라스틱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화석연료의 고갈에 따른 대체에너지원을 생각한다면 식물 플라스틱은 경제성만으로 따지기 힘든 장점이 있는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식물체는 분해 및 재생가능한 플라스틱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 도움말 주신 분 노은운 임업연구원 생물공학과장
이상엽 한국과학기술원 응용공학부 화학공학과 교수
김수병 기자 soob@hani.co.kr

사진/ 식물체 대사의 한 단계만을 조절해 플라스틱을 얻으려는 채플 교수가 애기장대 실험실을 살피고 있다.

사진/ 이슬방울을 털어 플라스틱을 얻을 수 있을까. 식물체의 분비물에서 유용한 단백질을 얻을 수도 있다.

사진/ 유용한 화석연료로 만든 플라스틱 제품들.(장철규 기자)
* 도움말 주신 분 노은운 임업연구원 생물공학과장
이상엽 한국과학기술원 응용공학부 화학공학과 교수
김수병 기자 soob@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