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바이러스>
한국에서 강마에처럼 살기 위해서는 강마에처럼 인생의 다른 부분이 결핍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원하는 삶을 살기에는 너무나 고단한 인생의 딜레마. 강마에의 딜레마는 곧 김명민이 연기했던 문화방송 <하얀 거탑>의 장준혁과 정확한 대칭을 이룬다. 강마에와 장준혁은 똑같이 ‘개천에서 난 용’이고, 자기 분야에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강마에가 끝없는 실력을 원하는 대신 장준혁은 끝없는 성공을 원한다. 강마에가 음악적 성취를 위해 인간관계의 단절과 완벽한 공사 구분을 선택한다면, 장준혁은 성공을 위해 실력뿐만 아니라 온갖 인맥을 쌓고 부정을 저지르길 주저하지 않는다. 강마에는 실력에 대한 욕망이 과잉됐고 평범한 사람들도 할 수 있는 다른 모든 것이 결핍됐다면, 장준혁은 성공에 대한 욕망이 과잉돼 윤리가 결핍됐다. 혼자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끝없이 실력을 쌓는 외로움을 견뎌야 하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아부와 로비와 협잡을 해야 한다. 장준혁이 단순한 악인을 넘어 시청자의 사랑을 받고, 강마에가 비정상적일 만큼 모난 성격에도 시청자를 매혹시키는 건 이 때문일 것이다. 장준혁과 강마에의 인간적인 결함 뒤에는 원하는 것을 위해 노력하는 만큼 다른 것을 잃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피곤한 삶이 담겨 있다. 강마에가 가장 멋있는 순간은 물론 그가 멋지게 지휘를 할 때다. 하지만 강마에가 괴짜가 아닌 연민의 대상이 되는 순간은 그가 쓰러진 ‘토벤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두커니 애견의 죽음을 기다리며 울기 직전의 모습을 보일 때다. 그는 음악에 모든 것을 쏟아부으면서, 사랑하는 존재를 위해 아무것도 못하는 인간이 돼버렸다. 김명민을 지금 연기의 마에스트로라 부를 수 있는 것은, 그가 상반된 개성의 두 캐릭터를 모두 연기하면서 그들에게 담긴 한국인의 어떤 보편적인 고민을 담아내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죽도록 노력해야 하고, 죽도록 노력하는 사이 무언가 결핍되는 인생. 김명민은 그렇게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지금 시청자가 매혹과 연민과 공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어떤 사람의 복잡한 내면을 보여준다. 단원들이 채워주는 인간적인 결핍 그건 지금 한국에서 김명민만이 보여주고 있는 유형의 연기다. 지금 TV 드라마에서 이렇게 극의 한가운데에서 시청자에게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만드는 호소력을 갖는 배우는 드물다. 이는 한때 연기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연기를 그만둘 생각을 했고 연기를 할 때는 엄청난 집중력을 보이는 걸로 유명한 김명민의 삶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이 김명민, 혹은 강마에는 <베토벤 바이러스>에 “브라보!”를 외치게 되는 중요한 이유다. <하얀 거탑>은 장준혁을 통해 신자유주의 속에서 성공을 위해 헐떡이며 달리다 죽음으로 내리닫는 사람의 인생을 그렸다. 하지만 <베토벤 바이러스>에서는 강마에가 소규모 시향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실력을 향상시키고, 단원들은 그의 인간적 결핍을 채워줄 수 있는 감성을 나눠준다. 고집불통의 실력 우선주의자가 자신의 원칙을 무너뜨리지 않고도 세상과 조우할 수 있는 방법. <베토벤 바이러스>는 실력만으로 평가받는 세상에서 기이할 정도로 낙관적이고 따뜻한 감정을 만들어낼 줄 안다. 경쟁은 치열하다. 마음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강마에가 변할 수 있다면, 세상도 좀 달라지지 않을까. 언젠가는 <베토벤 바이러스>의 김명민이 따뜻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 또다시 그의 연기에 “브라보!”를 외치면서. 강명석 대중문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