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런던의 남동쪽, 가로수가 늘어선 주택가. 천천히 비행하듯 길을 걷는다. 빨간색 자동차와 흰색 자동차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작은 정원도 보이고, 중국 레스토랑도 보인다. 조금 더 걷는다. 갈색 벽돌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가 내가 1년 동안 살게 될 집.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하고 문을 여는데, 문이 열리지 않는다. 다시 한 번 문을 두드린다. 그러나 묵묵부답. 집을 잘못 찾은 것일까? 아니다. 지금 내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열쇠가 아닌 마우스.
여기는 서울의 남서쪽, 영등포구의 한 아파트. 출국을 코앞에 두고 짐을 싸다가 컴퓨터 앞에 앉아 ‘구글 어스’를 시작했다. 창에 런던에서 지낼 집 주소를 입력했더니 친절한 구글 어스씨는 몇 초 만에 주소가 가리키는 동네를 보여주었다. 구글 어스가 보여준 동네는 너무 복잡하지도, 그렇다고 심각하게 지루해 보이지도 않는다. 다음주에는 마우스가 아닌 진짜 열쇠를 손에 쥐고, 구글 어스가 아닌 내 발로 이 동네를 걷고 있겠지.
런던이 나를 부른다. 살갑고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부르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내 이름이 쓰인 대학 석사과정 입학허가서가 날아왔고 1년 반짜리 비자도 나왔으니 나를 부른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련다). 런던이 처음 내 이름을 부른 것은 2007년이 끝나고 2008년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스물일곱에서 스물여덟로 넘어가던, 4년차 기자에서 5년차 기자로 넘어가던 바로 그때였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스물넷 꽃다운 나이에 기자가 된 나는 통신사와 시사주간지, 신문을 돌아다니며 긴 것, 짧은 것, 착한 것, 못된 것, 재미있는 것, 의미 있는 것 가리지 않고 기사를 썼다. 스스로가 대견했다. 5년 동안 제법 신나게 기자 생활을 했다는 게 뿌듯했다. 기자협회나 회사에서 기사 잘 썼다고 주는 상은 한 번도 받아본 적 없지만, 누군가에게 떳떳하게 상을 요구할 권리는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거만한 생각이 엄습했다. 그래서 초등학교 졸업할 때 개근상 받는 기분으로 내가 나에게 상을 주고 받기로 했다. 상 이름은 ‘외국에서의 1년,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20대’.
런던을 선택한 것은 눈 가리고 지구본 돌려서 찍은 것과 다름없는 직관적인 선택이었다. 그냥, 런던이니까. 일을 하면 할수록 점점 바닥을 드러내는 세 가지, 머리·가슴·배. 다시 말해, 지식·재미·긴장감. 런던에서라면 이 세 가지를 충전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돈이다. 장학금 같은 거 없이, 2년치 연봉을 털어서 100% 자비로, 그것도 물가 비싸기로 소문난 런던에 가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렇지만 그 돈이 아깝지는 않다. 2년치 연봉을 투자해서 앞으로 5년 정도는 신나게 살 수 있는 지식과 재미, 긴장감을 가져올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게다가 다행히도 회사는 내게 휴직을 허락했다(만세!).
이제 준비는 끝났고, 비행기 타는 일만 남았다. 런던에서의 1년은 어떤 날들이 될까? 밋밋하기 그지없는 평온한 일상이 될 수도 있고, 여기서 그랬듯이 바람 잘 날 없는 하루하루가 될 수도 있다. 예측불가지만, 걱정은 없다. 런던이 나를 불렀으니까, 책임지고 놀아주겠지.
안인용 한겨레 매거진팀
nico@hani.co.kr
*런던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전해줄 ‘안인용의 런던 콜링’은 격주로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