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의 엠마, <가을 이야기>의 이자벨과 로진
홍상수 감독의 <오! 수정>에는 ‘짝만 찾으면 만사형통’이라는 경구가 나옵니다. 관객은 그 대목에서 실소하지만, 짝만 찾으면 인생의 큰 매듭이 풀린 셈이라는 믿음은 은근히 우리 주변에 만연돼 있지요. 수많은 TV연속극의 사연은 결혼을 하느냐 마느냐 아니면 결혼을 깨느냐 마느냐, 두 가지로 요약되고, 이른바 ‘적령기’ 미혼 남녀는 일가친척부터 잠시 스치는 별 무관한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쏘아대는 “언제 가느냐?”는 질문에 시달립니다. 하긴 결혼했다고 해서 해방은 아니죠. “그럼, 아기는 언제?”라는 후속 질문이 대기하고 있다가 달려드니까요.
이런 현실의 반영인지는 몰라도, ‘남녀 짝짓기’는 영화 역사상 장르를 불문하고 드라마를 움직이는 에너지로 즐겨 쓰여왔습니다. 제인 오스틴 소설을 각색한 <엠마>(1996)는 그 중에서도 아마 가장 노골적으로 ‘커플 맺어주기’에 집중한 영화가 아닌가 싶네요. 19세기 초 런던 근교에 사는 아가씨 엠마 우드하우스(기네스 팰트로)는 티 파티나 무도회가 열리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자, 오늘은 누구랑 누구를 엮어줄까?” 궁리하는 타고난 중매쟁이지요. 가정교사 선생님을 시집보내고 의기양양해진 엠마는 순박한 친구 해리엣(토니 콜레트)을 목사 엘튼과 짝지우려 애쓰죠. 해리엣은 이미 성실한 마을 농부 마틴에게 진정어린 구애를 받고 있건만 엠마는 막무가내입니다. 남의 행복을 본인보다 더 잘 아노라 자신만만해하던 엠마는, 그러나 끝에 가선 사람들의 감정이 그가 상상도 못한 방향으로 가지를 치고 열매까지 맺었다는 사실에 당황합니다. 온 세상을 뜻대로 설득하고, 애정 관계를 조작해 타인의 삶을 ‘개량’해 줄 수 있다는 엠마의 자신감은, 평생 거절당해 본 적 없는 사랑스런 인간 특유의 순진한 만용입니다. 아직 삶의 가을과 겨울을 보지 못한 청춘의 오만이기도 하겠지요.
에릭 로메르 감독의 <가을 이야기>(1998)에서는, 인생의 만추를 맞은 한 여성이 느낀 사랑에 대한 갈증을 씻어주기 위해 친구들이 나섭니다. 장성한 자녀를 떠나 보내고 포도 농사에만 매달려 온 마갈리의 행복을 위해 나선 것은 죽마고우 이자벨(마리 리비에르)과, 아들의 여자 친구 로진(알렉시아 포탈)이지요. 20여년 이상 이상적 결혼을 유지해 온 이자벨은 남녀의 동반 관계에 대한 경험적 신뢰로, 교수와 또래 애인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온 로진은 짝짓기쯤이야 하는 젊은이다운 교만으로 일에 착수합니다. 하지만 이자벨과 로진은 마갈리의 파트너를 찾는 과정을 통해, 본인의 매력을 거울에 비춰보기도 하고 자기의 감춰진 욕구에 대해서도 더 잘 이해하게 되지요. 마갈리를 포함해 <가을 이야기>의 인물들은 에릭 로메르 영화의 주인공답게 스스로 해답을 찾아갑니다.
제 화살에 찔려 그만 프시케를 사모하게 된 큐피드처럼 ‘중매쟁이’들은 직접 사랑을 앓고서야 사랑의 무거움을 깨닫지요. 때때로 세상은 그대로 내버려둘 때에 최선의 침로를 찾아간다는 진리도 덤으로 배우고요. 내 일이 되면 신중을 기하며 문제의 복잡한 본질을 뜯어보면서도, 남의 인생에 관해서는 ‘짝만 찾으면 만사형통’이라고 간단히 결론내리는 성급함은 무엇일까요. 삶이란 점묘법으로 그린 신인상파 화가의 그림과 비슷한가 봅니다. 눈을 바짝 들이대고 보면 그저 색이 소용돌이치는 혼돈일 뿐인데, 한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면 선과 형태가 제법 명료한 듯 착각하게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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