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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진부한 걸 모아 알차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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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7-2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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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김종철 영화평론가·<익스트림 무비> 편집장

스페인산 좀비 영화 〈REC〉는 올해 극장가의 가장 흥미로운 공포영화 가운데 한 편이다. 일찌감치 입소문을 타고(제작연도는 2007년) 유명세를 떨친 〈REC〉는 저예산의 핸디캡을 아이디어로 극복하면서, B급 장르영화의 미덕을 증명했다. 냉정히 따지자면 〈REC〉에서는 새 것을 찾아보기 힘들다. 소재와 스타일 면에서 기존 것을 모방하면서 적절히 변형한 데 불과하다. 좀비 장르는 어느덧 공포영화에서 가장 대중적 아이템이 되었고, 현장 체험 같은 현실적 공포를 추구하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기법은 <카니발 홀로코스트> <블레어 윗치>를 통해서 익숙해진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진부함에도 불구하고 〈REC〉의 내용물은 기대 이상 알차다.

〈REC〉


이야기의 시작은 소방대원들의 하루를 취재하는 리얼 다큐물 촬영을 위해 리포터 안젤라가 소방서를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소방대원들의 일상을 소개하던 안젤라는 얼마 뒤 사건 현장에 동행한다. 그곳의 사건은 끔찍하다. 건물은 폐쇄되었고, 안에서는 사람들이 하나둘 감염되어 좀비로 변하면서 끔찍한 살육이 벌어진다. 이 모든 극적인 사건들을 카메라맨 파블로와 함께 촬영하는 안젤라. 그들은 무사히 건물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REC〉는 무엇보다 영화 배경이 되는 공간 활용이 탁월하다. 세트 아닌 진짜 소방서와 건물 안에서만 촬영됐다. 좁은 복도를 뛰어다니는 좀비들이 더 스피드하고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공간의 힘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REC〉는 사실적 묘사를 위해 전력투구한다. 몇몇 장면들의 경우 작위적 연출이 눈에 띄지만, 극한 상황들의 묘사는 대부분 효과적이다. 〈REC〉는 극적 상황에 처한 인간들의 심리 드라마를 풀어내는 한편, 적절한 타이밍에 쇼크 효과를 성공적으로 배치해 관객을 두려움 속으로 몰아간다. 탈출구 없는 건물 내부에서 좀비들과 대치하는 과정들은 서스펜스와 공포로 충만하다. 페이크 다큐의 장점을 극대화한 라스트 시퀀스의 공포는 박력이 넘친다. 어둠 속에서 맞는, 뼈만 앙상하게 남은 좀비와의 대결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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