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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귀기가 귀를 감싸는 귀신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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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7-24 00:00 수정 : 2008-10-30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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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이 곡의 애청자들은 장담한다. 늦은 여름밤 혼자 방에서, 혹은 밤길에 차를 몰며 들으면, 귀곡성에 십중팔구 몸이 얼어붙을 것이라고. 가야금 명인 황병기씨의 18분짜리 창작곡 <미궁>은 ‘귀신악’이란 별명답게 국산 공포음악의 고전으로 통한다. 마구 튕기고 쓸어낸 가야금 현줄의 아우성에 춤꾼 홍신자씨가 미친 여자처럼 울고 웃고, 중얼거리며 뱉는 입소리가 어우러진다. 그 파격의 선율은 무엇보다 음산한 귀기로 귀를 휘감는다. 1975년 초연 때 관객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고, 2000년대초엔 ‘들으면 자살한다’ ‘작곡가가 곡 짓고 곧장 죽었다’ 등의 괴담이 번지기도 했다. 게임 애호가들에게는 PC 호러게임 <화이트데이>의 섬뜩한 주제곡으로도 익숙하다.

<미궁>은 기실 언어 이전의 소리를 표현하기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가야금 현을 활로 둥둥 때려서 진동시키는 가운데 웅웅거리는 여인의 입소리가 증폭된다.조이듯 밀도를 높이며 반복되는 현의 쓸림소리, 웅얼거리는 입소리가 귀신 같은 흐느낌으로, 웃음으로 바뀐다. 연주자 황씨의 ‘아하’ 하는 추임새 속에 입소리는 신문기사를 읽다가 신내림 받듯 뜻 모를 주문을 지껄이고, 톤이 높아졌다가, 불경 <반야심경>의 ‘아제아제바라아제…’로 접어들면서 사위어간다. 괴성 속에 가야금 판 비비는 소리, 술대 찌르는 소리, 현을 거푸 쓸어내리는 소리들이 원초적 공포감을 낳는다. 가락을 조였다 풀었다 하는 전통 산조의 특성과 가야금을 타악기로 만들어버린 실험성이 녹아들어간 한국 현대음악사의 명곡이기도 하다. 록 팬들에게는 악마적 분장을 한 메릴린 맨슨이 가슴 깊숙이 짜내며 들려주는 리메이크곡 <스위트 드림>의 절규가 귀에 선할 듯. 중세풍의 서늘한 합창에 관능적 보컬이 어우러진 에니그마의 <메아쿨파>, 저 유명한 마이클 잭슨의 최고 히트작 <스릴러> 또한 납량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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