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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그들의 천재적 카드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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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6-19 00:00 수정 : 2008-11-10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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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1>을 보고 블랙잭이 궁금하기만 하다면 만화 <타짜> 4부로 세세한 재미를 얻기를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모든 도박에는 레벨마다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첫 끗발을 올리는 ‘선무당’은 하룻밤을 견디지 못한다. 룰을 숙지하고 경험과 자신의 패의 가능성에 따라 베팅을 하는 고수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돈을 딴다. 확률의 파도를 타고 결국 확률을 역이용해 게임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도박만이 아니라 도박영화도 마찬가지다. 도박영화의 클라이맥스는 도박의 긴장감을 파도 탈 때 온다. 영화 <21>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블랙잭’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블랙잭의 룰을 모르는 사람을 상대로 긴장감을 고조시켜가는 것은 이 도박영화의 ‘도박’이다. 특히 ‘수학 천재가 카지노를 턴다’는 얼개를 가졌으니, 블랙잭 룰의 허점을 파고드는 설명력까지 같이 갖춰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 <21>은 블랙잭의 매력을 무시한다. 영화 <21>에는 없는 블랙잭의 매력을 과외 수업을 통해 알아가보자.

믿는 만큼 걸어라. 영화 에서 MIT 공대생으로 구성된 비밀 조직은 카드를 ‘카운팅’해서 카지노에서 큰돈을 번다.


믿는 만큼 걸어라

<한겨레21>의 21은 ‘21세기’고 영화 <21>의 ‘21’은 블랙잭의 ‘목표 숫자’다. 블랙잭은 딜러보다 21에 가까운 숫자를 만들어내면 이기는 게임이다. 21을 넘기면 ‘버스트’라고 하여 무조건 진다. 그러니까 블랙잭은 21에 가까운 낮은 수를 만들어내야 한다. 모든 그림 카드는 10으로, 에이스는 1과 11 중 유리한 쪽으로 계산한다. 히든카드 두 장(딜러는 한 장을 오픈)을 받고 시작하는데 이후 오픈으로 ‘히트’(한 장 더 받음)하거나 ‘스테이’(받지 않음)할 수 있다. 딜러는 16까지 무조건 추가 카드를 받고 17 이상이 되면 스테이해야 한다. 처음 받은 두 장으로 21을 만들면 ‘블랙잭’이 되는데 건 돈의 1.5배를 받게 된다.

영화 <21>은 벤 메즈리치의 장편 실화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국내에는 〈MIT 수학천재들의 카지노 무너뜨리기〉(자음과모음 펴냄)로 출간됐다. 영화에는 시급 8달러를 받으며 근근이 생활하는 ‘21살’ MIT 공대생 벤(짐 스터저스)이 주인공이다. 양복가게 점원으로 근무하는 벤은 20% 할인된 155달러짜리 구두와 15% 할인된 589.99달러 재킷 등의 총합을 순식간에 암산할 만큼 숫자에 능하다. ‘산수’ 천재 벤은 하버드 의대에 진학하는 데 필요한 30만달러(약 3억원)를 벌기 위해 도박판에 뛰어든다.

MIT는 블랙잭과 인연이 깊다. 1961년 MIT 수학 교수인 에드워드 소프는 ‘부의 공식: 블랙잭 승리 전략’이라는 논문을 미국수학협회 겨울모임에 제출했다. 논문은 수학자보다 도박사의 눈을 더 끌었다. 소프 교수가 이야기한 것은 ‘(돌려지지 않고) 남아 있는 카드에 따라서 돈을 걸라’는 켈리의 1956년 법칙을 발전시킨 것이었다. ‘믿는 만큼 걸기’라는, 경마에서 유래한 법칙이다(<머니 사이언스> 윌리엄 파운드스톤 지음, 소소 펴냄). 블랙잭에서 이 ‘믿는 만큼’이란, 나온 카드의 숫자를 ‘카운팅’함으로써 가능하다. 카운팅으로 앞에 나온 카드를 모두 알아낸다면 뒤에 나올 패가 무엇이 될지를 예상하는 것이 쉬워진다. 카지노에서는 카드 한 벌이 아니라 여섯 벌을 한꺼번에 섞어서 게임을 하게 되는데, 게임의 막바지로 갈수록 어떤 카드가 나올지가 명확해진다.

“이미 나온 패가 과거라면 앞으로 나올 패는 미래다.” 카운팅을 통해 블랙잭은 ‘기억’이 있는 게임이 된다. 도박에 뛰어드는 것을 망설이는 벤에게 블랙잭 모임의 조직자 미키는 “카드를 셀 뿐 게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21>에서는 카운팅을 하는 데 ‘하이-로’ 방법을 이용한다. 2부터 6까지의 로카드는 +1, 10과 에이스 같은 하이 카드는 -1, 나머지 6~9는 0으로 계산한다. 카운팅 숫자가 높다는 말은 ‘높은 카드가 나올 확률’이 그만큼 높다는 것을 지시하게 된다. 눈이 핑핑 돌아가는 실전장에서 이것을 빠르게 세는 방법은 소거법이다. -1과 +1을 짝지어 0으로 계산하는 것이다.

블랙잭의 중요한 ‘철학’

어쨌든 영화 <21>에서는 슬렁슬렁 지나쳐버리는 블랙잭의 매력을 만끽하는 데는 김세영의 최대 걸작인 <타짜> 4부 ‘벨제붑의 노래’(허영만 그림)가 최고다. 여기서 주인공인 태영은 전체 판의 카운팅보다는 한 판에서 딜러를 이기는 확률을 더 많이 연구한다. 태영의 선생님 장동욱은 말한다. “어리석은 게이머는 35 대 65로 깨진다. 잔뼈가 굵은 게이머는 48 대 52로 불리한 게임을 한다. 블랙잭 기본 전략을 마스터하면 50 대 50 동일한 게임을 한다.” 한 판에서의 확률 게임에 대해서도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게이머가 9페어이고 딜러가 5라면 스플릿(카드 두장을 나눠 두 패로 진행), 같은 상황에서 딜러가 7이면 스테이, 8이면 히트가 유리하다 등등.

‘벨제붑의 노래’에는 또 하나 블랙잭의 중요한 ‘철학’도 나온다. 블랙잭은 딜러 한 명에 최대 6명 정도의 게이머가 참여할 수 있다. 이들이 연합해 딜러를 상대하게 되면 카드판의 7분의 6이 우리 것이 된다. 잘하는 게이머가 딜러를 상대해 독주하면 혼자 따지만, 딜러를 꼼짝 못하게 묶어두면 모든 게이머들이 이기게 된다. 뭉칠수록 강해지는 것이다.

영화 <21>에서는 ‘도박영화’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쪼고 카드 뒤집는 긴장감이 사라졌다. 수학적인 문제를 드러내서가 아니라 수학적인 문제를 잘 이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작 소설에서는 “케빈(주인공)에게 진짜로 스릴 있는 것은 게임 그 자체였다. 시스템을 실제로 적용하고 수학을 돈으로 변화시키는 일들은 너무나 흥미로웠다”고 하는데 영화는 MIT의 수수한 삶과 휘황찬란한 라스베이거스를 비교하는 데만 열중한다. 거기다 반전은 도박과 전혀 다른 곳에서 출현한다.

그럼, 도박 수업은 여기까지. 도박을 지배하는 마지막 한 ‘끗’은 운이다. 남의 패를 모두 보려고 하는 자는 타짜가 될 수 없다. 6월2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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