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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페르시아전에 꿔다 놓은 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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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5-0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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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황금의 제국 페르시아’전에 들러리 선 통일신라의 교류사 유물들

▣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시인’으로 추앙받는 이란의 거장 키아로스타미의 영화 속에는 언제나 이란 고원의 풍경이 잡힐 듯 흘러간다. 첩첩이 쌓인 회색빛 돌산과 아래 펼쳐진 밀탑과 언덕, 이리저리 휘돌아가는 길과 사람들의 자근자근한 움직임이 뚜렷한 질감으로 살아 있다. 그 풍경들 속에서 친구가 놓고 간 과제물을 전해주려고 아이가 지그재그의 언덕길을 뛰어 올라간다. 지진으로 무너진 집터 위에 텐트를 쳐놓고 월드컵 중계를 보는 사람들이 있고, 올리브 나무 서 있는 언덕 위에서 사랑하는 연인들은 점점 멀어져간다.

‘황금의 제국 페르시아’ 전에 나온 고대 이란의 명품 유물들. 말 모양 그릇과 고구려 무용총의 활쏘기 벽화와 같은 자세의 사냥 무늬 접시(이상 사산왕조), 염소머리 장식 뿔잔(파르티아).


3년 전 실크로드 취재를 위해 찾아갔던 이란 북부 마슈하드 부근의 고원길은 영화 속 풍경보다도 좀더 황막하고 거칠었다. 돌산의 고갯길을 양떼 몰고 지나가는 목동들과 그들을 내려다보는 푸른 하늘과 산야의 파노라마는 드센 자연 풍광 때문인지, 어떤 곳보다도 인간 존재에 대한 감상을 절절하게 고조시켰다. 이란의 고원길은 기실 1천여 년 전 실크로드의 숱한 카라반(교역상)들과 수행자들이 이윤 혹은 적멸을 생각하며 걸었던 노정이 쌓여 만들어진 산물이다. 다니던 사람과 물자는 바뀌었어도, 사람들 사이에 막힌 통로를 뚫고 마음과 마음의 물꼬를 트려는 의지는 여전히 살아 숨쉰다. 광막한 이란의 황야와 고원에는 수천 년동안 흘러들어간 숱한 열정과 비탄, 환희가 알알이 박혀 있다. 이란의 산악 실크로드 풍경이 시선에 남겼던 웅숭깊은 의미는 역사에 아로새겨진 휴머니즘의 잔상일 터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막한 기획전 ‘황금의 제국 페르시아’(8월31일까지, 02-793-2080, www.persia2008.com)를 보면서 인간의 보이지 않는 역사가 깃든 이란의 고원 풍경을 내내 떠올렸다. 선사시대부터 고대 페르시아, 파르티아, 사산조시대까지 고대 이란의 화려한 문화를 보여주는 이란국립박물관의 일급 컬렉션들은 동물 문양 금제 장신구와 사자 장식 뿔잔 의식 용기들의 정교하고 사실적인 디자인이 압권이다. 신라의 토우, 동물형 토기들과 거의 비슷한 모티브를 띠는 물고기, 말 모양 토기류와 구슬 목걸이, 뿔잔 등은 접붙인 세부 장식의 차이를 빼면, 기본적인 모양새가 신라, 가야의 토기, 공예품과 다를 바 없다. 반추상적인 기원전 1200년께 흑소 모양 주자의 양감은 절제된 조형미를 취하면서도, 생명의 활력으로 가득 차 있다. 그것 또한 신라 토우의 활달함과 닮았다. 꼬아 늘어뜨린 머리카락에 네모난 턱수염을 한 사산왕조의 관료 소조상은 경주 괘릉의 서역인 석상이나 용강동 고분에서 나온 서역인 도용을 떠올리게 한다. 키아로스타미는 “경계를 만드는 것이 경찰과 이민국의 업무라면 경계를 없애는 것은 예술가의 임무”라고 말했다. 수천 년 전 이란 장인들 또한 고도의 세공술과 상상력으로 시공의 경계를 넘어 우리 선조들의 삶과 역사의 한구석으로 예술혼을 전했다는 사실을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의 장벽을 깨는 교류의 마음은 아름답다. 그 성심의 마음이야말로 전란과 파괴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오뚝이처럼 실크로드가 재개되어 사산조의 유물들을 한반도까지 전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7세기 이슬람 세력에 의해 멸망한 뒤 진귀한 이란 문물을 가득 지니고 서역을 거쳐 중국으로 망명한 사산조 왕족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 뒤 중국 장안에서는 ‘호풍’이라는 이란의 의식주 문화가 대유행했다. 그 여파는 곧장 신라의 경주와 고대 일본의 도읍 나라로 퍼졌다.

전시 유물들은 실크로드는 휴머니즘의 문화적 산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지만, 국립중앙박물관쪽의 전시 디자인은 그 의미를 세심하게 발라내지 못한 채 용두사미로 갈무리했다는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비교전시하겠다고 가져온 통일신라의 교류사 유물들이 이란 유물들의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안겨준 까닭이다. 전시가 끝나는 출구 바로 앞 공간에 마치 잔여물처럼 몰아놓은 신라 서역계 유물들의 초라한 모습들은 당장 눈에 거슬렸다. 5세기 경주 황남대총 북쪽 무덤에서 나온 이란풍의 동물 무늬 잔이나 로마 이란산으로 추정되는 유리그릇, 같은 시기 경주 식리총 무덤에서 나온 금동제 신발의 동물무늬 바닥판 등은 하나하나가 세계적인 희귀 명품들이다. 그러나 전시장에는 간략한 설명문만 붙인 채 좁은 공간에 줄줄이 도열시킨 것이 전부였다. 이란 유물과 맞대어놓고 전시한 것이 아니어서 얼핏 그 가치가 무엇인지를 잘 알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사실 외국 컬렉션을 직수입하는 순회전에서 다른 컬렉션 끼워넣기는 큰 실례다. 곽동석 박물관 전시팀장은 이란과 연관되는 신라 공예품들을 반드시 같이 전시해야 한다는 내부 의견에 따라 국립경주박물관의 소장품들을 빌려왔다고했다. 그럴 요량이라면 우리 쪽 유물을 상세히 찍은 패널로 이란 유물과의 연관성을 설명하거나, 한두 점만 독립 진열장에 넣고 부각시켜도 의미는 충분했을 것이다. 진품을 전시했지만, 옹색한 공간에 쓸어넣듯 배치하는 바람에, 유물들의 격만 낮춰 보이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작은 것 얻으려다 더 큰 것을 잃은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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