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짓기, 그 축제들
등록 : 2001-04-17 00:00 수정 :
사람사는 집 한채를 짓는 일은 다른 문화행위와 비교할 때 자본투자와 위험을 동반하는 행위다. 그래서 옛 어르신들은 건축과정마다 제를 치러 마음과 몸을 가다듬었다. 가장 먼저 행하는 제는 개토제(開土祭)로, 말 그대로 흙을 여는 제의다. 토지신에게 “아무개가 어디어디에 집을 짓습니다”라고 신고하기 위해 축문을 읽고 배례를 행하는 것이다. 동시에 이는 집짓는 터 주변 이웃에게 “이제부터 집을 짓게 되었으니 시끄럽고 먼지가 날 것이다. 죄송하지만 너그럽게 봐주시라”라고 떡을 돌리며 양해를 구하는 의미도 있다.
어느 정도 땅을 매만지고 목수일을 시작하게 되면 모탕고사를 지낸다. 모탕이란 나무를 올려놓고 자를 때 쓰는 나무토막이다. 장작 팰 때 받치는 두터운 나무를 생각하면 된다. 이 모탕 주위에 제물과 나무 다듬는 연장을 늘어놓고 목수들이 고사를 지내게 된다. 이제 목수일을 시작한다고 신고하며, 연장에 다치지 말게 해달라는 기원의 의미다. 이때 목수와 주인이 정식으로 인사하면서 사이좋게 집을 잘 짓자고 다짐한다.
다음은 정초고사다. 정초(定礎)라는 말대로 주춧돌을 놓을 때 치른다. 정초고사 뒤에는 입주(立柱)고사가 있다. 기둥을 놓는 고사가 입주고사다. 기둥을 놓은 뒤에는 사람이 기둥 위로 올라가서 작업을 하게 되므로 방심하면 떨어져 몸을 다친다. 이제부터는 땅 위뿐 아니라 기둥 위에서도 일하므로 긴장을 늦추지 말자는 다짐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의식이 상량고사다. 상량고사를 올린다는 것은 기둥 위에 보와 지붕틀도 올라가고 상량, 즉 마룻대가 올라간다는 뜻이므로 이때쯤이면 집꼴이 갖추어진다. 이후에는 벽 치고 마루 놓고 문을 넣는 등 내부공사만 남는다. 상량은 ‘목수 생일’이라고 할 정도로 목수의 노고가 보답받는 날이다. 목수는 건축주로부터 상량채(上樑債)를 비롯해 피륙이나 음식 등 재물을 받는다. 마을 사람들도 와서 음식을 나눠먹으며 “집이 완성되면 어떻게 살라”며 덕담을 한다. 상량에는 붓글씨로 상량문을 쓰는데, 언제 집을 짓고 고쳤는지, 집이 앉은 방향은 어떠한지 등을 낱낱이 쓴다. 상량문 한쪽 끝에는 용(龍)자를, 반대쪽 끝에는 구(龜)자를 쓴다. 물의 신인 용과 거북을 적어두면 집을 불로부터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축원문은 대개 “하늘의 해, 달, 별님은 감응하시어 인간의 오복을 내려주소서”(應天上之三光 備人間之五福)라고 쓴다. 상량문의 양이 많으면 종이에 적어서 상량대 안에 파넣는다. 재력있는 집안에서는 상량문과 함께 안에 약간의 재물을 넣어 올리기도 한다. 후손이 집 고칠 때 필요하면 뜯어 사용하게끔 배려한 것이다.
집이 완전히 마무리되면 입택(入宅)고사를 치른다. 먼저는 집안의 안주인이 살림의 기본이 되는 불씨를 요강에 넣고, 그 요강을 대야에 넣어 손으로 받치고 집안에 들어간다. 이때 요강은 안주인의 요강을 쓴다. 잘 먹고, 잘 내보내고, 잘 살림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