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스타 하시모토의 디스토피아 드라마, 재정파탄 해결 명분으로 야요이문화박물관 등 4곳 매각·폐지안 내놔
▣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시의 공공 문화시설은 도서관만 있으면 그만이다. 박물관 같은 나머지 것들은 남에게 팔아버리든지, 없애버릴 것이다.’
국내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이 ‘돈 없다’며 이런 발언을 막 내뱉는다면, 그것도 공약으로 내걸고 실행하겠다고 나선다면 어떻게 될까. 우선 문화재 동네에서 당장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문화재 선진국이라는 이웃나라 일본의 오사카에서 이런 디스토피아 같은 상황이 드라마처럼 펼쳐지고 있다. TV 연예스타이자 변호사 출신으로, 지난 1월 오사카부 지사에 당선된 하시모토 도루(38)가 막말의 주인공이다. 현직 지자체장 중 최연소이자 거침없는 우익 발언을 퍼붓는 그가 파산 상태인 오사카부의 재정 재건을 명분으로 박물관, 자료관 등의 부립 문화재기관 4곳의 매각, 폐지 등을 포함한 ‘재검토’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IMAGE4%%] 재검토안은 부립 시설 83곳 가운데 도서관 두 곳을 뺀 나머지 시설들의 필요성을 올 6월까지 검토해 아예 없애거나 민간에 팔아치운다는 것인데, 주된 과녁 중 하나가 박물관이다. 대상은 일본의 농경시대를 조망하는 야요이문화박물관과 고분문화를 전시하는 지카쓰아스카박물관, 고대 조방 기술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사야마야케박물관, 천북 고고자료관이다.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생활문화사 전문관으로서 국제적으로도 성가 높은 시설들이나, 관객 흥행에 초점을 맞춘 시설이 아닌 만큼, 올 예산 지출액을 1100억엔(우리돈 1조원이 넘는다)이나 깎으려는 ‘하시모토 구상’ 앞에 언제 희생양이 될지 모르는 처지다. 흔히 교토·나라와 더불어 ‘간사이’로 통칭되는 이 지역 학계의 충격과 반발은 예사롭지 않다. 간사이 지역이 3~4세기부터 오랜 전통을 지닌 역사 문화의 고장인데다, 19세기 도쿄 천도 이전까지 일본 역사의 주무대였다는 자부심이 남다른 까닭이다. 당장 지난달 초 간사이 학계를 중심으로 5개 학회와 교토대, 오사카대 등의 원로·중견 학자 14명 명의로 항의성명이 발표됐고, 이어 저지 서명운동이 시작됐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지금 우리를 만들어낸 과거의 가치를 무시하는 처사”라며 “일본을 대표하는 역사 유산이 다수 흩어진 오사카의 문화 전통에 큰 상처를 입힐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명운동은 교토대 명예교수 오야마 교헤이를 비롯해, 쓰데 히로시, 와다 세이코(리쓰메이칸대) 등의 고고·역사학자들이 주도했지만, 점차 다른 학계와 국내 학자들까지 동참하는 규모로 확산되고 있다. 이달 초 국내 한 고고학회 학술발표장에도 서명 접수대가 등장해 국내 학자들이 서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일본 학계에서 공립 박물관을 지키기 위해 집단운동이 벌어진 것은 전례가 없다. 오사카 시내 우메다역 부근의 맥줏집에서 만난 한 현지 고고학자는 하시모토에 대해 “정말 이상한 사람”이라며 “창피해 죽겠다”고 혀를 찼다. 하시모토의 과격 단순한 발상은 부채 5조원을 넘는 오사카부의 재정파탄 해결이 명분이다. 연예기획사의 선거홍보전으로 당선된 그는 ‘부 청사를 해체하겠다’ ‘나를 따라 공무원들은 죽으라’ 등의 선정적 발언을 거듭했다. 행정개혁 차원에서 군살을 빼려는 시도는 대중에게 환영받았다. 하지만 박물관 문제처럼, 아마추어적 사고로 문화재 현안을 다루다가는 거듭되는 전문가층과의 불협화음으로 행정 동력만 소진되는 결과를 빚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그러나 그는 최근 〈후지TV〉의 연예물에 출연해 “중요한 건 스피드와 실행력”이라거나 “엉망진창 소리를 들어도 절약할 것”이라며 기존 입장을 고수하려는 생각을 내비쳤다. 하시모토의 ‘박물관 죽이기’ 논란은 실용의 시대에 미술관, 박물관 같은 고급 문화시설의 운명에 대한 고민을 새삼 부른다. 국내에서도 연관되는 전례는 없지 않다. 김대중 정부 출범 초기, 지방 국립박물관의 지자체 이관을 추진했다가 문화재 동네의 강력한 반발로 거둬들인 적이 있고, 최근에는 경기도박물관이 민영화되어 산하 경기문화재단의 부속 단체로 격하되면서 직원들이 민간인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공공박물관들이 안일한 기획, 무기력한 콘텐츠로 불만을 사는 경우가 여전히 적지 않지만, 재정부담이나 구조조정의 애꿎은 희생 제물 1순위로 올라가는 관행 또한 낡은 교범이 아닐까. 국내 지자체들이 하시모토의 ‘박물관 죽이기’를 또 다른 본보기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노파심이 생긴다.
[%%IMAGE4%%] 재검토안은 부립 시설 83곳 가운데 도서관 두 곳을 뺀 나머지 시설들의 필요성을 올 6월까지 검토해 아예 없애거나 민간에 팔아치운다는 것인데, 주된 과녁 중 하나가 박물관이다. 대상은 일본의 농경시대를 조망하는 야요이문화박물관과 고분문화를 전시하는 지카쓰아스카박물관, 고대 조방 기술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사야마야케박물관, 천북 고고자료관이다.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생활문화사 전문관으로서 국제적으로도 성가 높은 시설들이나, 관객 흥행에 초점을 맞춘 시설이 아닌 만큼, 올 예산 지출액을 1100억엔(우리돈 1조원이 넘는다)이나 깎으려는 ‘하시모토 구상’ 앞에 언제 희생양이 될지 모르는 처지다. 흔히 교토·나라와 더불어 ‘간사이’로 통칭되는 이 지역 학계의 충격과 반발은 예사롭지 않다. 간사이 지역이 3~4세기부터 오랜 전통을 지닌 역사 문화의 고장인데다, 19세기 도쿄 천도 이전까지 일본 역사의 주무대였다는 자부심이 남다른 까닭이다. 당장 지난달 초 간사이 학계를 중심으로 5개 학회와 교토대, 오사카대 등의 원로·중견 학자 14명 명의로 항의성명이 발표됐고, 이어 저지 서명운동이 시작됐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지금 우리를 만들어낸 과거의 가치를 무시하는 처사”라며 “일본을 대표하는 역사 유산이 다수 흩어진 오사카의 문화 전통에 큰 상처를 입힐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명운동은 교토대 명예교수 오야마 교헤이를 비롯해, 쓰데 히로시, 와다 세이코(리쓰메이칸대) 등의 고고·역사학자들이 주도했지만, 점차 다른 학계와 국내 학자들까지 동참하는 규모로 확산되고 있다. 이달 초 국내 한 고고학회 학술발표장에도 서명 접수대가 등장해 국내 학자들이 서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일본 학계에서 공립 박물관을 지키기 위해 집단운동이 벌어진 것은 전례가 없다. 오사카 시내 우메다역 부근의 맥줏집에서 만난 한 현지 고고학자는 하시모토에 대해 “정말 이상한 사람”이라며 “창피해 죽겠다”고 혀를 찼다. 하시모토의 과격 단순한 발상은 부채 5조원을 넘는 오사카부의 재정파탄 해결이 명분이다. 연예기획사의 선거홍보전으로 당선된 그는 ‘부 청사를 해체하겠다’ ‘나를 따라 공무원들은 죽으라’ 등의 선정적 발언을 거듭했다. 행정개혁 차원에서 군살을 빼려는 시도는 대중에게 환영받았다. 하지만 박물관 문제처럼, 아마추어적 사고로 문화재 현안을 다루다가는 거듭되는 전문가층과의 불협화음으로 행정 동력만 소진되는 결과를 빚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그러나 그는 최근 〈후지TV〉의 연예물에 출연해 “중요한 건 스피드와 실행력”이라거나 “엉망진창 소리를 들어도 절약할 것”이라며 기존 입장을 고수하려는 생각을 내비쳤다. 하시모토의 ‘박물관 죽이기’ 논란은 실용의 시대에 미술관, 박물관 같은 고급 문화시설의 운명에 대한 고민을 새삼 부른다. 국내에서도 연관되는 전례는 없지 않다. 김대중 정부 출범 초기, 지방 국립박물관의 지자체 이관을 추진했다가 문화재 동네의 강력한 반발로 거둬들인 적이 있고, 최근에는 경기도박물관이 민영화되어 산하 경기문화재단의 부속 단체로 격하되면서 직원들이 민간인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공공박물관들이 안일한 기획, 무기력한 콘텐츠로 불만을 사는 경우가 여전히 적지 않지만, 재정부담이나 구조조정의 애꿎은 희생 제물 1순위로 올라가는 관행 또한 낡은 교범이 아닐까. 국내 지자체들이 하시모토의 ‘박물관 죽이기’를 또 다른 본보기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노파심이 생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