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화랑 체인 구축한 미술판 ‘큰 손’ 김창일 아라리오그룹 회장과 전속작가들
▣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간섭? 천만에요, 작가 맘대로 하게 놔둘 겁니다. 그들 중에 한둘만 스타로 건져도 어딥니까.” 미술시장의 큰손 컬렉터로 ‘씨킴’이란 애칭을 지닌 김창일(56·사진) 아라리오그룹 회장이 3년 전 서울 홍익대 앞 대안공간에서 장담하듯 던졌던 말이다. 천안에서 터미널과 백화점을 운영하고 작가를 자처하며 개인전도 벌이는 이 괴짜 기업인은 2005년 2월 화랑업계에 본격 진출하면서, 8명의 낯선 청년작가들을 골라 생계와 제작, 전시를 전폭 지원하는 전속 시스템을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백남준을 이을 스타 작가를 배출해 시장을 키우겠다는 전속작가제는 다른 화랑들도 곧 따라 하면서, 화랑가를 젊은 작가 바람으로 뒤덮어버렸다. 전속작가들과 소주잔을 부딪히면서 “목표는 국내가 아닌 아시아, 세계 일류”라고 외쳤던 그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이제 씨킴은 컬렉터라기보다 재력과 수완을 갖춘 화상으로 통한다. 백화점과 터미널 운영 수익으로 국제 미술시장에서 영국, 독일, 중국 인기 작가들의 작품을 대량으로 사들이고 되판다. 본거지인 천안 아라리오갤러리뿐 아니라, 베이징과 뉴욕에 현지 최대 규모의 전시장을 세워, 국제 화랑 체인을 구축했다. 지난해 예술전문지 <아트리뷰>가 선정한 세계 예술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인사 100인에 이름이 들어갔다. 제주도에 수백억원을 투자해 대형 작가 스튜디오와 전시장을 지었고, 전속작가 수도 30명 가까이로 불어났다. 그와 면담한 사실 자체로 으스대는 작가가 나올 정도다. 브랜드 시대에, 국제 미술시장과 국내 미술판에서 씨킴은 상징적 존재감을 심는 데 성공했다. 미술 권력이 된 씨킴의 3년 전 장담은 지켜지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전속작가제를 놓고 회의적인 목소리들이 높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국내 작가들 작업에서 영향력 있는 결과물이 별로 안 보인다. 일절 다른 곳에 전시, 판매를 못하도록 계약한 젊은 전속작가들은 작가 사회와는 다소 동떨어져 있고, 기획 전시는 판매 성과와는 별개로 미술판에 거의 이야깃거리가 되지 못하고 있다. 박서보·강형구씨 등 원로·중견 작가들이 독일, 중국의 인기 작가들과 같이 전속되면서, 콘셉트나 방향도 희미해졌다. 지난 2~3월 아라리오 서울과 천안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열린 작가 진기종·전준호씨의 전시를 보았다. TV 방송의 이미지적 허상을 허름한 구조물 작업으로 공들여 재현한 진씨나 달러, 북한 지폐, 미식축구 선수의 조상 등을 통해 남북한, 미국의 역학관계를 담은 전씨의 영상·설치 작업들은 깔끔한 완성도와 정련된 메시지가 돋보였다. 그러나 작품 속에서 관객을 고민에 빠뜨리는 조형적 화두보다는 현재 한국 미술의 일반적 트렌드, 흥행 공식을 좀더 세련되게 변주한 느낌이 더 강했다.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 출품 작가인 이형구씨도 3월 초 뉴욕 아라리오에서 애니메이션 동물 캐릭터의 뼈다귀 이미지를 내세운 전시를 시작했지만, 현지 반응은 냉담하다는 평들이 많다. 젊은 미술인들 사이에서는 아라리오가 인기 외국 작가들의 작품 판매에만 치중해 젊은 전속작가들의 프로모션 작업에 다소 소홀하다는 뒷말도 잇따른다. 흔히 씨킴을 이야기할 때 영국의 컬렉터 사치와 비교하곤 한다. ‘yBa’(young British artists)라고 일컫는 영국 청년 현대미술가들을 스타로 키운 광고업자다. 그러나 둘의 안목과 내공의 차이는 갈수록 커져 보인다. 사치는 동물 주검, 피, 분뇨 등 엽기 소재로 삶과 죽음의 화두를 쥐어짜는 작가들의 전위성을 전시를 통해 부추켰다. 허스트, 에민, 퀸 같은 젊은 작가들이 기호의 엽기성을 발산할수록, 상품성이 커진다는 것을 직감했다. 사치는 엽기를 흥행코드로 만들고, 논란 섞인 전시를 만들고, yBa 작품의 대량 구매 열풍을 이끌었다. 반면 씨킴의 수하에는 복종하는 딜러는 많아도, 까탈스런 기획자는 별로 없다. 사진과 조각의 접합으로 유명해진 권오상씨, 조감도식 풍경에 기묘한 일상 이미지들이 출몰하는 박세진씨, 인간 통조림의 디스토피아를 선보였던 이동욱씨 등 전속 유망주들이 더 이상 진전된 작업을 보여주지 못하는 배경을 살펴야 하지 않을까. 씨킴의 본질은 부자다. 그가 미술판의 화제가 되는 것은 미술에 관심이 많은 부자이기 때문이다. 기획자 ㅈ씨는 “미술을 누구나 이야기하지만, 아무나 휘저을 수는 없다”고 했다. 아라리오의 젊은 전속작가들이 왜 정체 상태에 빠졌는지 진단하기 버겁다면, ‘까불이’ 워홀처럼 드러내놓고 공장을 만들어, 미술 공산품을 팔면 된다. 미술 본색은 확실히 드러내는 편이 좋다. 사치의 성공신화는 더 이상 씨킴과 맞지 않다.

(사진/ 한겨레 강재훈 기자)
“간섭? 천만에요, 작가 맘대로 하게 놔둘 겁니다. 그들 중에 한둘만 스타로 건져도 어딥니까.” 미술시장의 큰손 컬렉터로 ‘씨킴’이란 애칭을 지닌 김창일(56·사진) 아라리오그룹 회장이 3년 전 서울 홍익대 앞 대안공간에서 장담하듯 던졌던 말이다. 천안에서 터미널과 백화점을 운영하고 작가를 자처하며 개인전도 벌이는 이 괴짜 기업인은 2005년 2월 화랑업계에 본격 진출하면서, 8명의 낯선 청년작가들을 골라 생계와 제작, 전시를 전폭 지원하는 전속 시스템을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백남준을 이을 스타 작가를 배출해 시장을 키우겠다는 전속작가제는 다른 화랑들도 곧 따라 하면서, 화랑가를 젊은 작가 바람으로 뒤덮어버렸다. 전속작가들과 소주잔을 부딪히면서 “목표는 국내가 아닌 아시아, 세계 일류”라고 외쳤던 그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이제 씨킴은 컬렉터라기보다 재력과 수완을 갖춘 화상으로 통한다. 백화점과 터미널 운영 수익으로 국제 미술시장에서 영국, 독일, 중국 인기 작가들의 작품을 대량으로 사들이고 되판다. 본거지인 천안 아라리오갤러리뿐 아니라, 베이징과 뉴욕에 현지 최대 규모의 전시장을 세워, 국제 화랑 체인을 구축했다. 지난해 예술전문지 <아트리뷰>가 선정한 세계 예술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인사 100인에 이름이 들어갔다. 제주도에 수백억원을 투자해 대형 작가 스튜디오와 전시장을 지었고, 전속작가 수도 30명 가까이로 불어났다. 그와 면담한 사실 자체로 으스대는 작가가 나올 정도다. 브랜드 시대에, 국제 미술시장과 국내 미술판에서 씨킴은 상징적 존재감을 심는 데 성공했다. 미술 권력이 된 씨킴의 3년 전 장담은 지켜지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전속작가제를 놓고 회의적인 목소리들이 높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국내 작가들 작업에서 영향력 있는 결과물이 별로 안 보인다. 일절 다른 곳에 전시, 판매를 못하도록 계약한 젊은 전속작가들은 작가 사회와는 다소 동떨어져 있고, 기획 전시는 판매 성과와는 별개로 미술판에 거의 이야깃거리가 되지 못하고 있다. 박서보·강형구씨 등 원로·중견 작가들이 독일, 중국의 인기 작가들과 같이 전속되면서, 콘셉트나 방향도 희미해졌다. 지난 2~3월 아라리오 서울과 천안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열린 작가 진기종·전준호씨의 전시를 보았다. TV 방송의 이미지적 허상을 허름한 구조물 작업으로 공들여 재현한 진씨나 달러, 북한 지폐, 미식축구 선수의 조상 등을 통해 남북한, 미국의 역학관계를 담은 전씨의 영상·설치 작업들은 깔끔한 완성도와 정련된 메시지가 돋보였다. 그러나 작품 속에서 관객을 고민에 빠뜨리는 조형적 화두보다는 현재 한국 미술의 일반적 트렌드, 흥행 공식을 좀더 세련되게 변주한 느낌이 더 강했다.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 출품 작가인 이형구씨도 3월 초 뉴욕 아라리오에서 애니메이션 동물 캐릭터의 뼈다귀 이미지를 내세운 전시를 시작했지만, 현지 반응은 냉담하다는 평들이 많다. 젊은 미술인들 사이에서는 아라리오가 인기 외국 작가들의 작품 판매에만 치중해 젊은 전속작가들의 프로모션 작업에 다소 소홀하다는 뒷말도 잇따른다. 흔히 씨킴을 이야기할 때 영국의 컬렉터 사치와 비교하곤 한다. ‘yBa’(young British artists)라고 일컫는 영국 청년 현대미술가들을 스타로 키운 광고업자다. 그러나 둘의 안목과 내공의 차이는 갈수록 커져 보인다. 사치는 동물 주검, 피, 분뇨 등 엽기 소재로 삶과 죽음의 화두를 쥐어짜는 작가들의 전위성을 전시를 통해 부추켰다. 허스트, 에민, 퀸 같은 젊은 작가들이 기호의 엽기성을 발산할수록, 상품성이 커진다는 것을 직감했다. 사치는 엽기를 흥행코드로 만들고, 논란 섞인 전시를 만들고, yBa 작품의 대량 구매 열풍을 이끌었다. 반면 씨킴의 수하에는 복종하는 딜러는 많아도, 까탈스런 기획자는 별로 없다. 사진과 조각의 접합으로 유명해진 권오상씨, 조감도식 풍경에 기묘한 일상 이미지들이 출몰하는 박세진씨, 인간 통조림의 디스토피아를 선보였던 이동욱씨 등 전속 유망주들이 더 이상 진전된 작업을 보여주지 못하는 배경을 살펴야 하지 않을까. 씨킴의 본질은 부자다. 그가 미술판의 화제가 되는 것은 미술에 관심이 많은 부자이기 때문이다. 기획자 ㅈ씨는 “미술을 누구나 이야기하지만, 아무나 휘저을 수는 없다”고 했다. 아라리오의 젊은 전속작가들이 왜 정체 상태에 빠졌는지 진단하기 버겁다면, ‘까불이’ 워홀처럼 드러내놓고 공장을 만들어, 미술 공산품을 팔면 된다. 미술 본색은 확실히 드러내는 편이 좋다. 사치의 성공신화는 더 이상 씨킴과 맞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