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엽고 씩씩한 여인 줄리아 로버츠 … 새 영화 <멕시칸>에서도 보석같은 웃음이 빛난다
대낮에 남자친구의 짐가방을 길바닥으로 내던지는 씩씩한(?) 여자, “이번 일을 못해내면 난 죽은 목숨이야”하며 애걸하는 남자의 얼굴을 향해 “나와 라스베이거스에 가기로 한 약속은 어쩌고. 언제나 당신은 당신 자신밖에 몰라”라고 미친듯이 고함지르며 신발을 내던지는 모습조차도 매력적인 여자 역할이라면 누가 떠오를까? 그렇다. 우아한 드레스 차림으로 오페라를 보다가 킁소리를 내며 코를 풀고, 옛 남자친구의 결혼식날 신부를 쫓아가는 남자친구에게 사랑한다고 소리지르며 달려가던 바로 그 여자, 줄리아 로버츠(33)다.
브래드 피트와의 만남
한번 웃음이 터지면 얼굴의 반이 입으로 변하는 줄리아 로버츠의 건강한 웃음을 스크린에서 다시 만나게 됐다. 할리우드 왕자와 공주의 만남으로 제작 초부터 화제를 뿌렸던 <멕시칸>이 4월28일 국내 개봉한다. 일명 멕시칸으로 불리는 진귀한 총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린 이 영화에서 줄리아 로버츠는 브래드 피트와 커플을 이뤘다. 제대로 처리하는 일이라고는 없는 갱단의 하수인 제리(브래드 피트)와 여자친구 샘(줄리아 로버츠). 샘의 요구로 제리는 갱단에서 손을 털려고 하지만 멕시코로 가서 ‘멕시칸’을 찾아오지 않으면 온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이겠다는 위협에 할 수 없이 멕시코로 떠난다. 샘은 제리와 결별을 선언하고 혼자 라스베이거스로 떠나다가 제리를 찾는 조직에 인질로 붙들린다.
이 작품에서 두 배우의 연기력을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광채를 발하는 건 줄리아 로버츠다. 이유는 간단하다. 어리숙한 양아치 제리는 제리일 뿐이지만 샘은 바로 <귀여운 여인>과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그리고 <에린 브로코비치>에서 함박웃음을 보여주던 바로 그 줄리아 로버츠이기 때문이다. 샘은 남자친구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으면서도 그의 실종에 안절부절못하다가 가까스로 연결된 통화에서는 “빌어먹을 자식, 내 신용카드는 어쩐거야?”하며 분노를 터뜨린다. 또한 자신을 끌고 다니는 킬러와 연애상담을 하면서 도리어 그의 상처를 다독이며 따뜻한 미소로 감싸준다. 샘이 터뜨리는 소박한 웃음과 천진한 눈물은 11년 전 <귀여운 여인>에서 만인의 연인으로 등장했던 비비안의 모습 그대로다.
그러나 90년 할리우드의 줄리아 로버츠가 <귀여운 여인>의 붉은 카펫을 밟고 신데렐라로 등장했을 때까지만 해도 이웃집 아가씨같이 평범해 보이는 이 배우가 10년 뒤 할리우드를 쥐락펴락하는 여배우로 대성하리라 예측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실제로 줄리아 로버츠는 불과 1년 뒤 할리우드 제작자들의 ‘악몽’과 같은 존재로 몰락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할리우드 여배우 목록에 또 하나의 바비인형으로 등록되기를 거부하고 나름대로 연기변신을 시도했던 <사랑을 위하여><후크>에서 로버츠는 처참한 실패를 맛봤다. 또한 결혼을 약속했던 키퍼 서덜런드와의 파혼 이후 끊임없이 터져나온 스캔들로 그는 영화촬영보다 분주하게 황색지의 표지를 장식하곤 했다. 20대 초반 나이에 천당과 지옥을 모두 다녀온 줄리아 로버츠는 그러나 현명하게도 싸구려 배우로 전락하기보다는 귀향을 선택했다. 고향인 조지아주에서 칩거하던 줄리아 로버츠는 2년 만에 <펠리칸 브리프>로 컴백했다. 명민한 법대생으로 등장했던 이 작품의 결과는 <귀여운 여인>에 비하면 결코 화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줄리아 로버츠는 작품에서도, 생활에서도 뚜렷하게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불과 21개월 동안 유지됐지만 무명가수 라일 로벳과의 결혼에서 이혼까지 두 사람을 사정없이 괴롭히던 언론을 향해 로버츠는 한결 여유있는 웃음을 보냈다.
<펠리칸 브리프> 이후, <아이 러브 트러블> <사랑게임> 등으로 미끄러져 내려온 계단을 착실하게 다시 밟아온 줄리아 로버츠는 97년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을 통해 다시 만인의 연인 자리를 회복하게 된다. “스물여덟이 되도록 둘 다 짝이 없으면 결혼하자”고 약속했던 옛 연인이 스물여덟 생일을 며칠 앞두고 결혼소식을 통보하자 줄리언(줄리아 로버츠)은 남자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그의 곁으로 날아간다. 신부의 들러리를 서기로 약속하고, 둘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줄리언은 갖가지 묘안을 부려본다. 신부가 음치인 것을 알고 일부러 가라오케에 데려가거나, 둘 사이를 이간질시키는 편지도 보내보지만 줄리아 로버츠의 계략은 결코 교활해보이지 않는다. 결혼식날 옛 애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면서 자신의 감정에 천진하게 매달리는 여인에게 줄리아 로버츠는 추함도 이기심도 솔직함으로 바꿔버리는 마술을 걸어버린다. 이런 매력은 후속작인 <노팅힐>과 <런어웨이 브라이드> <에린 브로코비치>에서 유감없이 발휘되면서 그를 할리우드의 흥행사로 올려놓았다.
출연료 파업, 2천만달러 고지를 넘기다
기쁠 때면 목젖이 다 드러나도록 입을 열어 웃고, 슬플 때면 남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코를 풀면서 울고마는 줄리아 로버츠의 소박함과 솔직함은 인간 줄리아 로버츠의 매력이기도 하다. 뉴욕의 고급 아파트에 일하는 사람 하나 없이 스스로 집안일을 꾸려가는 그는 약혼자인 배우 벤자민 브랫과 시시때때로 뉴욕의 길거리를 활보하기도 한다. 자신이 겪는 억울함에 씩씩하게 분노하는 것 역시 그의 실제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출연작 가운데 아홉편이 1억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려 웬만한 남자스타들보다 좋은 흥행성적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출연료에서 수백만달러 이상 차별을 받아온 그는 지난해 출연료 파업을 벌였다. “영화의 비즈니스 측면에는 별 흥미가 없다. 그러나 남자배우의 영화만큼 성공을 거둬도 그들과 같은 액수를 받지 못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발한 그는 지난해 <에린 브로코비치>에서 여러 남자배우들이 이미 달성한 2천만달러 고지를 여자배우 최초로 넘겼다. 이 파업이 단순한 돈 욕심 때문이 아니었다는 것은 이번 작품 <멕시칸>에서 그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개런티로 선뜻 출연했다는 사실이 입증한다.
지난해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유명인사 100인’에 꼽혔고, <프리미어>가 선정한 할리우드 파워순위에서 여성으로 가장 높은 순위인 20위에 오른 줄리아 로버츠는 이제 어느 누구도 무시못할 할리우드의 거물이 됐다. 지난 3월 열린 아카데미영화제에서 모든 여배우의 꿈인 여우주연상을 따냄으로써 그의 승승장구에는 화룡점정이 찍혔다. 그러나 영화계의 클레오파트라임을 공인한 이 자리에서도 그는 기품을 내보이기보다는 마치 동네 빵굽기 대회에서 상을 탄 아낙처럼 “어머, 이 트로피 너무 예뻐요”라고 흥분하면서 천진하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줘 팬들을 흐뭇하게 했다.
이번에 개봉되는 <멕시칸> 역시 지난 3월 미국 개봉 직후, 무서운 흥행돌풍을 일으키던 <한니발>의 바람을 맥없이 가라앉히면서 2주 동안 흥행 1위를 차지했다. 줄리아 로버츠의 변신을 기대한 관객이라면 조금 실망할 법도 한 영화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줄리아 로버츠가 보여주는 보석 같은 웃음은 ‘변신’뿐 아니라 시들지 않는 한결같음 또한 얼마나 큰 매력이 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멕시칸>에서 줄리아 로버츠는 브래드 피트와 짝을 이뤄 치고박고 싸우면서도 애인을 위해 목숨을 거는 여인 역할을 했다.

사진/줄리아 로버츠는 지난 3월25일 아카데미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해 최고의 여배우 자리를 굳혔다.(SYGM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