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병수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 지은이 baseahn@korea.com
‘우리 아기 불고 노는 하모니카는/ 옥수수를 가지고서 만들었어요….’ 석동 윤석중 선생은 옥수수를 아기의 장난감에 비유했다. 옥수수는 누구에게나 친근감을 자아내는 식품이다. 이런 옥수수가 요즘 난데없이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친근한 이미지가 공포의 대상으로 바뀔 운명에 처했다. 우리나라도 앞으로 유전자조작(GMO) 옥수수를 수입하기로 했다고 발표한 것이 그 발단이다.
옥수수는 껍질을 빼면 약 70%가 전분이다. 이 옥수수 전분은 가공식품 산업에서 중요한 위상을 갖는다. 전분 자체가 유용한 식품 원료인데다 우리가 잘 아는 각종 당류의 출발 물질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옥수수 전분에 염산과 같은 산성 물질을 가하면 분자 사슬이 끊어져 짧은 탄수화물이 만들어진다. 이것이 덱스트린이다. 이 덱스트린 분자를 더 짧게 만든 것이 물엿, 좀더 짧게 하면 올리고당이 된다. 마지막까지 단분자가 되도록 끊어놓은 것이 바로 과당 또는 포도당이다. 업계에서는 이 옥수수 가문의 당류를 묶어 ‘전분당’이라 부른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과자, 빵, 음료, 조미식품, 인스턴트식품, 패스트푸드 등 온갖 식품에 심지어 주류까지 이 전분당의 은총을 받지 않은 음식이 있을까. 요식업소는 물론이고 각 가정의 주방 구석구석까지 전분당은 진출해 있다. 이는 곧 옥수수가 잘못되면 우리네 식생활 전반이 잘못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다. 유전자조작 농산물의 유해성 여부가 요즘 초미의 관심사인 것은. 시행 주체인 전분당 업체들은 당연히 무해론을 편다. 유전자조작 옥수수나 보통 옥수수나 그 안에 들어 있는 전분은 본질적으로 같다는 것이다. 설사 옥수수에 다른 형질의 유전자 성분이 있다 하더라도 전분당의 경우는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고온과 고압이 수반되는 정제·가공 과정에서 깨끗이 제거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현대과학은 이 이론을 책임질 수 있을까. 해묵은 논란에 끼어들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추론할 수 있다. 유전자가 다른 옥수수는, 만드는 전분도 다를 것이라는 사실. 물론 그것은 분자 단위의 극미한 세계 이야기다. 그 차이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닐 터다. 허튼 기계 따위로 조사해서 알아낼 수 있는 정도도 아닐 터다. 우리가 먹었을 때 인체 세포만이 감지할 수 있는, 미세한 생리학적 차이일 터다. 그 작은 차이가 먼 훗날 큰 파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최종 전분당 생산품에는 ‘변형유전자 흔적’이 잔존하지 않는다는 주장에도 의구심이 일긴 마찬가지다. 물엿에서 더러 아황산 성분이 검출되는 것은 왜인가. 정제 불량 탓 아닌가. 아황산 같은 거친 첨가물은 놓치면서 정교한 유전자는 걸러낼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유전자조작 옥수수를 꼭 들여와야 할 형편이라면, 그래서 유전자조작 전분당 시대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한 가지만은 간구한다. 소비자가 반드시 알 수 있도록 해달라고. 어느 식품에 ‘불온 전분당’이 들어 있는지 말이다. 그것은 최소한의 소비자 권익이자 업계의 마지막 의무다. 가뜩이나 버거운 짐을 지고 있는 오늘날의 식품 소비자들. 그들의 어깨 위에 또 하나 큼직한 짐이 올라왔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그래서다. 유전자조작 농산물의 유해성 여부가 요즘 초미의 관심사인 것은. 시행 주체인 전분당 업체들은 당연히 무해론을 편다. 유전자조작 옥수수나 보통 옥수수나 그 안에 들어 있는 전분은 본질적으로 같다는 것이다. 설사 옥수수에 다른 형질의 유전자 성분이 있다 하더라도 전분당의 경우는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고온과 고압이 수반되는 정제·가공 과정에서 깨끗이 제거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현대과학은 이 이론을 책임질 수 있을까. 해묵은 논란에 끼어들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추론할 수 있다. 유전자가 다른 옥수수는, 만드는 전분도 다를 것이라는 사실. 물론 그것은 분자 단위의 극미한 세계 이야기다. 그 차이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닐 터다. 허튼 기계 따위로 조사해서 알아낼 수 있는 정도도 아닐 터다. 우리가 먹었을 때 인체 세포만이 감지할 수 있는, 미세한 생리학적 차이일 터다. 그 작은 차이가 먼 훗날 큰 파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최종 전분당 생산품에는 ‘변형유전자 흔적’이 잔존하지 않는다는 주장에도 의구심이 일긴 마찬가지다. 물엿에서 더러 아황산 성분이 검출되는 것은 왜인가. 정제 불량 탓 아닌가. 아황산 같은 거친 첨가물은 놓치면서 정교한 유전자는 걸러낼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유전자조작 옥수수를 꼭 들여와야 할 형편이라면, 그래서 유전자조작 전분당 시대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한 가지만은 간구한다. 소비자가 반드시 알 수 있도록 해달라고. 어느 식품에 ‘불온 전분당’이 들어 있는지 말이다. 그것은 최소한의 소비자 권익이자 업계의 마지막 의무다. 가뜩이나 버거운 짐을 지고 있는 오늘날의 식품 소비자들. 그들의 어깨 위에 또 하나 큼직한 짐이 올라왔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