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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이젠 60홈런을 날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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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4-1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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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초반 달구는 슬러거들의 경쟁… 장종훈 재기해 토종·용병들의 접전 예고

사진/올 시즌 홈런왕 경쟁에 불을 지핀 한화의 장종훈. 그는 기술적·정신적 성장을 통해 제2의 전성기를 예고하고 있다.
올 시즌 프로야구가 시원스런 홈런포와 함께 막이 올랐다. 지난 4월5일 대구구장서 열린 삼성-한화의 개막전서 신구 홈런왕 이승엽과 장종훈이 마수걸이 아치를 주고받는 등 올해도 어김없이 슬러거들의 불꽃 튀는 홈런왕 레이스가 시작됐다. 4월13일 현재 장종훈은 4개의 아치를 그려 홈런 부문 공동선두에 올라 있고, 이승엽은 개막 2경기 연속 홈런으로 공동 4위에 올라 있다.

홈런은 영원한 ‘야구의 꽃’이다. 메이저리그와 일본이 그렇고 한국도 마찬가지다. 지난 94년 선수노조 파업으로 시들해진 메이저리그의 인기를 되살려놓은 것은 98년과 99년 두해에 걸쳐 벌어진 박진감 넘치는 마크 맥과이어(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새미 소사(시카고 컵스)의 홈런 레이스였다. 국내 프로야구는 99년 이승엽이 전인미답의 54홈런 행진을 벌이며 IMF 경제위기 이후 처음으로 300만 관중 시대를 회복할 수 있었다. 타자에겐 최고의 영광, 프로야구엔 흥행의 전령사인 올 시즌 홈런왕의 주인공은 과연 누가 될까. 시즌 초반이지만 벌써부터 그 열기가 뜨겁다.

장종훈, 타격자세 교정해 약점 극복


사진/외다리 타법으로 50홈런왕 시대를 연 삼성의 이승엽. 그는 원래의 폼으로 복귀해 다시 홈런왕을 노리고 있다.
장종훈과 이승엽은 국내 프로야구의 홈런기록사에 기념비를 세운 주인공들이다. 청주 세광고를 졸업하고 연봉 300만원의 연습생으로 지난 86년 빙그레(현 한화)에 입단한 장종훈은 92년 41홈런을 때려내며 40홈런 시대를 열었다. 그로부터 7년 뒤 국내 프로야구의 홈런 지도는 다시 한번 크게 바뀐다. 야구 명문 경북고 출신의 이승엽이 특유의 외다리 타법으로 54홈런을 날리며 메이저리그급인 50홈런왕 시대의 개막을 알린 것이다.

이처럼 장종훈과 이승엽은 90년대 처음과 끝을 장식한 과거와 현재의 홈런왕들이다. 또 나란히 고등학교 교복을 벗자마자 프로로 직행해 프로야구에 고졸 신화를 만들어낸 영웅들이다. 이들 신구 홈런왕들의 빅뱅으로 올 시즌 홈런왕 레이스는 초반부터 용광로처럼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92년 41홈런 이후 한번도 30홈런을 때리지 못하며 내리막을 걸었던 ‘휴화산’ 장종훈은 올 시즌 제2의 전성기를 예고하고 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그의 재기는 크게 기술적, 정신적 두 가지 측면에서 분석할만 하다.

지난해까지 장종훈은 바깥쪽 공에 치명적인 약점을 노출했다. 타격 때 왼쪽 어깨가 일찍 열리면서 상체가 앞으로 쏠려 중심 이동을 정상적으로 할 수 없었다. 당연히 바깥쪽 빠른 볼이나 변화구가 들어오면 엉덩이가 빠지며 방망이가 나가기 일쑤였고 그런 자세에서 힘이 실린 타구가 나올 리 만무했다. 하지만 장종훈은 애리조나 전지훈련에서 각고의 노력으로 이 점을 깨끗이 치유했다. 무엇보다 황병일 타격코치의 정성어린 지도가 큰 밑거름이었다. 지난 94년 장종훈이 팔꿈치 수술을 한 뒤 배트 스피드가 저하되자 배트를 잡는 손의 위치(파워 포지션)를 얼굴쪽에서 어깨쪽으로 후진시켜 성공적으로 장종훈에게 지금의 폼을 접목시킨 것도 황 코치의 작품이었다.

성공적으로 타격폼을 교정한 황 코치이지만, 그는 장종훈의 홈런포 부활의 원인을 무엇보다 정신적인 면에서 찾는다. 지난 시즌을 마친 뒤 3년간 7억원의 장기계약이 정신적인 안정을 가져와 야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는 것이다.

장종훈 스스로도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운 것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말한다. 통산 1안타밖에 못 때려냈던 삼성 임창용을 개막전 선발로 만나면서 ‘4타수 무안타도 좋다’고 욕심을 버렸다고 한다. 매일 집에 들어와서도 방망이를 잡고 씨름하는 자신을 보고 “집에까지 와서도 그렇게 열심히 방망이를 휘두르니까 정작 경기에서는 힘을 못 쓰는 것 아니에요”라는 핀잔을 주는 아내의 도움도 컸다. 아내의 타박 탓에 욕심을 비우고 생각을 단순화한 것이 타석에서 무서운 집중력으로 발휘되고 있다고 자가진단한다. “41개를 쳤던 92년보다 훨씬 좋아요. 초반부터 이렇게 잘 맞기는 35개를 쳤던 91년 이후 처음인 것 같아요”라고 스스로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장종훈. 무서운 그의 초반 페이스가 종반까지 이어질지 기대가 크다.

이승엽 산뜻한 출발… 용병들 다크호스

사진/올 시즌 홈런왕 경쟁의 다크호스로 불리는 토종·용병 대표선수. 지난해 홈런왕을 차지한 현대의 박경완(왼쪽)과 98년 홈런왕을 차지했던 두산의 우즈(오른쪽).
지난해 홈런왕을 놓쳤던 이승엽도 올 시즌을 단단히 벼르고 있다. 흔히 이종범을 야구 천재, 이승엽을 타격 천재라 부른다. 방망이만큼은 이승엽이 이종범을 능가한다는 얘기다. 그의 천재성은 올 시즌 다시 한번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지난해 겨울 이승엽은 몸쪽 빠른 볼과 변화구에 대한 약점을 치유하기 위해 외다리 타법을 포기하고 왼쪽 다리를 그라운드에 끌다시피 하는 폼으로 수정했다. 야구선수에게 타격폼 수정은 멀쩡한 일반인이 대수술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혹독한 시련이었다. 시범경기서 단 1개의 홈런도 쳐내지 못한 것이다. 결국 이승엽은 다시 원래의 외다리 타법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개막전서 데뷔 뒤 처음으로 첫 경기 아치를 그리며 이틀 연속 홈런으로 빅뱅의 물꼬를 텄다. 이승엽의 홈런은, 대수술에 실패한 일반인이 거뜬히 건강을 회복하는 기적과도 다름없다. 그의 천재성이 어느 정도인가를 고스란히 알려주는 대목이다.

원래의 폼으로 복귀하면서 마음의 평정을 되찾은 이승엽의 홈런포는 장종훈과 마찬가지로 예년보다 일찌감치 터졌다. 일찍 시작된 이승엽의 홈런포는 일본 프로야구 홈런왕 왕정치의 기록에 한개 모자란 54홈런을 치며 국민타자로 떠오른 99년의 리바이벌을 충분히 기대하게 하는 신호탄으로 보인다. 그러나 예년에도 그랬던 것처럼 올 시즌 홈런 레이스가 이승엽-장종훈, 신구 홈런왕의 각축으로 막을 내린다고 장담하기는 아직 이르다. 중원을 넘보는 만만찮은 홈런 제후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가장 위협적인 다크호스는 힘좋은 외국인 선수들, 수입 용병들이다. 그중에서도 98년 42홈런으로 사상 첫 수입 홈런왕에 오른 두산의 흑곰 우즈, 2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 롯데의 호세는 강력한 후보다. 이들은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잠실과 사직구장을 본거지로 쓰는 팀 소속이지만, 이들의 파워는 홈구장의 울타리 높이를 뛰어넘는다. 99년 이들이 보여준 홈런포는 이를 증명한다.

홈런왕 영역을 넘볼 수 있는 토종 대포도 만만찮다. 그 누구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두산에서 현대로 유니폼을 갈아입고 어느새 소년 장사에서 ‘청년 헤라클레스’로 성장한 심정수다. 잠실구장을 쓰는 서울팀 선수로는 처음으로 99년 31홈런을 치고 최근 2년 평균 30홈런으로 힘과 기량이 한층 성숙해진 심정수는 잠실보다 작은 수원구장의 이점을 최대한 살리며 홈런왕의 문을 힘차게 두드릴 것이다. 지난해 40 아치로 이만수에 이어 두 번째로 포수 홈런왕에 오른 박경완의 2연패 도전도 흥미롭기만 하다.

투수들 함량 떨어져 60홈런도 가능

우즈가 6년 만에 장종훈의 기록을 갈아치우며 홈런왕에 오른 98년 이후, 40개는 홈런왕의 하한선이 됐다. 바야흐로 홈런 양산 시대에 돌입한 셈이다. 좁고 넓어진 구장, 타자들의 테크닉과 파워의 비약적인 향상, 훨씬 반발력이 좋아진 볼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요인은 타고투저다. 우수한 투수들의 해외유출, 그에 반비례해 불과 몇년 전만 해도 2군에 있거나 진작에 옷을 벗었어야 할 함량미달 투수들의 1군 진입은 60홈런 시대의 도래를 앞당길 가능성을 높여준다. 그것은 바로 올 시즌 홈런왕 레이스의 순위를 가를 결정적인 변수이기도 하다. 국내 프로야구의 투수 부재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함량미달의 투수들을 상대로 누가 더 많은 홈런을 뺏어내느냐에 대망의 홈런왕 타이틀과 60홈런 주인공의 향방이 달려 있다.

구자겸/ 스포츠투데이 야구부 기자 jkkoo@sport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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