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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호르몬 축제, 웃음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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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07-1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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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자기공명영상 통해 '기쁨의 회로' 규명… 의학적 효과 높아 ‘웃음 물질’ 개발

(사진/웃음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밖으로 표출된다)
유일하게 사람에게만 나타나 ‘신의 축복’이라 불리기도 하는 웃음. 그에 대한 이론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오래된 생각 가운데 하나는 플라톤이 설파한 ‘절정의 기쁨’이라는 것. 칸트와 프로이트는 웃음이 정신적인 긴장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주며 사회관계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한다고 말했다. 상대방이 예측하기 어려운 돌연한 행동이나 언어를 통해 안에 갇혀 있는 에너지를 방출하면서 열린 대화를 이끌어 가기 때문이다. 인간과 달리 추측 가능한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동물들에게 웃음을 기대하긴 힘들다. 침팬지처럼 놀이를 하는 포유류들은 얼굴에 표정을 가지고 있지만 소리내어 웃지는 못한다. 심지어 생쥐들도 싸움을 벌이려는 상대방을 향해 친밀감의 표시로 소리를 내지만, 찍찍대는 걸 웃음이라 할 수는 없다.

아직까지 웃음의 메커니즘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신경과학의 발달로 뇌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것으로 추측되는 부분이 발견되었을 뿐이다. 과학자들은 왼쪽 이마엽(전두엽) 피질의 아래와 뇌중간 윗부분이 겹치는 영역이 웃음을 관할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이 부분은 이성적 판단을 주관하는 이마엽과 감정을 맡는 변역계가 만나는 곳으로 ‘A10영역’이라 불리며,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많은 신경세포들이 빼곡히 들어 있다. 이 부위에 손상을 입으면 웃음을 잃어버리고 창조적 활동마저도 제약받는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 의사들은 1998년 16살 소녀의 만성적인 간질적 발작의 원인을 찾기 위해 왼쪽 전두엽을 전기로 자극해 ‘웃음 지역’을 확인했다. 소녀는 전류가 약할 때는 미소만 지었을 뿐이었지만 전류가 높을 때는 갑작스레 흥겨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발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않게 웃음의 비밀에 관한 과학적 성과를 거둔 것이다.

질병을 막는 '방탄조끼'의 재질은 뭘까


전두엽을 표시한 그림)
이런 연구 성과에 힘입어 웃음은 신경과학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갑작스럽게 예상을 뒤집는 충격이 웃음보를 자극한다는 일반적인 가설을 과학적으로 해명하려는 것이다. 웃음을 유발하는 급소가 작용하게 되는 기전을 해명하는 게 1차적인 과제이다. 연구자들은 인위적으로 ‘기쁨의 젖’을 짜내는 방법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기쁨의 회로’가 작용하는 것은 총체적인 뇌 활동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기쁨의 회로를 검출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영국 애버딘대학의 심리학자 로이 도란 박사는 뇌 기능의 이미징을 얻기 위해 강력한 자장을 사용하는 기능자기공명영상(fMRI)을 이용해 정신활동에 관련된 뇌의 혈류 변화를 검출하고 있다. 외부의 신호가 신경을 자극한 뒤 수백 밀리초에 나타나는 혈액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것이다. 그는 웃음에 관련된 신경세포가 활동하는 전두엽 피질 부분이 fMRI에 밝게 표시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까지 신호들이 전달되는 과정까지 사진으로 확보하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혈액의 변화가 신경세포의 활동을 따라가지 못하기에 현재의 기술로 실험을 벌이기 힘든 탓이다. 신경세포 활동의 빠르기를 주파수로 나타내면 최대 1000Hz 정도, 1/1000초 정도의 빠르기로 활동하지만 혈액반응은 훨씬 더디게 이뤄진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농담을 듣는 동안의 뇌파를 기록하는 EEG 장치를 이용해 웃음에 따른 신경반응을 녹음, 웃음의 뇌파를 측정하고 있다.

웃음은 일종의 ‘체내 조깅’으로 유스트레스(Eustress:좋은 스트레스)이다. 운동으로 몸을 단련하는 것처럼 웃음으로 정신을 정화하는 것이다. 웃을 때는 얼굴에 있는 30여개의 근육이 움직인다. 게다가 몸 속 650개의 근육 가운데 230여개가 웃음에 개입한다. 웃음을 지으면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탁월한 운동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박장대소를 하면 신체 내부기관이 진동하면서 혈액순환이 잘 되며 근육의 긴장을 완화한다. 그 과정에서 순환기관을 청소하며 소화기관을 자극해 호흡과 소화를 돕기도 한다. 웃음만한 보약이 따로 없는 셈이다.

과학자들은 웃음이 면역력을 높인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미국 로마린다의대 리 버크 교수와 웨스틴뉴잉글랜드대 캐슬린 딜런 박사 등은 사람들이 코미디프로그램을 보고나면 우리 몸의 군대격인 백혈구와 면역글리불린은 많아지고, 면역을 억제하는 코르티졸과 에프네피린이 줄어드는 현상을 알아냈다. 면역체의 반응을 조직하는 데 도움을 주는 T임파구를 활성화시키고 ‘자연살해’(Natural Killer) 세포의 활동 영역을 넓혀 악성물질이 자리잡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또 웃는 동안 뇌에서 엔돌핀과 엔케팔린 등의 물질이 나와 고통을 줄이고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신경호르몬인 엔도르핀은 통증을 줄이면서 신경활동을 통제해 근심과 걱정을 덜어준다.

(사진/유머가 많은 사람은 지적으로도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사진은 텔레비젼의 개그 프로그램 모습)
최근 들어 웃음은 의학적으로도 효과를 인정받고 있다. 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 고대관 교수는 노인환자에게 웃음의 치료효과가 두드러진다며 이렇게 말한다. “치매환자 병동에서는 환자들간의 상호작용이나 치료팀과의 감정교류를 위해 웃음과 유머가 필수적이다. 뿐만 아니라 청소년 환자에게는 의사소통의 중요한 촉매제 구실을 하며 불치병으로 죽음에 직면한 환자에게는 불안을 떨치고 당당한 삶의 태도를 갖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실컷 웃고난 다음엔 몸이 풀리는 기분을 느끼게 마련이다. 긴장감이 완화되면서 분노와 공격성을 씻어내는 과정이다. 당연히 웃음은 상대방에게 호감을 주게 되고, 서로의 마음을 이어주는 통로 구실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낙천가는 성취감을 다른 사람보다 많이 맛보게 된다. 미국 펜실베니아대 마틴 셀리즈먼 교수는 웃음이 많은 학생이 그렇지 못한 학생에 비해 학업성적이 더 높고, 스포츠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유머감각이 뛰어난 사람들은 각종 스트레스를 긍정적인 태도로 극복하는 탓이다.

그렇다면 인위적으로 웃음을 유발해 건강을 유지하고 학습효과를 높일 수는 없는 것일까. 이에 대한 연구는 18세기 말부터 이루어졌다. 1799년 험프리 더베이는 이산화질소가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해주는 ‘웃음 기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발견으로 휴양지에서 이산화질소를 특별한 방향제로 이용하기도 했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이산화질소는 중추 신경계에 작용해 의식을 억제하고 통증을 잊게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웃음과 고통이 한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은, 프리드리히 니체의 “세상에서 가장 심하게 고통받는 동물이 웃음을 발명했다”는 경구를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위적 웃음의 효과는 입증되지 않아

이런 사실에 따라 웃음을 유발하는 물질을 개발해 의학적으로 활용하는 연구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 효과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이다. 미국 UC샌프란시스코의 폴에크먼 박사는 “사람이 특정한 감정표현을 흉내내면 몸도 거기에 따른 생리적 유형을 띤다”면서 일부러 웃는 것도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웃음의 건강학자인 정형의과 전문의 노만택 박사는 억지 웃음은 오히려 고통을 강요할 뿐이라고 말한다. “웃음은 뇌를 고루 다스려야 균형과 조화를 유지한다. 간지럼처럼 뇌를 강제적으로 자극해 웃음을 유발하는 것은 고통일 뿐이다.”

김수병 기자soo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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