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봄이다. 양명한 햇살이 천지를 감싼다. 바야흐로 양기가 발기하고 탱천하는 계절이 됐다. 그런데 몸은? 무겁고 축축 처진다. 기운이 없다. 이 와중에 허리는 속을 썩인다. 옆구리에는 손잡이가 생기고 팔뚝에는 날개가 붙었다. 그저 한 겨울, 먹던 대로 먹고 방바닥에 납작 엎드려 지낸 죄밖에 없는데, 체중계가 미쳤나 옷이 돌았나. 나만 빼고 세상이 음모라도 꾸민 건가?

정답은 ①봄이다. 모든 것에는 적당한 때가 있다. 낮이 길어지는 입춘 뒤가 살빼기에는 적기다. 몸이 지방을 붙들어매는 겨울에는 살빼기가 쉽지 않다. 현상 유지도 다행이다. 나잇살이 느는 것과 같은 이치다. 기초대사량이 줄어드니, 똑같은 양을 먹어도 젊은 시절과 같은 몸이 유지되지 않는다. 봄은 만물이 승하고 대사가 활발해지는 때다. 계절 가운데 청소년기다. 몸에 쌓인 지방 소비도 훨씬 수월하게 할수 있다. 각자 10kg 감량에 돈 걸고나선 부부 올해 52살의 정동건 한국교육문화재단 이사장은 1년 전인 2007년 2월, 곶감 등으로 주전부리를 하다가 불현듯 허리 둘레를 재보고 충격을 받았다. 36인치, 체중은 81kg. 위로 셋을 잃고 얻은 아들이라 각별히 거둬먹인 어머니 품에서 자란 터에, 인간성 좋게 사회생활 한다며 저녁 모임과 술자리를 빼놓지 않고 섭렵한 결과였다. 결혼 당시 28인치, 68kg에서 한참 위로 체급조정이 돼 있었다. 하긴 언젠가부터 발톱 깎기가 어렵고 구두끈 매기가 벅찼지. 부창부수라더니 결혼 전 몸무게 54kg에 허리둘레 28인치였던 아내는 아이 둘을 낳고 야금야금 불어나 32인치에 66kg으로 바뀌어 있었다. 동갑내기 부부는 비장의 각오를 했다. 10kg 감량에 100만원 내기를 걸었다. 시중에 나오는 온갖 ‘사람 잡고 돈 먹는’ 다이어트 비법에는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실패했다는 사람 수도 없이 봐왔기 때문이다. 지방만 녹여준다는 약물 효과는 뻔뻔한 거짓말이다. 지방은 그대로 남은 채 수분과 근육만 줄어 쪼글쪼글해진 정도는 약과이고, 황천길 갈 뻔했다는 사례도 적지 않다. 첫 출발이 중요했다. 우선 주전부리를 끊었다. 세끼 밥 외에는 생수로 배를 채웠다. 다행히 곁에는 아내가 있었다. 아내가 과일 한 조각 집으려면 남편이 말렸고 남편이 약과 반 조각에 침을 흘리면 아내가 눈을 흘겼다. 유혹을 뿌리치고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그동안 무심코 먹는 간식 양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더불어 아침 일찍 일어나 뒷산에 올랐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몸무게는 요지부동이었다. 타고난 성격이 모질지 못한 터라, 포기할까 싶었다. 하지만 장동건은 못 돼도 아내와의 약속은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심한 복부비만으로 당뇨와 고혈압에 팔다리 마비 증상까지 온 어머니를 떠올렸다. 절식을 결심했다. 다음날부터 식사량을 절반으로 줄였다. 대신 밥상은 풍성하게 차렸다. 푸른 잎 채소와 아삭아삭 씹어먹을 뿌리채소, 칼로리 걱정 없는 양배추와 미역, 풍미를 돋우는 토마토와 두부 등을 올렸다. 먹느냐 마느냐 ‘시험에 들게 하는’ 자리는 알아서 피했다. 텔레비전을 보는 대신 밖에 나가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냉장고에 있는 각종 다디단 것들은 싹 비웠다. 주말에는 부부가 인라인스케이트를 배우고 한강에 나가 자전거도 탔다. 결과는? 5개월 뒤 몸무게는 9~10kg이 줄었다. 아내는 6~7kg이 줄었다. 1년이 지나자 12kg이 줄었다. 옷맵시 좋은 정상 체중의 아저씨로 변신에 성공했다. 유혹하는 친구와 상황을 멀리하라 정 이사장은 “술이나 고기도 불가피하게 먹었지만, 양을 절제했다”며 “힘들게 뺐다면 남들에게 권하지 않을 텐데 웃으면서 뺐기 때문에 꼭 권한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말 동창모임에서 100kg 가까운 한 친구를 붙잡고 “너 그러다 일찍 죽는다. 내가 도와주겠다”고 설득하기도 했다. 비결은 세 가지이다. ①살을 저주하며 나를 망치는 기름덩어리로 볼 게 아니라 내 잘못된 습관 때문에 고생해온 평생의 동지로 볼 것 ②몸이 진짜로 원하는 좋은 것들을 골라 적게 먹을 것 ③땀을 내며 운동 하는 것. 그래서 살빼기가 아니라 살풀이라고도 부른다. 지금도 음식의 유혹은 강하지만, 그리 괴롭지는 않다고 한다. 몸과 마음을 ‘리셋’하는 데 성공한 덕이다. 정 이사장은 살빼기는 ‘혼자 기 쓰고 하는 싸움’이 아니라고 말한다. 뜻을 같이하는 동지가 있으면 좋지만, 없다면 가족·친구·동료들에게 널리 알려 ‘지지고무찬양’ 받으라고 충고했다. 술자리에 끌고 가서 “오늘까지만 먹고 내일부터 줄여”라거나 “너 지금이 딱 보기 좋아” 식의 말로 ‘전선을 교란’ 하는 이들이 주변에 많다. 살빼기의 결심을 이해하고 도와주는 이들이 진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니, 살빼기는 관계도 ‘리셋’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정 이사장은 귀띔했다. 미국의학협회지에 실린 한 연구는 흥미로운 결과를 보고하고 있다. 피험자 그룹을 둘로 나눠, 첫째 그룹에는 통곡물, 채소, 과일, 견과류, 올리브 등 전형적인 지중해 식단의 음식을 정해줬다. 두 번째 그룹에는 특정 음식 대신 하루에 섭취할 지방, 탄수화물, 단백질 등의 양을 알려주었다. 첫째 그룹이 정해진 음식을 편히 먹는 동안 두 번째 그룹은 영양을 따져가며 음식을 장만해 먹었다. 두 그룹 모두 섭취량에 대해서는 특별한 지시를 받지 않았으니, 저마다 먹고 싶은 만큼 먹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첫째 그룹이 더 적은 열량을 섭취했고 체중도 줄었다. 자연스럽게 포만감을 유지해주는 먹을거리를 먹은 결과 몸이 자동으로 적절한 몸무게를 유지하는 쪽으로 작동한 것이다. 지나친 소식보다는 좋은 식습관이 몸에 배게 하는 게 중요하다. 초콜릿 당길 땐 무, 떡볶이 대신 차 라마단 기간 해가 진 뒤에만 음식을 먹는 이슬람 교도들의 체중은 줄지 않는다. 하루권장량을 한 끼에 먹은 사람은 세 끼에 나눠 먹은 사람보다 몸무게가 쉽게 는다. 무작정 굶으면 몸은 기아 모드(starvation mode)를 작동시켜 지방을 축적하는 쪽으로 바뀐다. 급격한 체중 감량 뒤 부닥치는 요요현상은 자연스러운 보호본능이다. 그러니 기를 쓰고 살과 싸우려 들지 말고 내 몸이 살과 싸워 이길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일단 사소한 생활습관부터 바꾼다. 우울해서 초콜릿이 당길 때는 물기 많은 무를 먹고, 열받아 매운 것을 먹고 싶으면 떡볶이 대신 진정효과가 있는 차를 마신다. 친구와 만나면 피자집이나 술집에 자리를 잡지 말고 낮이든 밤이든 걷자. 살빼기를 위한 단식은 결코 권장할 일이 아니다. 운동을 안 하고 먹는 것만 줄이면 지방이 1만큼 빠질 때 근육은 무려 9가 빠진다. 한마디로 ‘제 근육 깎아먹기’이다. 근육이 왕창 없어졌으니 당연히 무기력하고, 요요현상이 부채질된다. 살빼기는 단순히 몸무게를 줄이는 게 아니라, 지방을 줄이고 근육은 키우는 과정이다. 에너지 소비는 오로지 근육만이 하기 때문이다. 입맛이 바뀌고 몸속에 쌓인 기름을 태워야, 그 다음에 빠진다. 몸이 이렇게 ‘리셋’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경험자들은 ‘작심 1년’을 강조한다. 앞의 6개월은 감량 하고 뒤의 6개월은 유지하는 기간이다. 혼자 끙끙 대기 보다는 자연의 기운을 얻는 게 좋다. 만물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입춘부터 입추까지 6개월, 봄부터 여름까지가 최적기다. 운동을 그만둔 뒤 몇 달 만에 ‘뚱땡이’가 된 전직 운동선수들이 간혹 있다. 먹던 습관은 그대로인데 운동량은 팍 줄었으니 그대로 살이 된 것이다. 우리 몸은 길들여진 대로 반응한다. 정직하다. 1960년대부터 미국인의 텔레비전 평균 시청 시간이 증가하면서 미국인의 평균 허리 사이즈도 같은 비율로 증가했다. 그러나 지나친 운동은 관절에 무리를 주고 수명을 줄인다. 철을 공기 중에 두면 녹스는 것과 마찬가지로 몸도 산소를 지나치게 사용하면 산화부식돼 쉽게 노화한다. 먼저 적게 먹어서 노폐물을 줄이고 걷거나 삼림욕을 하는 게 좋다. 그래야 몸에 피로물질이 쌓이지 않는다. 걷기나 산책을 생활습관으로 만든 다음 어떤 운동이든 골라 내 몸이 가볍고 기쁘고 후련해질 때까지 규칙적으로 땀을 흘린다. 시간을 내는 것이 어렵다면 등산, 걷기, 춤 등을 주말에 몰아서 할 수도 있는데,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정기적으로 하는 게 중요하다. 삽겹살 회식 한번에 맛동산이 웬말 절식과 운동을 열심히 해왔는데, 어젯밤 삽겹살 회식으로 망가졌다면? 에라 모르겠다 심정으로 오늘 동료 책상에 놓인 맛동산을 집어먹고 있지는 않는가. 살빼기의 지름길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하루 저녁 양껏 먹고 마셨다면 다음날 분명 체중계에 올라가서 ‘악’ 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꾸준히 절식과 운동을 하면 금방 자기 호흡을 찾을 수 있다. 우리 몸을 믿자. 살아가는데 필요한 에너지는 생각한 것보다 훨씬 적다.” 정동건 이사장의 신신당부다. 참고한 책: <몸을 살리는 다이어트 여행>(이프), <내 몸 다이어트 설명서>(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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