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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절실한 그리움으로 숭례문 성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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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2-28 00:00 수정 : 2008-12-15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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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숭례문 중수 때부터 참여했던 신영훈 한옥문화원장 “나라의 정신적 기반을 세우라”

▣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20세기 초부터 지금껏 이 땅 사람들은 눈으로만 문화재를 보려 했습니다. 이제는 정말 마음으로 보는 지혜과 식견을 길러야 합니다. 우리 역사의 큰 어른인 숭례문(남대문)은 스스로 몸을 불살라 그 절박한 교훈을 가르쳐준 것입니다.”

국내 전통 한옥 건축 분야에서 첫손 꼽히는 원로 전문가인 신영훈(73) 한옥문화원장은 차분하고 느린 말투로 말했다. 숭례문이 불길에 사라졌을 때 다른 고건축 전문가들이 참담한 심정과 자괴감을 토해낸 데 비하면 반응은 다분히 덤덤하다. 국립박물관 등에서 일한 신 원장은 50년 가까이 숭례문을 비롯해 석굴암, 수원성, 불국사 등 나라 안 곳곳 전통 건축물의 보수, 복원, 신축 등을 감독하거나 관여했다. 전국 곳곳의 한옥을 답사해 <한옥의 향기> <우리 한옥> 등 수십 권의 저술을 내고, 강의도 병행하면서 이론과 실무 양면에서 인정받는 몇 안 되는 한옥의 권위자가 됐다.

서울 북촌 한옥문화원 사랑방에서 만난 신영훈 원장. “숭례문 화재는 우리 것보다 남의 것부터 앞세워온 우리의 부박한 지난날을 성찰하고 나라의 정신세계를 근본부터 다시 세우는 계기여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특히 숭례문은 1963년 중수 당시 국립박물관의 햇병아리 보조원으로 실측, 자재 조달 등에 참여하면서, “고건축 인생을 열어젖히게 했던 시발점”이 된 곳이다. 2월19일 오전 서울 북촌인 가회동 언덕의 한옥문화원 양옥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숭례문 중수 시절에 대한 회상과 지금 심경을 뒤섞어가면서 차분하게 단상들을 풀어냈다. 햇살 가득한 한옥풍 사랑방에서 이 대가는 서울시에서 낸 두툼한 숭례문 실측도면집을 펴들고 “올 것이 왔다는 생각부터 했다”고 운을 뗐다.

“당국자들 복원 기간·비용만 말해 우울”

“숭례문 타던 날, 독일 브레멘의 한 대학에 있었어요. 한옥 건축 관련 행사를 협의하던 중이었죠. 저와 함께 간 문화원 사람들한테 현지 사람들이 ‘당신 나라 큰 문이 불에 탔는데 괜찮으냐’고 묻더랍니다. 그래서 숭례문이 불탄 것을 알았지요. 쓰라린 상실감이 밀려왔지만,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더군요. 따지고 보면, 문화재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관점들을 한꺼번에 바꿀 수 있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거지요.”

귀국 뒤인 2월17일 불탄 숭례문 현장으로 달려갔다. 40여 년 전 중수 과정에서 손수 부재를 매만졌고, 지날 때마다 ‘별일 없습니까’라며 항상 마음으로 문안했던 큰 어른 같은 건물이 시커먼 등걸더미로 변한 모습에 가슴이 떨렸다. “복원 기간과 비용만 입에 주워올리는 당국자들 말을 들으니, 막막하고 걱정이 되고 우울해”졌지만, 숭례문 뒤 남산쪽 언덕배기에 몰려든 ‘추도 인파’를 보고는 희망을 퍼뜩 느끼게 되었노라고 했다. 얼굴이 달아오른 신 원장은 쉬지 않고 말했다.

“방화범의 동기가 토지보상에 대한 불만이었다면서요. 그것도 따지고 보면, 우리가 스스로 벌인 업에 대한 대가가 아닌가 싶어요. 과거의 흔적과 생각들, 옛 사람들이 전하는 미덕과 지혜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근대화 개발을 강행해온 위정자들의 과오에 대한 경종으로 생각합니다. 다행히도 국민들은 사라진 옛것에 대한 느낌과 생각들이 말라버리지 않았더군요. 그리움이 있었어요. 그 절실한 그리움을 안고서 숭례문을 성찰해야 합니다.”

세월따라 뒤바뀐 건축 방식 연구부터

그가 생각하는 성찰의 방향은 무엇일까. 우선 세월에 따라 다기하게 뒤바뀐 숭례문의 부재의 척도, 관리·조립 방식 등에 대한 포괄적인 연구부터 제대로 하자는 것이고, 나라의 정신적 기반에 대해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진짜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이 둘째였다.

“60년대 중수할 때 보니까 누각의 나무 부재들이 임진왜란 이전 것도 있고 이후 것도 있고, 다 만들어진 시점이 달랐어요. 다듬거나 치수를 잰 방식도 다르지요. 한마디로 조선시대 전반의 건축 지혜가 집약된 건축적 기록물이 숭례문입니다. 61~63년 중수를 맡은 장인들도 대대로 전해진 전통 공구를 썼고, 척도도 옛날 것을 썼어요. 한옥 자체가 시대별·지역별·장인별로 개성이 뚜렷한 건물이어서 완벽한 부재의 복원은 불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건축사적 맥락으로 그런 다양한 변화들을 기록·정리하고 숭례문 중건(복원은 일본식 조어라며 매우 싫어했다) 때 부재들의 선택과 조립 등에 이런 연구 결과들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는 사이사이 숭례문 중수 당시의 추억도 곁들였다. “그때 중수에는 전설적인 명인들이 모두 참가했습니다. 그들이 숭례문에 모인 것을 시작으로 석굴암, 불국사, 수원성 등의 중수 사업이 이어졌습니다. 대목장 이광규 선생, 기와 잇는 기선길 선생, 돌 옮기는 드잡이의 명인 김천석 선생, 목수 방 노인 등…. 모두 돌아가셨지만, 보수에 연연하지 않는 그들의 놀라운 열정은 지금은 범접도 못할 것입니다. 놀라운 정신력과 정성으로 가파른 지붕에서 기와를 잇고 공포를 짜고, 토벽을 쌓고, 석축의 돌을 들어올렸습니다. 이광규 선생, 기선길 선생 등에게 욕먹어가면서 치수 재고 부재를 판별하고, 끼우고 나르고 다듬질하는 안목을 배웠습니다.”

물리적 기술만 앞세운 복원은 금방 바닥을 드러낸다고 그는 힘주어 말했다. 건물 지었던 사람들의 마음, 정신을 되살리려는 노력부터 하라고 충고했다. 고건축 유산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을 보는 마음 자세이며, 그것을 이용했던 옛사람들의 심성과 태도, 습관 등을 이해하고 느끼고 지금 의식주에 용해시키려는 노력이라고 했다. <조선왕조실록>을 다시 읽으며 고건축사를 새로 쓸 준비를 하고 있다는 신 원장은 이렇게 말을 맺었다. “숭례문 중건은 나라의 정신적 기반을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우리 삶의 방식을 생각하지 않고, 공정이나 절차로만 이해한다면 다른 문화재의 살신성인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옥의 향기따라 전시장으로

문화재 사진가 고 김대벽의 추모 사진전

숭례문을 화마로 잃어버린 참에 작고한 문화재 사진가 고 김대벽(1929~2006)의 추모 사진전이 차려졌다. 2월21일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2층에서 막을 올린 ‘백안 김대벽 추모사진전-한옥의 향기’전은 얄궂은 우연 같다. 한옥 사진으로 평판 높았던 고인은 수십 년 전부터 뛰어난 숭례문 기록 사진들을 숱하게 찍었고, 상당수는 문의 복원 과정에서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숭례문은 전시에 나오지 않고, 곳곳 양반가의 한옥 살림집과 종묘, 경복궁, 창덕궁 등의 왕실 건축물 등 37점만 선보인다. 숭례문 사진은 엽서로 나눠줄 생각이라고 한다.

경북 영천 매산종택 전경.

함북 출신의 실향민인 김대벽은 평생 한옥과 토속신앙 대상인 바위, 탈 따위를 앵글에 담아왔다. 예술가연하지 않고, 한국인의 정서와 내면을 반영한 눈높이 기록 사진가의 소명을 강조해왔던 그다. 신영훈 한옥문화원장과 같이 나라 안 곳곳을 돌며 전통 건축물의 단면들을 담아낸 ‘역사기행 시리즈’도 10권을 냈다. 기획을 맡은 원로사진가 주명덕씨(그 또한 한옥을 즐겨 찍은 장인이다)는 “사진가는 사진으로만 말해야 한다”며 엄청난 분량의 유작 중에서 반가 한옥집과 왕실건축만으로 출품작을 제한했다. 부채꼴 전시 공간에서 찍은 지역별로 액자틀 크기를 올망졸망하게 맞춰가면서 한옥 작품들만의 시각적 인상을 부각시켰다. 덕분에 옛사람들의 의식과 정서를 머금은 김대벽 사진의 독특한 매력이 살아났다. 출품작들은 많지 않으나, 고인의 웅숭깊은 눈으로만 포착되고 확장되는 한옥 공간들을 골라보고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사당의 지붕과 일직선으로 잇닿는 뒤켠 야산의 정수리까지 앵글에 싸넣은 경북 구미 해평 최씨 댁, 임금이 행차하는 보도 위에서 임금의 눈으로 조망한 종묘 안의 드넓은 마당, 히죽 웃고 있는 궁궐 월대의 해학적 사자상, 길고 장엄한 행랑채를 자랑하는 전북 익산 김해 김씨 파종댁, 깬 기와쪽으로 빚어낸 대구 달성 광거당의 아름다운 꽃담, 유령 같은 안개가 스멀스멀 언덕을 휘감는 광주 환벽당 뒤편의 낮은 굴뚝, 불끈한 알통 근육을 보는 듯한 경남 거창 구연서원 문루의 뒤틀린 통나무 기둥 등등…. 사진 속 한옥 풍경은 ‘잊혀져가는 절규, 비수와도 같은 절규’(이채주 시인의 헌사)로 남는다. 전시는 김대벽 기념사업회와 한옥문화원이 주최, 주관했다. 3월5일까지 열린다(02-741-7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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