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정수 ‘한글날 국경일 제정 범국민 추진위’본부장
한글은 우리 민족 최대의 문화유산… 문화 기리는 국경일이 하나도 없다는 건 우리 민족의 수치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보통 기념일로 바뀐 지 올해로 꼭 10년이 됐다. 한글날은 한글 반포 500주년이었던 지난 1946년 민족 최고의 문화유산을 기리는 날로 공휴일로 지정됐다. 그러나 노태우 정권 시절인 91년 공휴일에서 제외된 뒤 평범한 기념일로만 이어져왔다. 그리고 10년이 흐른 지금 국어학계를 중심으로 한글날을 보통 기념일이 아닌 국경일로 지정하자는 주장이 강력하게 일고 있다.
지난 2월5일 국어학자와 사회명사들이 주축이 된 ‘한글날 국경일 제정 범국민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가 결성되면서 이런 움직임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추진위는 현재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한글날을 국경일로 제정하는 데 동의하는 서명을 받으며 이달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국경일로 제정되도록 운동에 나섰다.
강영훈 전 국무총리, 유창순 전 국무총리, 서영훈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 사회저명인사 100여명이 참가한 추진위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인물은 원로 국어학자 서정수(68) 한양대 명예교수다. 추진위원회 본부장인 서씨는 추진위원장 전택부씨와 함께 노구를 이끌고 요즘 각계 인사들을 만나 이 문제를 널리 알리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정년퇴직한 뒤 다른 명예교수들이 학문인생을 정리하는 시점에, 서 교수는 요즘 되레 바빠진 것이다. 서 교수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지만 대학졸업 10년 뒤에 뒤늦게 대학원에서 국어학을 공부하기 시작해 30여년을 국어연구에 매진해온 국어학자로 <국어문법> 등의 저서로 학술원상을 받기도 했다. 한동안 잊혀졌던 한글날 문제가 요즘 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는지 서 교수를 만나 들어봤다.
한글날 국경일 제정 추진작업은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지난해 연말 국회의원 34명이 한글날 국경일 지정을 위한 법률안을 발의해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에 ‘국경일에 관한 법률 중 개정법률안’을 상정했습니다. 이 법률안은 현재 계류중인데 이달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국회의원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 통과되면 올해부터 한글날이 국경일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100여명의 국회의원이 지지서명을 한 상태여서 과반수인 137석에는 아직 많이 모자랍니다. 통과 가능성은 반반으로 보고 있습니다. 단순히 공휴일이 아닌 국경일이 돼야 한다는 것인데 그 의미는 어떤 것입니까.
한글날은 91년 이후에도 계속 존재해왔습니다. 단지 공휴일이 아니었던 겁니다. 저희는 한글날이 공휴일이 아니라 국경일로 지정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경일은 삼일절과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등 모두 4가지가 있습니다. 대부분 정치적인 기념일이고 문화에 관한 국경일은 하루도 없습니다. 사실 광복절과 제헌절 같은 날은 앞으로 100년, 200년 뒤에도 지금처럼 국경일로서의 의미가 유지될지 의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문화민족이라고 합니다. 우리 민족문화의 최고 유산은 단연 한글입니다. 한글날을 우리 민족문화의 의미를 되새기는 날로 지정하자는 겁니다. 외국의 경우 문화 관련 국경일이 대부분 하루 정도는 있습니다. 일본만 해도 11월3일 메이지절(明治節)을 계승한 ‘문화의 날’이라는 ‘국민의 축일’, 즉 국경일이 있습니다. 문화증진을 국가적으로 추진한다는 취지로 지난 48년 제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날 문화훈장 수여나 예술제 등의 행사가 집중적으로 펼쳐집니다. 우리도 한글날을 국경일로 해서 문화와 학술의 잔치날로 삼아 민족문화를 기리고 계승하는 마음가짐을 갖자는 겁니다.
91년 당시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제외됐을 때 국어학계가 제대로 이를 막지 못한 탓도 있지 않을까요.
91년은 문화부가 처음으로 출범한 해였습니다. 바로 그해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제외된 것은 지금 생각해도 참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당시 우리나라가 공휴일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공휴일이 몰려 있는 10월에서 한글날과 국군의 날을 없앴습니다. 물론 당시 국어국문학계가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지만, 사실 이 문제가 명확한 이해당사자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비판이 제기되지 못했습니다. 많은 지식인들도 이 점에 대해 문제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의견을 집약할 구심체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해부터 몇몇 국회의원들과 한글 관련 단체들이 함께 이 일을 추진하면서 이번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 겁니다.
사실 한글날의 존재의미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국어학자로서 한글날이 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민족주의적, 국수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학문적인 시각으로 한글을 연구한 외국의 언어학자들도 한결같이 한글만큼 우수한 글자는 없다고 합니다. 미국 시카고대학의 세계적 언어학자 매콜리 교수는 한글의 우수성에 반해 외국인인데도 20년째 한글날이면 한국음식을 차려놓고 한글날을 축하해오고 있습니다. 우리와는 아무 연고도 없는 외국학자가 이런다는 점은 정말 놀라운 일이고, 동시에 한글의 위대함을 새삼 실감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영국의 문자학자 샘슨 교수 같은 이는 “한글이 인류의 가장 위대한 지적성취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감탄해 마지않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외국에서는 한글에 대해 인정하는데 정작 우리는 우리 글자의 위대함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무지하고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들을 깨우치기 위해서도 한글날을 하루빨리 국경일로 제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국경일로 제정하는 데 걸림돌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이번 회기에 법안이 많이 밀려 있는 점이 우선적으로 어려움이지만, 그보다는 지난 91년 당시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제외하도록 했던 얄팍한 경제논리입니다. 우리나라에 쉬는 날이 너무 많아 경제활동에 지장이 있다는 주장인데, 문화를 경제의 잣대로 보는 불합리한 시각에다 논거 자체도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쉬는 날은 한해 65∼67일 정도여서 인도와 아르헨티나의 122일 등에 비하면 훨씬 적고, 주 5일 근무제가 시행된다고 해도 114∼117일 정도가 되는데 일본의 124일에 비해서도 훨씬 적고 주요 선진국들에 비해서는 그래도 노는 날이 적은 편입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을 떠나 문화에 대한 천박한 인식 때문에 이런 논리도 나오는 것으로 봅니다. 다른 공휴일을 하나 줄이고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드는 등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경제논리로 문화를 막는다는 것 자체가 비논리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경제의 목적이 과연 무엇입니까. 문화를 창조하고 향유하는 것에 대해 소홀히 한다면 돈은 왜 벌어야 하겠습니까. 그저 먹고 생존하기 위해 산다는 것과 같은 말일 겁니다. 한글은 단순히 글자가 아닙니다. 우리 문화를 창조하고 발전시켜 계승하는 기본 요소입니다. 단순히 한글날은 노는 날이 아니라 그날을 계기로 문화를 돌아보는 문화의 날로 하자는 것입니다. 문화에 민족의 장래가 있습니다. 어렵다고 무시하면 장래가 없는 민족입니다. 일제시대 그 어려운 시절에도 한글의 보전, 발전을 위해 선각자들이 그렇게 고초를 겪었는데 지금 경제논리로 밀린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입니다. 이런 논란을 계기로 우리 문화가 어디까지 왔고 우리의 수준이 어떤지 되짚어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문화를 지키는 사람들의 힘이 너무나 약합니다. 이 문제도 과연 문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점검하는 계기가 될 겁니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한글날 국경일 제정 추진작업은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지난해 연말 국회의원 34명이 한글날 국경일 지정을 위한 법률안을 발의해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에 ‘국경일에 관한 법률 중 개정법률안’을 상정했습니다. 이 법률안은 현재 계류중인데 이달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국회의원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 통과되면 올해부터 한글날이 국경일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100여명의 국회의원이 지지서명을 한 상태여서 과반수인 137석에는 아직 많이 모자랍니다. 통과 가능성은 반반으로 보고 있습니다. 단순히 공휴일이 아닌 국경일이 돼야 한다는 것인데 그 의미는 어떤 것입니까.

사진/1946년 덕수궁에서 열린 한글반포 500주년 기념식장 모습. 한글날은 이날 국가 공휴일로 지정됐다. 사진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김윤경, 세 번째가 외솔 최현배 선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