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상태의 뇌파로 기억 활성화 모습 증명… 프로이트의 '억압된 욕망'설 과학적으로 반박
인생의 3분의 1은 잠으로 채워지고, 잠자는 시간의 2할은 꿈을 꾼다. 그 꿈은 내면의 심오한 창조적 근원에서 생명체에 전하는 ‘계시’일까, 아니면 깨어 있는 시간대의 생활이 남긴 사고와 이미지들이 뒤죽박죽된 ‘정신의 찌꺼기’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꿈의 실체는 무엇일까. 프로이트는 무의식 속에 담긴 억압된 욕망과 관능을 들려주려고 무의식 스스로 고안한 메시지가 꿈이라고 믿었다. 그는 꿈이 잠재된 욕망의 표현이라고 여겼지만 과학적인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고대 희랍에서는 치료신 에스쿨라피우스를 모신 신전에서 꿈을 꾸게 하고 병의 진단과 처방을 내리기도 했다. 물론 치료효과는 믿을 만한 게 아니었고 아폴로나 제우스 신전에서 신탁을 받아 이루어진 일이었을 뿐이다.
정신의 찌꺼기가 아니라 기억의 장치
아직까지 꿈에 대한 명확한 과학적 이해가 불분명한 상태이다. 뇌의 비밀을 규명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의식의 영역을 설명하는 꿈에 관한 모델을 찾는다는 건 어쩌면 허황된 바람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과학의 잣대를 들이대기 힘든 꿈의 가치를 부정하는 쪽이 우세했던 게 사실이다. 무의식의 영역에 똬리를 틀고 정신분석학의 영역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꿈의 내용이 대부분 일상생활에 관련된 것임에도 이에 관해 과학적 접근의 통로가 막혀 있던 탓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신경생물학자들이 과학적 실험을 통해 꿈의 신비를 차츰 벗겨내고 있다. 꿈이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을 무의식 속에서 반복·기억시켜주는 소중한 장치라는 사실도 과학적으로 규명되었다.
일부 과학자들은 꿈을 꾸는 건 뇌가 선택적으로 작동한 결과라고 믿는다. 깨어 있는 시간대에 자신을 향해 퍼붓어지는 세세한 목록들의 덩어리를 철저히 검사하여 저장하고 쓸모없는 정보는 폐기·처분한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은 사실 대부분 낮에 그때그때 원치 않는 정보를 버리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래도 남아 있는 정보를 잠자는 시간대에 통합 정리한다고 여긴다. 예컨대 컴퓨터 작업을 할 때 새로 입력된 데이터를 고려해 여타 파일과 프로그램을 수정 갱신해 쓸 데 없는 항목을 삭제하거나 다른 드라이버에 저장하는 식이다. 꿈은 내다버린 내용물들의 조각들이 잠자는 의식에 침투해 의식을 엉망으로 만드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꿈은 혼란스럽고 쓸모없는 이미지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정말로 꿈의 내용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 꿈꾸기의 신경·생리적인 측면만 생각한다면 꿈에 대한 찌꺼기 이론은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꿈의 내용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꿈이 자아에 관한 비밀스러운 역사에 놀랄 만큼의 일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꿈은 정신과 육체 건강에 매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하며 문제 해결에도 커다란 도움을 준다는 사실이 밝혀져 꿈을 이용한 정신치료가 널리 이뤄지고 있다. 언뜻 제멋대로인 것처럼 보이는 ‘개꿈’도 전문가의 세세한 분석과정을 거치면 꿈을 꾼 사람의 환경에 관련된 풍부한 의미를 풀어내게 마련이다.
이런 꿈이 무의식의 영역을 벗어나 과학적 해석의 테두리에 들어온 것은 1953년에 미국 생리학자 클라이크먼과 그의 제자 애서린스키가 꿈꿀 때의 신체 변화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수면 실험실’에서 잠든 아기의 눈동자가 짧은 시간 눈꺼풀 속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걸 목격한 뒤 어른들에서도 실험을 벌여 같은 현상을 목격했다. 이것이 바로 속파(REM: Rapid Eye Movement) 수면이다. 꿈의 80%가 바로 이 REM 수면 단계에서 이루어진다. 잠자는 동안 REM 수면과 비REM 수면(서파수면 등)이 교대로 나타난다. 젖먹이에서는 REM 수면이 절반을 차지하고 어른에서는 약 2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REM 수면 단계에서는 꿈을 많이 꾸며 두뇌가 활발히 활동한다. 이때 뇌파 활동을 기록하면 안구운동 시간대와 일치한다. 안구운동과 요동치는 뇌파 사이에 일정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REM 수면 상태에서 눈알을 굴리는 이유는 뚜렷하지 않다.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생리학자 데이비드 모리스는 REM 수면이 각막에 산소를 공급하기 위한 평범한 목적에서 진화해 왔다고 주장한다. 눈을 감은 상태에서 안구를 움직이는 부분적인 수면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만일 REM 수면이 없다면 각막에 산소와 영양분이 공급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또 안구가 움직이는 것은 꿈을 꾸는 동안에 안구가 시각적 영상을 좇느라 눈이 빨리 움직인다는 가설도 있지만, 아직 명확한 매커니즘은 밝혀지지 않았다.
꿈꾸는 뇌파 양전자 단층촬영에 성공
놀랍게도 REM 수면 상태에서는 깨어 있는 상태 못지않게 신체 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진다. 그래서 이 단계에서 잠자는 상태를 ‘역설적인 수면’이라 일컫기도 한다. 뇌의 활동과 아드레날린 분비량, 맥박, 산소 소비량 등이 깨어 있는 시간대의 수준과 크게 차이가 없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인간의 몸은 근육의 긴장이 완전히 풀어지고 눈의 근육만이 꿈 속의 사건들을 체현하는 일에 가담한다. 만일 REM 수면이 부족하면 낮에 조급증이 생기고 피로를 잘 느끼며 기억력이 떨어지기도 한다. 안구운동 단계에 접어들었을 때 일부러 잠을 깨우면, 다음 며칠 동안 평소보다 REM 수면에 더 자주 빠져들게 된다. REM 수면이 인간의 생체리듬상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근 REM 수면 단계에서의 꿈에 관한 놀라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REM 수면 도중에 나타나는 대부분의 꿈이 낮에 일어났던 일을 되새기면서 기억을 확고하게 유지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의 경우 수면이 부족하면 기억력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그 이유를 REM 수면에 관련해 설명하지는 못한 상태였다. 이 연구의 기초가 된 것은 쥐의 수면이었다. 쥐는 잠들기 직전에 경험한 새로운 상황에 의해 유도되는 신경 활성 향상을 수면중에 반복한다. 기억을 유지하기 위한 작업이다. 이런 사실이 인간에게 적용된다는 걸 벨기에 리그대학의 피에르 마크 교수가 밝혀내 <네이처 뉴로사이언스> 최근호에 발표한 것이다.
피에르 마크 연구팀은 양전자 단층촬영 (PET: positron emission tomography)을 이용해 두뇌 활동의 3차원적 영상을 통해 증명했다. 연구원들은 일곱명의 연구대상자가 컴퓨터 자판을 일정한 순서로 눌러야 수행할 수 있는 일을 배우는 동안 PET를 수행했다. 그러자 뇌에서 활발하게 작용하고 있는 부분이 빛을 냈다. REM 수면 동안 빛을 내었던 부분 가운데 일부가 새로운 기술을 습득한 사람의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활발하게 활동했다. 꿈을 꾸면서 경험을 오랫동안 저장할 수 있도록 기억을 재생했던 것이다. 뇌 사진에서 재활성화 장면이 선명히 나타나는 것은 인체가 수면중에 기억을 공고히 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투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실험에 따르면 꿈이 기억력을 높이는 놀라운 방법이 될 수 있다. 깊은 수면 상태일 때 뇌에서 성장호르몬이 활발하게 분비된다는 연구결과가 ‘잠 잘 자는 아이가 잘 큰다’는 가설에 힘을 보탠 것처럼. 또한 우울증 환자의 REM 수면을 박탈했을 때 증세가 호전된 까닭도 유추할 수 있다. 우울한 기억을 재생하는 과정을 진행하지 못했기에 우울증이 사라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REM 수면 상태의 꿈이 기억력을 높인다는 것은 이미 인지능력이라는 측면에서 의미있는 가설로 받아들여졌다. DNA의 구조를 규명해 노벨상을 받은 프랜시스 크릭은 REM 수면이 뇌를 재정비해 불필요한 정보들을 제거해 다음날의 인식능력을 향상시킨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어쨌든 꿈은 기억의 재생과 저장, 제거 등이 이뤄지는 과정임은 확실해 보인다.
추억이 없는 사람은 꿈을 꾸지 못할 수도
사실 꿈이 기억력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은 신경생물학자들의 오랜 믿음이었다. 물론 이는 추론 수준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무엇보다 REM 수면 단계에서 ‘세타파’라는 뇌파가 나타난 까닭이다. 동물이 생존을 위해 중요한 일을 할 때는 대뇌피질에서 세타파가 발생해 주기억 저장장소인 해마에 전달된다. 이 세타파는 해마의 신경세포에 저장되어 세타파를 발생시켰던 상황을 오랫동안 기억하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기억이 지속되는데, REM 수면 동안에 세타파가 발생한다는 근거로 꿈이 과거에 기억되어 있던 것을 자는 동안에 기억을 재생하는 과정으로 여긴 것이다. 피에르 마크의 실험은 바로 꿈이 동물이 생존에 필요한 행동을 기억하려는 무의식적인 과정임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셈이다. 꿈이 기억과 같은 발생 원리를 가지고 있다면, 과거에 대한 기억이나 추억이 없는 사람은 꿈이 없는 사람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김수병 기자 soob@hani.co.kr

일부 과학자들은 꿈을 꾸는 건 뇌가 선택적으로 작동한 결과라고 믿는다. 깨어 있는 시간대에 자신을 향해 퍼붓어지는 세세한 목록들의 덩어리를 철저히 검사하여 저장하고 쓸모없는 정보는 폐기·처분한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은 사실 대부분 낮에 그때그때 원치 않는 정보를 버리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래도 남아 있는 정보를 잠자는 시간대에 통합 정리한다고 여긴다. 예컨대 컴퓨터 작업을 할 때 새로 입력된 데이터를 고려해 여타 파일과 프로그램을 수정 갱신해 쓸 데 없는 항목을 삭제하거나 다른 드라이버에 저장하는 식이다. 꿈은 내다버린 내용물들의 조각들이 잠자는 의식에 침투해 의식을 엉망으로 만드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꿈은 혼란스럽고 쓸모없는 이미지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정말로 꿈의 내용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 꿈꾸기의 신경·생리적인 측면만 생각한다면 꿈에 대한 찌꺼기 이론은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꿈의 내용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꿈이 자아에 관한 비밀스러운 역사에 놀랄 만큼의 일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꿈은 정신과 육체 건강에 매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하며 문제 해결에도 커다란 도움을 준다는 사실이 밝혀져 꿈을 이용한 정신치료가 널리 이뤄지고 있다. 언뜻 제멋대로인 것처럼 보이는 ‘개꿈’도 전문가의 세세한 분석과정을 거치면 꿈을 꾼 사람의 환경에 관련된 풍부한 의미를 풀어내게 마련이다.

(사진/REM 수면 단계에서는 신체활동이 활발하다. 의료진이 마취실에서 잠든 환자의 뇌파를 추적하는 모습)

(사진/꿈은 기억력을 높이는 과정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기억해야 할 정보가 많은 사람은 REM 수면 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