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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이웃같이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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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2-14 00:00 수정 : 2008-12-16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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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그 부부가 깨지지 않고 사는 비결이 늘 궁금했다. 성격도 환경도 원만하지 못해 늘 삐그덕거리며 주변에 온갖 민폐를 끼쳐왔는데 말이다. 최근 이들 부부의 콘돔 사용량이 엄청나다는 제보가 있었다. 그럼 그렇지. 정해진 용도에 썼다면 ‘뵈리 굿!’이고, 혹시 그냥 풍선 불고 놀았다 해도 ‘와이 낫?’이겠지(최근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의 ‘흐렌들리’한 영어 사용이 화제가 됐는데, 가급적 아무 때나 많이 쓰고 영어 발음에 가깝게 표기하자는 말씀이죠?)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얼마 전 <한겨레21>은 가족 인터뷰를 제안하는 특집기사를 썼다. 부모나 형제자매를 객관적 거리감을 갖고 대해보자는 얘기였다. 많은 커플의 ‘불화’ 원인은 나와 네가 독립적 개체라는 것을 망각하는 데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싶다. 아침 출근길 전날의 돼지갈비 냄새 밴 옷을 그대로 입고 벌건 눈을 한 채 지하철 승강장에 서 있는 남자에 대한 연민이나 크리스마스 이브날 젊은 애들 빼곡한 네일케어숍에서 아무리 마사지 받아도 소용없을 거친 손마디를 내놓고 손톱 관리를 받는 여자에 대한 안타까움을 내 남자, 내 여자에게도 느끼는지. <나이 먹는 즐거움>을 쓴 완경기 아줌마 박어진은 후배들에게 “네 남편을 이웃같이 사랑하라”는 말을 들려준다. 그녀의 선배가 그 옛날 해준 얘기란다. 그래 어느 시대 어느 역사에나 ‘난년’은 있다.

이웃과 각별히 ‘흐렌들리’한 사람은 화들짝 놀랄 소리겠지만(어째 애가 옆집 아저씨 닮았냐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라면 더욱), 배우자를 이웃같이 사랑하기란 끊없는 훈련이 필요하다. 난 가급적 낮 생활에는 떨어져 있되 밤 생활에는 꼭 붙어 있자는 쪽이다. 허구한 날 하지 못한다 해도 허구한 날 할 수 있는 조건은 갖추자는 얘기다. 일종의 투망 포획형 섹스 인프라 구축이라고나 할까.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사교육비를 줄이고 기러기 아빠도 없애겠다는 계획을 내놓자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이 많다. 진짜 기러기 아빠의 현실도 잘 모르는 것 같다. 기러기 아빠들은 대체로 고소득 전문직들이다. 어지간해서 1~2년 안 벌어도 먹고살 만하고, 연수니 해외 근무니 길도 많은 이들이다. 모두 그런 건 아니겠지만, 애들 교육을 핑계로 한 ‘위장이혼’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확고한 뜻이 있거나 도무지 길이 없어 떨어져 사는 게 아니라면, 기러기 부부는 애들 교육에 몰빵하느라 부부 생활은 진작에 잊어버렸을 공산이 크다. 가족 구성원의 한 명을 아무 대가 없이 지속적으로 착취하는 시스템은 어떤 이유로든 윤리적이지 않다. 불륜은 이런 게 불륜이다. 그럼에도 꼭 애 데리고 떠나야겠다면 혹시 애가 아니라 자기 때문은 아닌지,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볼 일이다. 잘생긴 ‘네이티브 스피커’가 ‘대시’할지 모른다는 설렘과 기대, 정말 눈곱만큼도 없나요? 없음 말고.


몇 년 뒤 기러기 아빠가 될 것 같다는 어떤 이는 ‘돌싱’(돌아온 싱글)이라 불러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약간 흔들리는 표정으로 대부분의 기러기들은 벌어대느라 돈도 없고 혼자 사느라 몸도 망가져 이래저래 더 비참하다던데, 하는 얘기를 언뜻 했다. 흠, 당신은… 내가 놀아줄게. 솔직히 당신의 ‘어니스트’한 ‘보디 라인’은 딱 내 타입이야. 우리는 좋은 이웃이 될꺼야. 컴온 ‘뵈이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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