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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육가공품 싼 것만 찾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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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1-3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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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수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 지은이 baseahn@korea.com

그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중학교를 마치고 곧바로 취직했다. 그가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곳은 정육점. 한때 육류 도매업도 경험했다. 38살이 되던 1976년, 그는 드디어 창업을 한다. 고향인 일본 홋카이도에서. 그의 이름은 다나카 미노루. 회사 이름은 ‘미트호프’다. 육가공 전문회사다.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창업자의 오랜 경륜과 기발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미트호프는 크게 성장해간다. 연간 매출액이 우리 돈으로 약 140억원. 홋카이도 육가공 회사 가운데 최대 규모가 됐다. 2006년엔 문부과학성으로부터 표창까지 받는다. 누구도 이 회사의 앞날을 비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회사는 지금은 없다. 지난해 가을 안타깝게도 망했다.


왜 전도양양했던 기업이 하루아침에 무너진 것일까. 창업자의 일그러진 탐욕이 원인이었다. 다나카 사장은 탁월한 사업가였지만 ‘도덕불감증 환자’였다. 그는 자신이 만드는 식품에 허위 표시를 밥 먹듯 했다. ‘100% 쇠고기 제품’이라고 광고해놓고는 돼지고기를 마구 섞었다. 유통기한이 지나 반품돼 들어온 것은 재포장해 다시 내보냈다. 냉동된 고기는 야외에서 비를 맞혀 해동시키곤 했다.

이 회사의 모럴해저드는 중국산 가공육의 남용에서 극에 달했다. 중국에 조류독감이 유행해 오리고기 가격이 폭락했을 때, 그 가공육을 들여와 쇠고기 제품에 조금씩 섞어 썼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안 일본의 한 저널리스트는 “중국에서는 다리가 달린 것은 책상과 걸상만 빼고는 뭐든 다 먹는데…”라며 혀를 찼다.

<트러스트>(TRUST)를 쓴 미국 조지메이슨대학의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일본을 ‘고신뢰사회’로 분류한다. 사회 구성원 간의 신뢰도가 높은 나라라는 뜻이다. 또 식품 검사에 관한 한, 일본은 가장 앞서가는 나라 중의 하나다. 첨단 감식기법인 유전자 검사를 정기적으로 시행하며 각종 먹을거리의 허위 표시를 감시하고 있다. 그런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터무니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미트호프 사건’은 돈벌이를 위한 인간의 탐욕이 얼마나 무분별한가를 극명히 보여준다. 이 사례는 일본만의 치부가 아니다. 어느 나라에서건 발생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더 심각할지도 모른다. 보건당국의 유전자 검사 능력이 일본에 비해 크게 뒤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사회 신뢰도가 그렇다고 일본보다 높다고 말할 수 있는가?

햄, 소시지, 베이컨, 미트볼, 너깃, 햄버거 패티, 돈가스, 고기만두…. 식품점의 육가공품 매대에 무너져내릴 듯 쌓여 있는 각종 제품들의 면면이다. 늘 먹음직스런 모습으로 소비자를 반기는 이들 육가공품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값이 무척 싸다는 사실이다. 가공하지 않은 생육보다도 오히려 더 싸다. 가공비용과 포장비 등이 추가로 들어갔을 텐데도 말이다. 이 사실을 한 번쯤 의심해보는 것이 어떨까. 그런 소비자가 늘어나는 만큼 양심적인 육가공품도 늘어난다. “소비자에게도 책임이 있어요. 무조건 싼 것만 찾으니 원. 판매점도 마찬가지고….” 미트호프의 다나카 사장이 구속 수감되면서 한 말이다. 이 발언 속에 육가공품의 고민이 들어 있다.

육가공품 문제는 식품첨가물이 무차별 사용된다는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신뢰할 수 있는 생육을 직접 요리해서 먹는 것, 그것이 고기를 즐기는 올바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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