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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매는 과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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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1-3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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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황을 이루는 싱글 남녀 맺어주는 사이트… “그림 제목을 붙여주면 불붙을 상대방을 찾아드립니다”

▣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의 저서 <내가 걸어온 일류국가의 길>을 보면 “1983년 8월14일 저녁 연례 국경일 연설에서 폭탄선언을 했다. 두 TV에서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최고의 시청률 상태에서 말이다. 나는 만일 대졸 남성이 자기 자식이 자신보다 잘되길 원한다면 자신보다 교육 수준이 낮거나 지능이 낮은 여성과 결혼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싱가포르, 대졸 싱글 중매에 나서다


초고속 인터넷의 발전은 결혼 비즈니스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이들은 “결혼에 성공할 확률이 높은 남녀를 연결”하기 위해 ‘과학’을 내세운다. 결혼정보회사 주최로 열린 미팅 대축제. (사진/ 한겨레 이정아 기자)

1980년 싱가포르 인구조사에 따르면 중국·인도·말레이계 대졸 남성은 전통적으로 자신보다 교육 수준이 낮은 여성을 선택하는 반면, 대졸 여성은 자신보다 높은 남성을 선호하거나 결혼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리콴유는 ‘인간 구조의 80%는 부모로부터 물려받고 나머지는 양육의 결과’라는 당시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면서(물론 사실이 아니다!), 심각한 사회적 반발이 예상됨에도 1984년 싱가포르 사회개발청소년체육부를 통해 ‘대졸 청춘 남녀 중매’, 이른바 사회개발단위(SDU·Social Development Unit) 사업이란 걸 하게 된다. 국가가 나서서 대졸 싱글들에게 중매를 서주겠다는 것이다.

이들의 중매를 위해 싱가포르 정부는 대졸 미혼 남녀들을 사랑의 크루즈인 ‘러브 보트’에 싣고 순항하면서 미팅 자리를 마련해주는 ‘희대의 코미디’ 이벤트를 마련하는데, 이 ‘러브 보트’는 이후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수많은 아류 보트들을 양산한다.

자존심이 강한 대졸 싱글들은 왜 국가가 우리의 연애와 결혼에 끼어드는지 냉소를 보였으며, 대졸 미만 학력의 자녀를 둔 부모나 당사자들은 위화감과 상실감으로 인해 강한 사회적 반발을 보였다. 그럼에도 이 사업은 지난 20년간 무려 2만1400쌍을 결혼으로 이끄는 데 성공했으며, 싱가포르 대졸 남녀 간 결혼율도 1982년 38%에서 1997년에는 63%로 증가하게 됐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사회적 저항이 두려워 세계 어떤 나라에서도 감히 시도조차 할 수 없었던 사업을 추진한 싱가포르가 이제 국가 이미지 개선을 위해 정부 주도의 중매사업을 앞으로는 민간에 이양하겠다고 발표했다고 한다. 싱가포르에는 현재 175개가 넘는 중매회사가 있으며, 이를 통해 미혼 남녀들이 제 짝을 찾는 비용도 매년 150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그러니 이제 민간에 이양해도 잘 굴러갈 거라는 ‘정부의 판단’이다.

20년 전 싱가포르 정부가 했던 범국가적 중매사업을 지금은 수많은 민간 회사들이 전세계적으로 활발히 수행하고 있다. 이처럼 결혼 비즈니스가 활개를 치는 것은 전적으로 ‘초고속 인터넷’이 발달한 덕분이다. 미국에만도 매치닷컴(Match.com), 이하모니(eHarmony) 등 싱글 남녀를 연결해주는 회사가 무려 1천 개가 넘고, 이들의 연간 매출액은 7천억원을 육박한다고 한다.

자유연애와 개인주의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국에서 처음에는 이런 소개알선 사업이 강한 저항에 부딪혔지만, 이제는 ‘분위기가 많이 좋아졌다’고 업계 종사자들은 말한다. 18살 이상 미혼 남녀 9200만 명 중에서 1600만 명이 이미 온라인 데이트를 해본 경험이 있다고 하니, 말 다 했다. 고객 수도 매년 10%씩 늘고 있는데, 이것도 그나마 사회 네트워크 사이트인 ‘페이스북’(우리의 ‘싸이월드’에 해당하는 사이트)이 무료로 사람들 사이를 연결해주는 상황에서 그들과 힘겹게 경쟁하기 때문에 속도가 느린 편이라고 한다.

인도에선 부모가 더 좋아해

매치닷컴이나 이하모니 같은 글로벌 기업이 주목하고 있는 곳은 단연 중국과 인도다. 중국과 인도는 오래전부터 중매 문화가 발달해 있어 중간에 중매자가 만남을 주선하고 결혼에 다리를 놓아주는 문화가 뿌리 깊은 전통으로 자리하고 있다. ‘중매 한번 잘 서면 3년은 먹고살 수 있다’는 중국 속담이 있을 정도인데, 양복 한 벌 얻어입을 수 있다는 우리와는 스케일이 많이 다르다.

중국은 현재 35살 이하 남녀 중 아직 싱글인 경우가 무려 46%에 달하고(베이징에만 200만 명이 살고 있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6천만 명의 네티즌들 대부분이 결혼 적령기 남녀이기 때문에 글로벌 중매 회사의 최대 시장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래서 이미 2만 개도 넘는 중매회사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인도도 만만치 않은데, 이곳에선 중매결혼이 90%에 달할 정도로 중매 문화가 보편화돼 있으며, 35살 이하 싱글이 6천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예전부터 인도에서는 이발사의 아내들이 일종의 ‘조합’을 형성해 멀리 떨어진 두 남녀를 연결해주는 일들을 해왔다고 한다. 인도의 젊은 남녀들도 사랑의 성공으로 결혼을 생각하기보다는 ‘성공한 결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71%에 이른다고 한다. 실제로 인도에서는 당사자가 아닌, 부모가 자식의 정보를 중매 사이트에 올려 중매에 적극 가담하는 양상도 보인다고 한다. 서구에서도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는 현재 온라인 데이트 신청자 220만 명이 대기하고 있을 정도로 중매 사이트가 인기라고 한다. 중매와 결혼 문화가 나라마다 얼마나 문화적으로 다른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인 것 같다.

결혼 비즈니스가 전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고 중국과 인도가 이들의 최대 공략처로 지목되면서 글로벌 사업을 주도하는 매치닷컴이나 이하모니 같은 회사들이 각 나라의 자체 중매회사와 차별화하기 위해 내세운 것이 바로 ‘중매의 과학’이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딱히 과학이랄 것도 없지만, 수많은 지역 중매알선 회사와는 달리, 자신들은 과학적으로 결혼에 성공할 확률이 높은 남녀를 서로 연결해준다는 것이다. 대부분 중매알선 회사들은 비슷한 학력과 재산 정도, 원하는 외모 등 신청자가 원하는 조건들을 중심으로 소개팅을 알선해주지만, 매치닷컴이나 이하모니 같은 글로벌 회사들은 ‘사랑이 싹틀 수 있도록 서로에게 맞는 타입을 찾아주겠다’는 전략이다. 꽤 그럴듯하게 들리지 않는가? 매년 ‘몸과 마음’을 주제로 특별호를 내고 있는 미국의 주간지 <타임>이 올해 특별호로 ‘로맨스의 과학’을 다루면서, ‘중매산업과 그 과학’에 대해 기사 하나를 따로 할당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를 위해 매치닷컴은 ‘사랑의 과학’으로 유명한 뉴저지주립대의 헬렌 피셔를 영입해 케미스트리닷컴(Chemistry.com)이란 걸 개발했다. 이 사이트에 들어가면 누구나 56개의 질문을 할 수 있는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통해 사람들을 협상가형, 건축가형, 탐험가형, 연출가형 등 네 종류로 나누고 남녀를 주선할 때 서로 맞는 타입으로 소개해주겠다는 것이다(미혼 남녀분들은 직접 들어가서 해보시라. 나는 과연 어떤 타입일까?).

‘여기 사진이 하나 있습니다. 이 사진에 제목을 붙인다면 당신은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같은, 얼핏 평범한 심리 테스트처럼 보이는 질문들이지만, 그 사람의 테스토스테론, 옥시토신 분비 정도를 알아볼 수 있는 행동 설문조사를 담은 것으로서, 되도록 첫 소개팅 자리에서 그들의 화학물질이 서로 반응하도록 도와주는 테스트라고 보면 된다.

질문의 답으로 옥시토신 정도를 측정

이하모니의 중매 과학을 도와주는 캘리포니아주립대(버클리 소재) 심리학과 카이핑 펭 교수는 ‘중매의 성공은 가장 비슷한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 상호 보완이 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게 하는 것이다’라는 이론으로 이 문제를 접근하고 있다.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사람을 원하지만, 정말 행복한 커플은 비슷한 구석이 많지만 서로 상호 보완이 되는 부분이 많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광고를 통해 어느 날 느닷없이 침대가 과학이 되었듯, 앞으로 ‘중매는 과학입니다’라는 모토가 한국에도 전파될 날이 멀지 않았다. 그들이 자신들의 중매에 과학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전에 검증이라는 절차도 함께 고려해주었으면 한다. 수천만 명의 인생이 걸린 문제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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