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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우리는 괴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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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4-1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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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고독한’샴쌍둥이 자매의 담담하지만 처절한 회고, <마샤와 다샤>

인간은 종종 같은 인간에게 몹쓸 짓을 저지른다. 간혹 그런 범죄에는 과학이라는 그럴 듯한 명목이 따라붙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해 미국에서 뒤늦게 밝혀져 화제가 됐던 탐험가 피어리의 숨겨졌던 잔혹행위다.


이누이트족 소년 미닉의 기구한 운명

사진/마샤와 다샤는 6년 동안 소아병동에서 실험대상으로 키워졌다. 현재 51살인 이들은 세계 최장수 샴쌍둥이다.
최초로 북극점을 정복한 피어리는 동상으로 발가락을 일곱개 자르는 등의 시련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여러 번의 시도 끝에 탐험에 성공해 미국은 물론 인류의 영웅으로 떠올랐던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1897년 그린란드에 살던 이누이트 사람 여섯명을 붙잡아 미국으로 강제로 끌고 가는 비인간적인 짓을 저질렀다. 피어리는 이누이트 사람들을 미국 자연사박물관에 넘기고는 동물원 짐승처럼 입장료를 받고 사람들에게 이들을 구경시켰다. 깨끗한 환경에서 살았던 이누이트 사람들은 도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이내 숨졌다. 단 한 사람만 살아서 고향 그린란드로 돌아갔고, 일곱살의 어린 나이에 끌려온 소년 미닉은 홀로 미국에 남겨졌다.


미국땅에서 성장한 미닉은 10년 뒤 함께 끌려와 숨진 아버지의 주검이 자연사 박물관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박물관쪽은 가짜 장례식을 치르고 미닉 아버지의 주검을 해부하고 뼈를 연구목적으로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박물관은 미닉의 아버지 유골말고도 오지의 소수민족의 유골 여러 가지도 함께 보관중이었다. 미닉은 백악관에 탄원서를 내고 잡지와 인터뷰를 하는 등 갖은 방법을 써가며 아버지의 주검을 돌려받고자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결국 미닉은 스물일곱살에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 이야기는 수십년 동안 그린란드 지방에서 입소문으로만 떠돌다가 <내 아버지의 시신을 돌려주오>라는 책이 이누이트어로 그린란드에서 발간되면서 이누이트족들이 시신 반환운동을 시작한다. 그리고 1993년 마침내 유골은 100년 만에 고향땅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지난해 사학자 켄 하퍼가 <내 아버지의 시신을 돌려주오>를 영어로 펴내면서 이 끔찍한 일은 만천하에 드러났다. 미닉과 그의 아버지가 겪어야 했던 기구한 운명은 자연사박물관과 장삿속에 걸신들린 탐험가가 과학이란 미명으로 힘없는 사람들의 일생을 얼마나 처절하게 난도질했는지를 보여준다.

1990년대 초 러시아의 페레스트로이카와 함께 세상에 드러난 비운의 자매 마샤와 다샤 역시 과학을 위한다는 미명으로 철저하게 인생이 짓밟힌 주인공들이다. 2차 세계대전의 상흔이 가시지 않았던 1950년 모스크바의 한 산부인과에서 태어난 이 쌍동이 자매는 바로 ‘샴쌍둥이’였다. 상반신은 분리돼 있지만 허리 아래 하반신은 하나인 상태로 태어난 것이다. 옛소련 소비에트 정부는 태어나자마자 이들을 부모로부터 빼앗았다. 부모에게는 이들이 숨졌다고 거짓말을 하고서는 극비리에 이들을 소아병동에 가두고 의학실험 대상으로 키웠다. 쌍둥이는 알몸으로 유리방에 갇힌 채 말을 배웠고, 매일 아침 피를 뽑는 실험을 받으며 자랐다.

최근 이 불운한 자매의 자서전 <마샤와 다샤>(줄리엣 버틀러 지음/ 안중식 옮김/ 지식여행 펴냄/ 7500원)가 국내에 소개됐다.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자매’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샴쌍동이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처절한 고통을 겪어야 했던 이 자매가 스스로 밝힌 처절한 인생역정을 담고 있다.

과학이라는 이름의 야만

사진/마샤(사진 왼쪽)와 다샤는 비록 샴쌍둥이지만 성격은 판이하게 다르다. 적극적인 마샤가 주도권을 쥐고 여성적인 다샤를 보호하며 살아가고 있다.
소련 정부는 마샤와 다샤를 태어나자마자 부모로부터 강제로 빼앗아 국가 연구기관에 수용했다. 부모에게는 이들이 곧바로 숨졌다는 거짓 통보가 전해졌고, 이들은 생리학자인 아노힌 교수의 인간 몰모트가 됐다. 과학자들은 자매가 곧 숨질지 몰라 이름도 붙이지 않고 유리방 안에 넣고 관찰하다가 쉽게 죽을 것 같지 않을 만큼 자라고 나서야 마샤와 다샤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이름이 생긴 뒤 관청에 접수된 이들의 출생신고서는 한통이었다. 하체가 붙은 쌍둥이가 아니라 머리가 둘 달린 ‘괴물’로 생각한 것이었다. 연구를 위해 분리수술은 거론되지도 않았고, 결국 이들은 평생 붙어 있는 몸으로 살아가게 돼버렸다.

마샤와 다샤는 서로 부분을 나눠 교대로 지나온 삶을 담담하게 회고한다. 그러나 읽는 처지로서는 그렇게 담담할 수 없는 처절하면서도 고통스런 이야기들이다. 당시 실험기록에는 이 자매를 최대한 굶긴 뒤에 한 아이에게만 우유를 주었으며, 제대로 걷지조차 못하는 상태에서 한 아이에게만 우유를 주자 다른 아이가 울었다고 기록이 남아 있다. 너무나 당연해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것을, 과학자들은 이들이 샴쌍둥이라는 이유만으로 실험했다. 매일 아침 피를 뽑고, 몸에 침을 꽂는 등의 실험을 6년 동안 계속한 뒤 과학자들은 이들을 모스크바 의족연구소로 보냈다. 아무도 이들에게 세상에서 살아가야 할 것들을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에 여섯살까지도 이들은 기저귀를 찬 채 스스로 일어서지도 앉지도 못하고 몇마디 말만 할 수 있는 정도였다. 자매는 의족연구소에서 비로소 걷는 법을 배웠는데, 처음 일어서서 목격한 것은 거울에 비친 자신들의 흉측한 모습이었다. 연구소 생활 역시 성장단계마다 의사들 앞에서 억지로 알몸이 돼 사진을 찍어야 하는 실험의 연속이었다. 이후 여러 장애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뒤 이들은 성년을 맞자마자 다시 장애인이므로 직업을 가져선 안 된다며 억지로 양로원에 수용됐다.

한몸으로 붙어 있어도 자매의 성격은 당연히 다르고, 그 점이 이들에겐 오히려 다행이었다. 공격적이고 자립적인 마샤와 여성스럽고 차분한 다샤는 때론 싸우면서도 서로를 보듬으며 힘든 인생을 헤쳐나간다. 마음 여린 다샤가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고, 알코올중독이 되는 어려움 속에서도 마샤는 강인하게 동생을 이끈다. 80년대 말 소련 개방의 흐름 속에서 이들은 양로원에서 탈출해 독일 언론에 소개되면서 자유를 쟁취한다. 이 시도로 이들은 얼마간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했고, 이를 바탕으로 52살인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아남아 현재 모스크바 제6양로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지난 97년 이들은 박해받아온 인생을 자서전으로 정리하기로 결심했다. 이 책은 바로 그 결과물이다. 그리고 이들은 책을 통해 절규한다. “우리는 어쩌다 몸이 붙어 태어난 쌍둥이 자매일 뿐이다. 도깨비도 괴물도 아니다. 괴물은 오히려 우리를 엄마로부터 빼앗은 그 무리들이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일 뿐

책에서 가장 가슴아픈 대목은 사랑에 관한 것과 엄마와의 재회 장면이다. 노보체르카스크 장애학교에서 동생 다샤는 한 장애인 소년과 사랑에 빠진다. 다샤가 키스를 하는 동안 마샤는 모른 척 외면해주면서 사랑을 키웠지만, 결국 사랑은 끝나버리고 만다. 학교 남학생들은 이들과 성관계를 가질 수 있는지를 놓고 내기를 하고, 이들은 그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고통 속에서 사춘기를 보내고 성년을 맞는다. 서른다섯살에 수소문 끝에 만난 엄마와도 결국 헤어지고 만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어머니조차 그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을 깨닫고 이들은 스스로 살아가는 삶을 택했다.

비록 외모는 보통 사람들과 다르지만 책을 읽다보면 이들 역시 우리와 똑같은 사람일 뿐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 샴쌍둥이일뿐 이들 또한 사랑을 원하고, 일하기를 원하고, 독립된 주체로 자기 삶을 꾸려나가기를 바라는 평범한 보통 사람인 것이다. 책은 마샤가 가족으로서의 자매애를 다시 확인하면서 삶의 의지를 다지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우리는 둘일뿐 없어서는 안 될 가족이다. 난 다샤를 지켜왔고, 앞으로도 계속 지켜갈 것이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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