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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전위적인 선배들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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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1-0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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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전망’의 10년 만의 귀환, 그들의 여섯 번째 동인지 <홍대 앞 금요일>

▣ 신형철 문학평론가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고 오규원 시인의 말씀을 옮긴다. “예술이란 중도라든지 타협이라든지 모범이라든지 하는 것에 있지 않고 극단에 있습니다. 이 점에 유의해주었으면 합니다. 대중도 없고 환호도 없고 독자도 없는 곳으로 가십시오. 그곳에 자리잡으면 당신의 독자가 새로 창조될 것입니다.”(2004년 겨울, 시인 이재훈과의 대담에서) 선생은 ‘극단’으로 갈 것을 주문하고 계셨다. 그제야 깨달았다. 흔히 ‘아방가르드’ 혹은 ‘전위’라 불리는 예술가 집단의 자리는 ‘선두’가 아니라 ‘극단’이라는 것을. 선두에 집착하다가 자칫 ‘새로우면 만사형통’이 되어선 곤란하니까. 사방이 낭떠러지인 곳에서는 전후좌우의 가장자리 모두가 극단이다. 선두에 서도 좋고 후방에 서도 좋다. 좌도 좋고 우도 좋다. 땅과 허공의 경계로 가라, 거기서 네 영토를 넓혀라.


1989년 7월에 다섯 명의 시인이 모였다. 진이정, 유하, 박인택, 함민복, 차창룡. 말하자면 극단의 자리에 가 서기 위해 의기투합했다. ‘21세기전망’ 동인의 출발이었다. 그들은 ‘대중적 전위주의’를 표방했다. 아마도 80년대적인 의미에서의 ‘전위’와 긴장하기 위해 ‘대중적’이라는 수식어가 필요했을 터다. 이 모토는 지금도 의미심장하다. “대중의 취향에 따귀를 때려라”(마야콥스키)라고 일갈했던 지난 세기 초의 전위주의와 “대중 속으로”를 부르짖는 오늘날의 무책임한 대중주의를 동시에 넘어서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10년 만에 왔다. 21세기전망 동인의 여섯 번째 동인지 <홍대 앞 금요일>(마누·2007)의 출간. 선배들이 돌아왔다.

“우리는 어떻게 오늘밤을 보내니?/ 그냥 눈 딱 감고 자빠져 잠들도록 이 몸을 내버려두니?/ 시간이 아무 발자국이나 남기도록 이 몸을 내주자는 거니?/ 80년을 데려와서 민중이 주인 되는 잠꼬대 같은 걸 해보는 건 어때?/ 우리의 오늘밤이 의미 있으려면 역사를 초대하는 것이 가장 손쉽지./ 50년을 캐스팅해서 동족상잔의 비극을 연속 상연하는 것도 괜찮아./ 어때, 우리의 오늘밤이 벌써 이 시의 시작보단 훨씬 근사해졌지 않아?/ 곱게 단발한 구한말을 데려와 강제 개항과 근대 사이에 앉히는 건 어때?/ 역사는 이제 어느 채널에서나 옷을 벗는다고, 거수경례 따윈 필요 없지./ 21세기는 누구의 옷이나 홀랑홀랑 벗겨대는 태양의 재주를 가졌으니까./ 카메라만 갖다대면 절로 치-즈 벌어지는 아랫도리라고나 할까.”(황성희, ‘All night!’에서)

새롭게 합류한 후배의 시에서 골랐다. 소파에 드러누워 드라마(영화)를 보다가 시인은 슬그머니 삐딱해진다. 구한말에서 80년 광주까지, 역사를 요리하느라 바쁜 우리 시대의 서사들. 그래, “우리의 오늘밤이 의미 있으려면 역사를 초대하는 것이 가장 손쉽지.” 역사는 이제 상품이 되어 시청자를 호객한다. “역사는 이제 어느 채널에서나 옷을 벗는다.” 이미지만 남은 역사가 불편한 시인은 시의 후반부에서 ‘당신’(역사)에게 신경질을 부린다. “그러나 [진짜] 당신을 상상만 하는 오늘밤은 그래서 슬픈 거야?/ 당신보다 더 당신 같은 이미지로 넘치는 오늘밤은 그래서 야한 거야?” 이 문장이 평서문이었더라면 훈화가 됐을지도 모른다. 이 의문문이 매력적이다. 자문인 듯 자학인 듯, 혹은 반문인 듯 반항인 듯.

인용한 시는 시집의 첫 시다. 한 편씩 읽어나가면서 즐거웠다. 극단의 자리에 이미 ‘도착’한 시들이라고 단언하긴 어렵지만 극단의 자리를 ‘의식’하는 시들이어서 반가웠다. 극단의 자리로 가길 원하는 시는 대개 말의 옷을 벗기려고 기를 쓴다. 말의 알몸을 보여주기 위해서? 아니다. 옷 안에는 또 옷이 있다. 그러나 그런 시가 없으면 말이 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게 된다. 그저 끝없이 벗겨나갈밖엔 없는 것이다. 말의 옷이 벗겨지면서 의식의 때가 벗겨지고 세계의 자전이 교란될 때까지. 이 일이 하찮아 보이시는가. “시인이여,/ 토씨 하나 찾아/ 천지를 돈다// 시인이 먹는 밥, 비웃지 마라// 병이 나으면/ 시인도 사라지리라.”(‘시인’ 전문) 이 동인의 창립 멤버였던 고 진이정 시인의 문장이다. 선배들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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