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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지수야, 이젠 네가 고인이라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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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1-2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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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수술 중 쇼크사한 열일곱 김지수 선수에게 보내는 편지

▣ 대전=송호진 한겨레 스포츠부 기자dmzsong@hani.co.kr

중환자실이 많이 답답했니? 그곳에서 친구들을 만나는 건 너답지 않다고 생각했던 거야?

너의 새 보금자리로 가는 길. 작은 새들이 가로막더구나. 짹짹짹. 그러면서 또 총총총. 소년체전 도대표로 육상경기에 나갔을 때 너도 저 새들처럼 잘 뛰었다면서? “우리 지수가 달리기뿐 아니라 멀리뛰기 선수로도 나가고 그랬지요. 태권도도 얼마나 잘했는데요.” 엄마는 이걸 얘기할 땐 눈물이 맺힌 것도 잊으셨는지 잠시 들뜬 표정까지 지으시더구나. 구암사(대전 유성) 앞 마당에 곱게 물든 단풍도 봤니? 발그스레한 너의 볼을 닮았던데. 처마 끝에 걸린 하늘은 또 얼마나 푸르다고. “2년 동안 모은 적금을 타면 우리 지수 방 예쁘게 가꿔주고 싶었거든요. 곧 적금도 끝나는데.” 물론 엄마는 너의 방을 이곳에 꾸며주고 싶었던 건 아닐 텐데.


‘지수야~. 해처럼 맑고 곱던 누이야~.’ 17살 이하 청소년 국가대표팀의 주전 공격수였던 고 김지수 선수가 생전에 동료 선수들과 환하게 웃으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마취 안 깬다며 중환자실 보내더니

아침 일찍 마당을 쓸던 스님이 물으셨어. “납골당은 이쪽인데, 고인과는 무슨 관계세요?” 기자와 축구선수 외엔 딱히 뭐라 할 말이 없기도 했지만 고인, 그래 고인이란 대목에서 가슴이 막혔어. “말을 못해도 좋으니 눈만 떴으면 좋겠어요. 내가 해준 게 너무 없어서. 그게 너무 한이 맺혀서. 내가 힘들어도 이 핏덩어리 냄새 한번 맡으면 힘이 나곤 했는데.”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이상해서 네 엄마의 말이 그 순간 떠오를 건 또 뭐람.

너를 본 건 지난 10월 대전 을지병원 중환자실이었지. 네가 인공호흡기를 끼고 막 100일을 넘기며 곤히 잠들었을 때였어. 영양주사만 맞고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버티고 있었니? 한번은 엄마가 전화를 하셨어. “혹시 잘 아는 소화기 쪽 의사 선생님 있으세요? 애가 뭐라도 먹어야 할 텐데 어쩌면 좋아요?” ‘잘 아는 의사’란 말…. 엄마는 ‘낯선’ 의사들에게 서운한 게 많았던 모양이야. 지난 6월 축구 경기 도중 무릎 십자인대를 다친 넌 대학병원이란 무게를 믿고 수술대에 올랐지. 수술 전엔 엄마 손을 잡고 영어책도 샀다지? 수술 끝나면 밀린 공부라도 하겠다면서. 어렵지 않다는 수술인데 넌 뇌사에 빠졌어. 마취를 했는데 쇼크를 일으켰다는 거야. 네가 일반병실이 아닌 중환자실에 들어갈 때 엄마가 이상해 물으니 “마취가 덜 풀렸다”고 했다지. 수술 잘해줘서 고맙다며 머리까지 숙였던 엄마는 자신의 못 배운 죄를 탓했어. 누군가는 그러더군. 심장 부근까지 올라오는 마취 기운을 제어하지 못했을 거라고. 아님 수술 도중 뭔가를 잘못 건드려 출혈이 심했을 거라고. 어쨌든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김지수 선수가 훈련 도중 동료 선수에게 기대 앉아 밝은 표정으로 한숨 돌리고 있다.

미안하다, 널 보호하지 못해서

너를 보고 온 지 열흘 뒤, 그러니까 11월2일 110일간의 긴 사투가 끝났다는 말을 들었어. 엄마는 네 발인을 미루고 있더구나. ‘과실’이란 말을 좀처럼 하고 싶지 않은, 자기네 이미지만을 걱정하는 그 병원에서 널 한시라도 빨리 데리고 나오고 싶었을 텐데 말이야. 수술에 참여했던 의사들이 뒤늦게 조문을 오고 나서야 엄마는 네 친구가 가슴에 품은 영정사진을 앞세워 정든 학교를 마지막으로 구경시켜주셨더구나. 엄마는 “우리 딸이 다시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합니까. 용서해야죠” 그러시더라.

미안하다.

고작 네 앞에서 고개 숙이고 엄마가 아파하는 반의 반, 또 반의 반만 아파하는 척만 해줘도 용서가 되는 것을. 가슴 메마른 우리들을 용서하려무나.

미안하다. 널 보호하지 못해서.

한 의사는 여자선수들은 신체구조상 무릎을 다칠 가능성이 높다고 하더라. 너도 누구와 부딪히지 않았는데 공을 몰면서 방향을 틀다 다친 거였지. 그러나 우리 모두는 너무나 둔감하다. 무릎에, 발에 피로가 쌓여 있는데도 선수들에게 휴식을 주지 못하지. 그러다 보면 정말 큰 부상을 당하고, 정작 전성기 때 은퇴하고 마는데도 잠깐의 휴식을 허락하지 못하는 거야. 당장 성적을 내야 하니까. 이겨야 하니까. 학부모님들 돈으로 운동부를 운영하는 뻔뻔한 학교들이 곧바로 지도자를 내치니까.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몸으로 뛰고 있는 네 친구, 동생들은 또 없을까?

네가 세상을 떠나던 날, 17살 이하 여자 청소년팀 1차 훈련이 끝났어. 내년 세계대회를 앞두고 있으니까. 그건 너도 잘 알 거야. 지난 4월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아시아청소년대회에 나가 세계대회 출전권을 따낼 때 너도 주역이었으니까. 그래서 빨리 무릎을 고쳐 다시 뛰고 싶어했으니까. 키가 170cm에 가까웠던 넌 공중볼도 잘 가로채던 공격수였지. 말레이시아 대회 기간 단합대회 땐 코믹춤으로 지친 동료들도 꽤 웃겨줬다면서?

김 선수가 주전으로 뛴 지난 4월 아시아청소년대회에서 세계대회 출전권을 따낸 한국 선수단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한국여자축구연맹 제공)

친구들이 구암사에 남기고 간 편지는 읽어봤니? “이제라도 우리가 볼 수 없는 곳에서 행복했음 좋겠다. 너 대신 우리가 열심히 공 찰 거고 넌 우리 지켜만 주면 돼? 지수야 해줄 수 있지?” “항상 웃던 너의 모습을 볼 수 없다니. 네가 있는 곳에서 꿈을 이뤄라.” “언니, 천국에서도 꼭 축구선수 하세요.”

구암사를 나오는데 제법 찬 바람이 스치고 가더라. 하긴, 이런 날씨에 뛰면 덥지도 않고 시원하다던 너에게 괜한 감기 걱정을 한 건가?

논산시장 순대를 참으로 좋아했던 지수야. “아줌마, 떡볶이 2인분에 순대 3인분요. 빨리요. 배고파요.” 그렇게 외치던 너의 목소리를 친구들이 많이 그리워한단다.

17살 나이에 눈을 감은 축구선수 김지수를 기억하며 송호진 기자가.

추신 생후 몇 개월 만에 아빠와 헤어졌다지? 그 아빠가 얼마 되지 않는 병원 쪽 손해배상금과 위로금에 대해 친권을 행사하려 한다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는 “우리나라 법이 그러네요”라고 하시더라. 어떤 이는 “참 비정하다”는 말도 한다. 네가 있는 구암사 벽에 이런 글귀가 있더라. “사람이 죽으면 세 가지 독이 사라지는데 그중 하나가 성냄”이라고. 혹여 성내지 마라. 이쪽 생(生)의 일은 잘 정리될 테니.

다만, 엄마가 정신과 치료를 받으실 정도로 많이 힘들어하시더라. 힘을 드리렴. “실감나지 않는다”고. “다음 생이 있다면 다시 엄마와 딸로 꼭 만나고 싶다”고. 그건 용돈 아껴 엄마 손에 쥐어주던 너도 같은 생각이겠지?

686호 주요기사

▶이명박과 김경준의 질긴 인연 5막
▶가자 출근길, 굽이굽이쳐 가자
▶걸면 걸리는 선거법, 서러운 군소후보
▶‘굴욕수진’을 넘어서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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